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60점

by 사월

한의원에 하나뿐인 직원인 실장님의 시어머님께서 위독하시다는 연락이 왔다.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이어오시다가 지난달 중환자실에 들어가시고 말았다는 소식은 진작 알고 있었다. 조만간 부고 소식을 듣게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지만 그게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는 아니기만을 바랬던 것 같다. 세상은 대체로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가 더 많은 편이라는 건 왜 매번 까먹는 걸까.


일단 급히 포항으로 내려가게 된 실장님의 소식을 기다리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수십 번 한의원 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이번 고비를 어떻게 넘기시게 될지, 실장님도, 나도 자리를 비운 한의원을 과연 알바를 붙여 운영할 수 있을지, 혹시라도 부고 소식이 들려온다면 언제부터 언제까지 문을 닫아야 할지... 사람이 죽고 사는 일 앞에서 이런 고민부터 해야 한다는 게 부끄러웠다.


변동적인 상황 앞에서 대진 원장님께도, 환자분들께도 한의원 운영을 어떻게 하겠다는 결정을 내려 연락을 돌려야만 하는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는데... 수십 가지 경우의 수 앞에서 내 마음속은 불안의 쓰나미가 덮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패닉에 빠진 것이다.


쓰나미가 덮쳐와도 일단 나는 한의원에 가야만 했다. 휴진 안내 문자를 돌리고 문 앞에 안내문도 붙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 잠에서 깨어난 기쁨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급히 운전대를 잡았다. 빨리 가야만 하는데 눈물이 자꾸만 눈앞을 가렸다. '환자분들께 불편을 드리고 싶지 않은데... 대진 원장님께도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은데... 실장님의 슬픈 마음도 잘 헤아려 드려야 하는데...' 단 한 가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였다.


눈물 콧물이 범벅된 채로 환자분들께 휴진 안내 문자를 돌리고, 한의원 올라오는 길 곳곳에 진료 관련 안내문을 붙인 뒤 집에 돌아왔다. 한바탕 소동이 진정되고 나서야 잠깐 숨 쉴 틈이 필요하단 걸 알 수 있었다. 급히 친정아버지께 기쁨이를 맡기고 근처 공원에 가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잔물결에 비치는 윤슬, 오랜만에 들어보는 새들의 지저귐, 한낮의 햇빛과 선선한 바람까지. 이토록 무심한듯 평화로운 공원의 풍경 속에 나를 맡겼더니 내 안 깊은 곳 어딘가에서 나를 살리려는 말이 천천히 떠올랐다.


60점만 하자. 이대로 가다가는 내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아.
60점이면 충분해. 내 숨만큼만 하며 살자.




때로는 사소한 다정함이 사람을 구하기도 한다. 그 일이 있고 이튿날, 한의원을 다시 찾았다. 한의원 문을 닫은 사이 도착한 택배 때문이었다. 건물 밖에 덩그러니 놓인 택배가 아무래도 신경 쓰인 것이다. '잃어버려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다시 시키면 되는 거다.' 60점만 하기로 다짐했던 마음을 되뇌었다. 아니나 다를까 뒤늦게 도착한 현관 앞은 텅 비어있었다. 잔뜩 실망한 채 터덜터덜 한의원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 택배가 우리 한의원 문 앞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게 아닌가. 아마도 3층 교회나 4층 태권도장에서 올려주신 듯했다. 이유 모를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빈틈은 어딘가에서 채워지는구나. 어쩌면 60점끼리 모여, 완벽하진 않아도 완전한 모양새를 만들기도 하는구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 때로는 서툰 나를 키우느라 다정함 한 스푼 살포시 얹어주는 것 같았다. 그 힘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