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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ug 22. 2022

불안을 이기는 힘

괜찮아. 다 괜찮아. 

나는 괜찮다는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세상은 불확실한 것 투성이에, 위험천만한 곳이어서 항상 불안하고 걱정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괜찮은 적이 없었고, 마음 깊이 모두 다 괜찮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다 괜찮지는 않지. 잘 되면 괜찮을지 몰라도, 뭐 하나라도 잘못된다면 괜찮을 수 없지.' 


그래서 좋았던 점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많은 일들을 실수 없이 처리할 수 있었고, 완성도도 높았다. 잘한다는 칭찬도 자주 들었고 뿌듯함도 많이 느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마냥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잘' 하는 게 기본 값이 된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공을 들여도 항상 불안하고 초조했다. 작은 실수라도 하나 나오는 날에는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나는 완벽한 존재일 수 없는데, 그렇게 되고자 끝없이 달려야 하는 레이스에 내 발로 올라와 있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사람은 의외로 쉽게 변하기도 한다. 30여 년 가까이 부족한 점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포커싱하며 살아온 나였지만, 분명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다. 사람은 자주 듣는 말에 따라 변한다. 자주 들리는 말들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가 중요한 순간에 자동으로 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요즘 나에게 '괜찮다'는 말을 많이 들려주는 사람은 남편이다. 자괴감에 빠져있는 나를 보며 시든 꽃에 물을 주듯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라는 말을 수시로 들려주곤 한다. 처음에는 그 말이 다 무슨 소용인지 몰랐다. 의례 하는 말이겠거니, 괜찮다고 말한다고 진짜 괜찮아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 나는 말을 잘 못하잖아.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싶은데 적절한 말을, 제 때에 잘 못하는 것 같아.

-남편: 괜찮아. 자꾸만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 한다고, 말도 잘 해야만 한다고 억지로 밀어 넣으니까 더 위축됐던 거야. 나한테 이야기 할 때는 별 생각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말이 마구 떠오르고 어렵지도 않지? 그렇게 자주 이야기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도 애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 할 수 있는 타이밍이 올 거니까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나: 나는 일처리를 빨리 빨리 못하잖아. 일 할 때는 때로는 빠르게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처리해야 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 뚝딱거리게 되고, 잘 못하는 것 같아. 

-남편: 천천히 해도 괜찮아. 너는 스스로 느리다고 생각하겠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게 느리지도 않아. 그리고 차근차근 해보면 급한 마음으로 일처리 할 때랑 시간도 얼마 차이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그러니까 천천히 해도, 사람들이 조금 기다려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아도 다 괜찮아. 


내가 힘들어하고 있으면, 남편은 언제나 “그래도 괜찮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리고 너는 이런 것도 할 줄 안다, 너에게는 저런 면도 있다.”고 위로와 칭찬 폭격을 날려준다. 신기한 점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혼자 있을 때에도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게 된다는 것이다. 


언제나, 어떤 모습이라도 다 괜찮아.


마음이 물에 젖은 휴지조각처럼 쪼그라드는 날에는, 그래도 괜찮다고, 이상한 게 아니라고,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위로하게 된다. 그렇게 마음에 햇빛을 쬐어주다 보면 젖은 수건이 보송보송해지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금세 포근하고 부드럽게 바뀐다. 그리고 조금 더 당당하게 존재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얼굴에 난 뾰루지를 들여다보듯 내가 못하는 것들만 유난히도 크게 보이는 날에는, 그렇게 느껴지니 힘들었겠다고, 못해도 괜찮다고, 그런 특징들 때문에 오히려 이런 것은 잘 할 수 있었던 거라고, 그리고 사실 나는 잘할 수 있는 것도 많다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점점 더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고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도 커져만 간다는 걸 몸소 느낀다. 





이탈리아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장애인을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한 사람이 무언가를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에 반해 잘하는 것이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걸을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잘 쓰는 사람일 수도 있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요리를 잘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다만 내가 무엇을 보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나는 잘하는 것도 많은데, 못하는 것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원래 사람은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는 그런 존재이다.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일 뿐이다. 이제는 내 마음속에도 조금씩 틈이 생겨 스스로에게도 괜찮다는 말을 해볼 수 있다. 괜찮다는 말은 아무 소용없는, 힘없는 말이 아니었다. 괜찮다고 자주 말하다 보면 진짜 괜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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