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한의원
우리 동네 먹자골목에 칵테일바가 생겼다. 번화가도 아니고,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거리도 아니었기 때문에 칵테일바 간판이 걸렸을 때는 의아했다. 왜 이런 동네에 칵테일바를 개업하시는 걸까? 가게가 열자마자 남편과 함께 찾아갔다.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손님이 없었다. 그날 하루종일, 아니 어쩌면 며칠간 텅 빈 가게를 홀로 지키고 계셨던 탓인지 사장님의 표정이 풀 죽은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그날 칵테일을 마시고 돌아와서 이 가게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 영수증 리뷰를 썼다. 며칠 뒤 사장님의 댓글이 달렸는데 한껏 들뜬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 기뻤다.
그러고도 우리 부부는 동네에서 외식을 할 때면 일부러라도 그 칵테일바를 찾는다. 어떤 날은 손님이 좀 있고, 어떤 날은 손님이 없었는데, 다행히도 사장님의 표정이 한결 밝고 편안해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 부부를 기억하시고는 항상 반갑게 맞아 주신다. 사장님은 그 흔한 리뷰 이벤트도 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내가 쓴 리뷰가 아직도 상단에 위치해 있다. 벌써 2~3달은 족히 지났는데도. 어느 날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괜히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왜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으시는 거야!
생판 남인 그에게 어쩌다 이런 마음이 들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칵테일에 대한 사장님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칵테일에 대한 설명, 칵테일과 관련된 추억 이야기, 원하는 칵테일을 만들어 주려 노력하시는 모습까지. 만날 때마다 그의 모습에서 칵테일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까지 전해졌기 때문에, 이곳에서 어떻게든 자리 잡아 꿈을 펼쳐나가시길 응원하게 됐다. 두 번째 이유는 그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일부 보였기 때문이었다. 오지 않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큼 힘이 빠지는 일이 또 없다. 그리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해도 내가 뭔가 부족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기분을 이겨내며 오롯이 시간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풀이 죽은 듯한 사장님의 표정도, 때론 활기차게 힘을 내고 계신 모습에서도 모두 내 모습이 겹쳐 보이곤 했다.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고 나니까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요."
"지난주까지는 정말 딱 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이젠 좀 살 것 같아요."
"선생님이 참 편한가 봐요. 제가 이런 말까지 하는 걸 보면요."
환자분들께서 해주시는 좋은 피드백이라면 어떤 말이든 기분이 좋지만 특히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내 존재 이유를 느끼게 된다. '아... 내가 한의사가 되길 참 잘했다. 이곳에 자리 잡길 참 잘했다.' 칵테일 바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문득 내가 정말 만들고 싶었던 한의원이 그려졌다. 우리 지역에서 1등으로 매출을 올리는 한의원은 못돼도, 누군가 아프면 자연스레 떠올리는 곳. 어쩌면 특별히 아픈 곳이 없는데도 한 번씩 떠오르는 곳. 몸도, 마음도 지친 하루 끝에 생각나는 곳.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다가도 위로와 용기가 필요할 때 들리고 싶은 베이스캠프.
어떻게 매출을 올려야 하는지, 내원하는 환자수를 늘리기 위해 무얼 해야 하는지 사장이라면 당연히 셈을 해야 할 것에 유난히도 서툴러서 부끄러워질 때가 많았다. 대표 원장으로서의 기본 자질이 부족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게 나만의 스타일인 듯하다.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숫자나 통계 보다도 스스로 느끼고 있는 보람과 만족스러운 마음이 더 중요한 것. 오래가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걸 아니까. 그렇게 뚜벅뚜벅, 느린 것 같아도 한의원과 함께 커 가는 내 모습을 보는 일. 그게 바로 내가 가야 할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