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는 대신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새로 피어날 마음을 심으며

by 사월

드디어 한의원에 복직했다. 오랜만에 한의원에 나오니 그간 꾸준히 봐왔던 단골손님분들의 얼굴이 더없이 반가웠다. 축하 인사도 어찌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내가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그전에는 몰랐는데 오래간만이라 그런지 한의원에 방치되어 있다시피 했던 화분들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개원을 축하한다며 받은 난초 2개와 스투키와 금전수 하나씩, 그리고 이전 원장님 때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호접란과 홍콩야자가 있었다.


한의원이 쉬는 날, 분갈이가 필요한 화분을 챙겨서 집 근처 화원에 갔다. 한의원 화분이 놓여있던 사진을 보여드리며 이 공간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사장님과 함께 고민했다. 솔직히 말하면 난초는 내 취향이 아니다. 호접란과 홍콩 야자도 온전히 내 식물은 아니어서 그런지 영 정이 안 갔다. 사장님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스투키랑 금전수만 살리고 나머지는 내가 원하는 식물로 새 단장을 하기로 했다.


한의원 새 식구들


남은 식물은 어떻게 버려야 하냐는 내 질문에 사장님은 당근에 나눔으로 내놓으면 가져가려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추천해 주셨다. 그날 저녁 기쁨이를 재우고 당근마켓에 '식물'이라던가 '화분' 같은 단어로 검색을 해봤다. 정말로 화분을 판매하려는 글들이 차고 넘쳤다.


나눔 글을 올리면 수요가 충분할 듯싶었다. 하지만 걱정 부자답게 걱정이 앞섰다. '무료 나눔을 하다 보면 이상한 일도 많이 일어난다는데, 괜히 신경 쓰일 일만 생기면 어쩌지? 에라 모르겠다, 그냥 한의원 오가는 분들 중 관심 있는 분 계시면 드리고 아니면 버려야지.' 그렇게 마음을 먹고 출근했다.


막상 우리 한의원 창가를 오랜 시간 지켜 주던 식물들을 보고 있으니 '버려버릴 테다!' 했던 마음이 쏙 들어갔다. '이 아이들도 다 생명인데...' 결국 걱정보다 정든 마음이 더 큰 탓에 바로 당근마켓에 무료 나눔 글을 올렸다. 글을 올린 지 30분도 안 됐는데 나눔 받고 싶다는 알림을 많이 받았다. 다행히도 관심 있다는 화분이 겹치지 않아 차례로 신청을 받았고, 그중에서도 한 분은 지금 곧바로 출발하신단다. 드디어 첫 거래다!


"당근 보고 왔는데요!"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분이셨다. 환한 미소에서 설레는 마음이 물씬 풍겼다. 막상 와보니 다른 화분에도 관심이 가셨는지 무려 2개의 화분을 챙겨가셨다. 화분을 차에 실어드리고 마치 '우리 아이들 잘 부탁드려요.' 하는 마음으로 쌍화탕을 챙겨드렸다. 물건과 마음이 오고 가는 순간, 내가 왜 그리 겁먹었을까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최선을 다해 키워보겠다는 인사까지 받고 나니 괜스레 내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만 같았다. 한 생명을 더 좋은 곳으로 잘 보내준 느낌이었달까. 져버리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진 것 같은 뿌듯함이었을까. 아마도 기쁨이를 키워보면서 한 생명을 돌본다는 게 어떤 일인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쉽게 버리지 못했었나 보다. 거기 가서는 더 많은 사랑받으며 푸르게 잘 자라렴. 그동안 고마웠어!

정들었던 아이들, 이제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