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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Jul 22. 2024

보고, 또 보고, 또또 봐도 재밌는

오타쿠적 감상

"나 주말에 영화 보러 가려고"


"오, 무슨 영화? 새로 개봉한 거 있어?

"탑건"


"그거 이미 봤잖아."

"이번엔 screen X 관이야."


"뭐가 다른 거야?"

"지난번에 본 건 3D, 4D, IMAX랑 돌비 사운드. screen X는 처음이야."




 같은 영화를 다시 보는 게 기껍다.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아 재밌었다. 우리 이제 뭐 먹을까?' 하면 일반인, '아 재밌었다. 이제 이 영화에 대해 찾아볼까?' 하면 오타쿠라고. 난 어쩌면 영화 오타쿠의 기질을 타고난 걸지도 모르겠다. 재미있게 본 영화는 2시간의 감상으로 끝내기가 아쉽다.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각색을 비교해 보고 싶고, 연기한 배우가 알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감상평이 궁금하다. 그렇게 이것저것 찾아보고 난 후엔 자연스럽게 재관람을 위해 표를 끊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 극장들의 유혹을 보라! 같은 영화일지라도 음향과 영상 효과가 다른 다양한 특별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응당 종류별로 감상는 게 당연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내가 한 영화를 관을 바꿔가며 본다고 이야기하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좋아하면 그 정도는 가능하다고 수긍하는 또 다른 분야의 오타쿠들과, 같은 영화를 여섯 번씩이나 보냐며 이해하지 못하는 머글(해리포터에서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을 일컫는 말. 팬이 아닌 사람들을 말하기도 한다.)들. 이상하게도 머글들에게는 내가 왜 영화를 여러 번 보는지 변명 같은 설명을 하게 된다. 만약 영화 머글이 있다면 한 번 들어보시라.


 영화는 볼 때마다 새로운 게 보인다. 첫 번째 관람에서 주인공을 따라갔다면, 두 번째부터는 조연들의 행동과 표정을 살펴보고, 그에 몰입해 본다. 다른 사람들의 해석이 담긴 감상평을 읽고 영화를 다시 보면, 같은 장면도 다르게 해석된다. 돌비 사운드 관에선 일반 관에서 들리지 않았던 초침 소리가 들린다. 소리 하나로 주인공의 초조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IMAX 관에선 천장부터 바닥까지 스크린이 가득 차 있다. 시야 가득 영화가 재생되면 마치 영화 속 세상에 들어간 것만 같다. screen X 관에서는 화면이 옆쪽 벽으로 확장되며 스크린 밖에 있던 인물들이 보인다. 3D 관에서는 주인공들이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고, 4D 관에서는 입체적인 건 물론 주인공의 경험을 함께하게 된다. 바다에 빠지기라도 하면 내 얼굴에도 축축한 물이 뿌려지고 주인공이 한 대 맞을 때 나도 같이 맞는 건 덤이다.


 영화 하나도 관에 따라 이렇게나 다르다. 머글 분들, 이제 날 좀 이해하시려나? 아니면 한 발 더 멀어지셨으려나.





 영화만큼이나 좋아하는 밤하늘 역시 감상 방법이 다양하다. 그 중 반복해서 보기를 좋아하는 하늘이 있는데, 보고 또 봐도 아름다운 가을철 밤하늘이다.


 더위가 한풀 꺾이기 시작하면 밝았던 여름철 별자리와 은하수도 서쪽 하늘로 물러가고, 얼핏 어두워 보이는 별자리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더블유(W) 모양의 카시오페이아리. 날씨가 좋다면 그 옆의 안드로메다자리나, 페가수스자리, 페르세우스자리를 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 속 주인공들의 이름을 딴 별자리들은 서로의 관계만큼이나 가까이서 한 계절을 장식하고 있다.

 맨눈으로 별자리를 다 찾았다면, 같은 하늘을 망원경으로 한 번 더 관측한다. 더 이상 별자리를 한 눈에 담을 순 없지만 사이사이 숨은 성단과 성운, 은하가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이중 성단은 몇 번을 봐도 아름답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찾았다가도 내가 감상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눈으로 보는 가을철 밤하늘 /stellarium
망원경으로 보는 가을철 밤하늘 /stellarium, 사진 출처 NASA

 가을철 밤하늘의 끝은 그게 아니다. 성능 좋은 우주 망원경으로 보면 감춰져 있던 깊은 우주의 은하들이 펼쳐진다. 빈 하늘인 줄만 알았던 페가수스자리 한구석, 은하 다섯 개가 한 데 뭉쳐있다. '슈테판 5중주'라고 불리는 다섯 은하들(물론 가장 왼쪽의 은하 하나는 나머지 네 은하들과 시선 방향만 같을 뿐 실제로는 훨씬 가까이 있지, 발견 당시엔 몰랐던 사실이다.)은 1877년 슈테판이 발견한 이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1990년 올라간 허블 우주 망원경도, 1999년 올라간 찬드라 우주 망원경도, 2021년 올라간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도 슈테판 5중주를 관측했다. 재밌는 점은 세 개의 우주 망원경의 전공이 다르다는 것이다. 허블 우주 망원경은 가시광선을 본다.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과 같다. 찬드라 우주 망원경은 병원에서 뼈를 볼 때 사용하는 X선을 사용한다. X선은 에너지가 강한 파장이기 때문에 별은 감지하지 못한다. 대신 은하 중심의 블랙홀이나, 은하와 은하가 부딪히며 생기는 큰 에너지를 볼 수 있다.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긴 적외선이 전공이다. 이 빛은 투과성이 좋다. 불투명한 은하 속을 비춰 성운(먼지)을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도와준다. 가려졌던 은하의 뒤쪽 모습도 드러난다.


페가수스자리 슈테판 5중주. 왼쪽은 허블 우주망원경(가시광선), 중간은 찬드라 우주망원경(X선), 오른쪽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적외선)이 찍었다. 세 이미지는 정렬되어 있다.


 늘 같아 보이는 가을철 하늘도 이렇게나 다양하게 볼 수 있다. 한 번의 감상으로는 절대 끝낼 수 없음에 동의할 것이다. 먼저 맨눈으로 별과 별자리들을 잇는다. 머글들은 여기서 '와 예쁘다. 별자리 신기해. 그럼, 이제 뭐 먹으러 갈까?' 말하며 돌아설 수도 있다. 하지만 밤하늘 오타쿠는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망원경으로 또 한 번, 별자리 안에 자리 잡은 성운과 성단을 관측한다. 우주 망원경들의 활약으로 또또 한 번, 깊은 우주를 다양한 빛으로 살펴본다. 보면 볼수록 자꾸 새로운 모습이 나타난다.

 밤하늘 오타쿠로서 말해본다.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것에 공감한다면, 무언가 반복해서 즐거움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가을 밤하늘을 관측해 보시라. 이 역시 보고, 또 보고, 또또 봐도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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