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에서 의미 찾기
시간을 죽이는 날이 많았던 요즘, 이렇게 살고 싶은 건 아닌데 이 답답한 마음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도무지 모르겠어서 괴롭고 지루했던 날이 많았다. 일기장에 매일 오늘 했던 일을, 오늘의 내 마음을 단 한 줄이라도 적어보려 노력했던 건 나름의 애씀이었다. 한 자리에 가만히 고여있는 것만 같아도 분명 다른 매일을 살고 있는 게 맞을 거라는 위안을 얻기 위한 애씀. 꾸역 꾸역이라도 매일 다른 한 문장을 적다 보니 가장 평범하고 별 볼이 없었던 하루에 대해 제대로 써보고 싶어졌다. 무채색 같은 하루에도 알록달록 색을 입혀보고 싶었다.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습관이 있는데, 오늘 아침엔 왠지 꾹 참아보고 싶었다. 좀 더 누워서 괜히 이 어플, 저 어플 눌러보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벌떡 일어나 출근할 준비를 했다.
아침에 뭉그적거리는 시간을 줄이니 마음에도 조금의 여유가 생긴 걸까? 차에 올라타는 순간 나를 향해 다짐하는 말 한마디를 되뇌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내 숨만큼만 하자.
그래도 괜찮을 거야.
매일 주차를 하던 골목길이 공사로 인해 진입이 통제되어 있었다. 한의원에서 조금 더 떨어진 골목에 주차를 한 덕분에 분홍색, 노란색 꽃들이 가득한 아파트 화단 곁을 걸어왔다. 평소 같으면 가까이에 주차를 못했다며 속상했을 텐데 꽃들 덕분인지, 선선한 바람 덕분인지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출근하자마자 도착한 우편물들을 확인하고 컵을 씻어 시원한 물을 담아 온다. 나보다 먼저 와서 기다려주신 환자분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치료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은 없는지 to do list 파일을 확인했다. 다음 주 토요일이 정기 휴진일이고, 그다음 주에는 선거일, 현충일 등으로 일정이 복잡했다. 시간이 남는 틈을 타 데스크에 세워둘 2주간의 진료 안내문과 문 앞에 붙여둘 휴진 안내문을 만들었다. 안내문을 만드는 사이사이 진료를 보고, 환자분이 요구한 서류를 쓰고, 또 진료를 보다 보니 어느새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고 밖으로 나갔다. 차도 근처로 끌고 올 겸 아침 출근길에 걸었던 길을 다시 걷는데, 바람의 방향이 바뀐 건지 아침에는 느끼지 못했던 꽃 향기도 향긋하게 날려왔다. 가끔은 이렇게 평소 다니지 않던 길로도 걸어봐야겠다.
보통 오후 진료 시간은 오전에 비해 조금 더 여유롭다. 그래서 환자가 없는 시간엔 한약 처방도 고민하고, 복약 지도서도 쓴다. 요즘은 실장님과 내가 하는 일의 매뉴얼도 조금씩 문서화해보고 있다. 그렇게 이런 일, 저런 일들을 처리하고도 남은 시간에는 책도 읽고 글도 쓴다. 그리고 오시는 환자분들을 뵙다 보면 하루가 마무리된다.
책과 글이 없었다면 이 시간을 어떻게 버텼을까 싶다. 그렇게 좋아하던 책도 요즘엔 잘 잡히지 않아 괴로웠는데, 최근에 한 소설책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읽고 있다. 이 책이 마중물이 되어 다시 글에도, 책에도 재미가 붙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요즘 체력이 너무 안 좋아서 퇴근하면 나도 모르게 쓰러지듯 잠들고 다시 일어나 아침을 맞는 일상이 반복됐었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잠자고. 이렇게만 반복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하루 일과를 자세히 떠올려보니 마냥 무채색 같은 하루는 아니었던 것 같다.
최근에는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게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어떤 사람의 어떤 모습이 부럽다가도 저렇게 살기 위해 저 사람의 삶을 내가 대신 살 자신이 있는가 생각해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된다. 그냥 지금의 어떤 한 모습이 부러울 뿐이지 그렇게 되기 위한 모든 과정과 또 그 과정에서 겪었을 수많은 감정들을 다 감당할 자신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다 감당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그 모습이 어떻게 될 수 있을까.
매일이 똑같은 것만 같아도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보니 분명 다른 온도와 색깔이 있었다.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바람을 느끼고, 꽃향기를 맡는 내가 있다는 걸 분명하게 감각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에 충실한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평범한 매일을 내 숨만큼 감당하며 차근차근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나가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