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양자역학의 시사점 : 매초마다 10⁴⁴번 기회가 있다.

by 하늘담

양자역학은 더 이상 미세한 입자의 움직임만을 설명하는 이론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구조를 미세하게 분해해 보여주고, 그 틈 사이에서 의식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경험하고 선택하는지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창에 가깝습니다.


양자역학이 알려주는 가장 근본적인 사실 중 하나는 세상이 연속적인 흐름이 아니라, 최소 단위로 나뉜 알갱이들의 조합이라는 점입니다. 물질뿐 아니라, 그 물질이 존재하는 공간, 그리고 우리가 당연하게 연속적으로 흐른다고 믿어온 시간마저도 양자화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시간은 강물처럼 끊김 없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플랑크 시간이라 불리는 10⁻⁴⁴초의 미세한 간격들로 이루어진 불연속적인 점들의 연쇄일 수 있습니다. 마치 영화 필름이 초당 24장의 정지된 화면을 빠르게 넘겨 연속된 영상처럼 보이게 하듯, 우리가 체험하는 ‘흐르는 시간’ 역시 수많은 정지된 순간들의 빠른 점프가 만들어낸 착시일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시간 속을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보이는 여러 개의 세계들 사이를 순식간에 이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매순간 다른 “프레임”으로 옮겨가며, 각 순간은 독립적이고 서로 연결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에도 컵은 떨어지면 깨지고, 사람은 태어나 늙어간다고 믿는 이유는, 우리가 그 방대한 가능성의 프레임들 중에서 항상 비슷한 흐름을 가진 세계를 선택하도록 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초마다 10⁴⁴번이나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우리의 신념과 익숙한 패턴은 늘 ‘비슷한 나’를 반복 선택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나를 선택할 기회를 대부분 지나쳐 버립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인과율’ 그 자체가 절대적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인과의 방향성을 유지하려는 의식의 습관일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익숙한 인과의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믿음 때문에, 우리는 세상 속을 걸어가고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세상이 우리의 의식 앞을 지나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매순간 다른 우주를 선택하고 있으며, 그 선택들을 한 줄로 이어서 본 것이 바로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이고, 공간이라 부를 뿐입니다.


각 순간은 독립적이지만, 우리의 믿음과 해석이 그 순간들을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로 묶어줍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우리는 삶이라고 부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