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어도 행복할 수는 있다.
사건의 시작은 대망의 결혼식 전 날 밤부터였다. 내일이 결혼식인데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지만 정작 밤이 되자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그렇게 한 숨도 못 잔 신랑 신부는 각성된 채로 식장에 들어갔다. 특히 신부였던 나는 결혼식 와중에도 계속 현실감이 없었고 도우미분들과 스냅 작가님의 말만 들으며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식을 치렀다. 아마도 너무 긴장이 된 나머지 내 몸은 긴장을 회피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쪽을 선택했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괌으로 떠날 예정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식이 끝나고 인천으로 올라갔다. 그 날만큼은 빨리 숙소에 들어가서 나갈 채비를 해두고 바로 잤어야 했는데, 결혼식을 무사히 마쳤다는 기쁨에 취한 나머지 인천에 사는 도련님 부부와 저녁에 술 한 잔을 기울이게 됐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땐 오전 9시 쯤 이었고, 우리 비행기는 9시 40분 출발 예정이었다. 짐을 싸서 모자를 눌러쓰고 헐레벌떡 공항에 도착했지만 우리가 타야할 항공사 승무원들은 수속을 마치고 철수한 상태였고, 그렇게 신혼여행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살면서 비행기를 놓치는 것도 드문 경험인데, 심지어 허니문 비행기를 늦잠자서 못타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
화가 나고 짜증나고 누구라도 탓하고 싶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우린 서로를 보며 웃음이 났다. 일단은 오늘 놓친 비행기를 환불받았고(위약금을 물고 반절정도를 환불받았다.), 내일 항공편을 예약했다. 얼마라도 환불받을 수 있다는 게 마냥 감사했고, 심지어 새로 예약한 비행편은 기존보다 저렴했다. 비행기를 놓쳤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모든 게 절망적이고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놓쳤구나…!’를 받아들이고 나니 세상이 참 좋아져서 핸드폰으로 앉은 자리에서 항공편 환불, 예약이 쉽게 된다는 것도 감사하고, 노쇼 고객에게도 환불이란 걸 해준다니, 그것조차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벌어진 상황을 모두 정리하고 이제 막 남편이 된 솔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다 내 탓인 것 같아서, 지연이가 엄청 화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 많이 걱정했어.” 그 말을 들은 나는 화내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내심 뿌듯해하며 이야기했다. “비행기를 놓쳤다는 걸 안 순간, 전에 김영하 작가가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어. 그게 이 순간이구나! 하고.”
김영하 작가는 여행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여행지에서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건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되요. 현실에서 겪는 갈등은 심각해질 수도 있지만, 여행지에서 겪는 갈등은 수습하고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좋은 추억이 될 수 있거든요. 오히려 진짜 실패한 여행은 여정이 너무나 매끄러워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이번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사람들에게 얼마나 엄청난 일이 있었는지 신이 나서 설명해주는 모습을 떠올렸다. 물론 당분간 서로의 부모님께는 너무 걱정하실 걸 알기에 말씀드리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언젠가는 사실 그 때 이런 일이 있었노라고 웃으며 말할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무사히 비행기를 타고 괌에 도착하니 모든 게 꿈만 같았다. 안 그래도 오랜만의 해외여행이라 들떠 있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도착하고 나니 기쁨과 행복이 두 배, 세 배로 커졌다. 직원이 실수를 해도, 번거로운 일이 생겨도 ‘그게 뭐가 중요해! 비행기 놓치는 것 보다 더한 일이 있을까? 우리 둘 다 무사하니 조금 귀찮은 것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넘길 수 있었다.
우리 둘은 신혼여행을 하면서 앞으로도 비행기를 놓치던 그 날처럼 살자고 다짐했다. 예기치 못한 일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계획이 틀어지기도 하고, 하고 싶은 걸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 남 탓이나 상황 탓을 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결국엔 하나씩 해결되고 행복과 만족감은 몇 배로 더 커진다. 우여곡절 덕분인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일들에도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건 덤으로 찾아오는 행운이다.
지금 이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우리 부부는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 순간을 즐기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돌발 상황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벌어진 상황은 어떻게든 해결되고 그 순간은 반드시 지나가며, 지나고 나면 반짝이는 추억으로 남는다는 걸 배운 값진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