시험을앞두고

by apricot

얼마 전부터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반쯤 취미 삼아 중국어 공부를 해왔지만 자격증을 따기 위한 것은 아니었고, 설렁설렁했기 때문에 사실 실력은 형편없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경단녀로 재취업을 하기 위한 작은 시작으로 비교적 쉬운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하나라도 따 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즐겨보는 중국 로맨스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 중 하나가 남주와 여주가 함께 공부하는 장면이었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대개는 성적이 좋은 우등생인 남주가 여주의 공부를 도와주는 식으로 묘사되는데 살짝 낯간지러우면서도 '참 좋을 때다'라는 마음이 드는 건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어쩔 수가 없다.

드라마에 쉽게 몰입하는 편이라 극 중 인상적인 장면이나 저건 안 해봤다 싶은 게 있으면 남편을 상대로 직접 실천에 옮겨보는 이상한 취미가 생겼다. 최근에 실천한 것으로는 농구하기와 컴퓨터 게임하기 등이 있다. 특히 컴퓨터 게임 남주가 여주의 손을 겹쳐 키보드와 마우스 조작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여주가 남주의 무릎에 앉은 불편한 자세에서 과연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는 게 가능한가 시험해 보았는데 예상보다 빠르게 게임에 몰입해버린 남편 덕에 꽤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드라마에서는 한창 연애 중인 연인 사이라 서로를 신경 쓰느라 별 효과가 없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게임의 승부가 더 중요한 13년 차 부부가 아닌가.

어쨌든 뻔한 로맨스의 어지간한 장면 재연은 가능할지언정 공부하기만큼은 어렵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내가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려고 한다는 말에 남편이 의외로 "나도 같이 해볼까"라고 말해줘서 공부도 함께 할 수 있게 됐다.

같이 시험을 준비하는 입장이라고는 해도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나와는 달리 남편은 평소 컴퓨터에 관심이 많고, 그쪽 방면에 상식이 풍부한 편이다. 게다가 남을 가르치는 것 또한 즐기는 편이라 나에게는 좋은 선생님이 되어주고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차근차근 정리해서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서 설명해주는데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말이 뭔지 실감했다.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그 수준에 맞춰 어떤 식으로 설명하면 좋을지 다 아는 맞춤형 선생님이랄까. 진작에 이런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좀 더 성적이 좋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동안 남편과 함께 공부하는 재미를 붙였지만 막상 시험날짜가 가까이 다가오자 고질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그것은 평소보다 독서에 대한 욕구가 상승한다는 점이다. 학창 시절부터 그랬듯 시험을 앞두고 공부 이외의 것들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특히 시험과 관련 있는 것들만 자꾸 읽다 보면 공부는 슬슬 지겨워지고 공부와 관련 없는 다른 책들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아마 어떻게든 활자를 많이 봐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은 채, 그래도 공부는 하기 싫은 마음에 독서에 더 열중하게 되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동안은 야금야금 조금씩 읽던 책들을 이 기간이 되면 폭식하듯 단숨에 몇 권씩 읽게 된다.


연거푸 에세이를 몇 권 읽고, 예전에 읽다가 도중에 그만뒀던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었다. 달리기에 관한 에세이였는데 읽을 당시에는 좀 지루하게 느껴졌다.

시험이 코앞에 다가오자 하루키가 달리는 이야기가 왜 그렇게 재미있는지 나도 신기할 지경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기록이 좋아질 거라는 기대보다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유지해야 한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26회나 풀코스 마라톤에 참가했던 하루키나 지역 마라톤 10km에 몇 년째 참가했던 나 역시 어쨌든 끝까지 걷지 않고 달리겠다는 마음가짐은 비슷하구나 느꼈다. 매년 빼놓지 않고 마라톤에 참가했던 그도 코로나 때문에 작년과 올해에는 마라톤을 포기했을까 아니면 비대면 마라톤 대회라도 나갔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날씨가 더 더워지기 전에 달리기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나도 언젠가는 해외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하루키가 달리는 에세이는 중간부터 읽어서인지 한창 재미있었는데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 아쉬운 대로 이번에는 책장에서 그의 소설집을 집어 들었는데 역시나 에세이에 비해 소설은 좀 김샐 때가 있다. 학교 다닐 때 마냥 신나서 이때다 하고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이 책 저 책 읽는 중인데 풍선에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퓌식하고 그 흐름이 끊어졌다. 하루키 씨를 원망해야 할지, 고맙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 그 덕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공부를 하긴 했지만 이것도 시험기간에만 즐길 수 있는 나만의 유흥이라 생각하니 조금은 서운해졌다.


앞으로 시험까지 공부를 할 수 있는 날은 고작 이틀밖에 되지 않는다. 공부를 많이 못했을뿐더러 시험이라는 것을 안쳐본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한데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시험 전날의 두려움과 설렘, 시험기간에 딴짓하는 짜릿함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 딴짓에는 이렇게 새벽까지 글을 쓰는 것 또한 포함돼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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