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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Sep 21. 2022

오늘따라 글이 써지지 않는 작가들에게

별 볼일 없는 초고를 쓰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해야 하는' 일들을 얼른 해치우고 마음 편히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게 있다. 해야 하는 일들을 해치우고 나면 더 이상 기운이 남아나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늘 아침, 나는 온몸이 찌뿌둥하고 감정 에너지가 바닥을 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자 오늘만큼은 해야 할 일을 빨리 해내기보다는 내 몸이 하고 싶다는 대로 자유롭게 둬야 한다는 걸 알았다.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하고 올라오는 죄책감을 잠시 떼어두고 <오늘은 출근한 것만으로도 내 할 도리를 다 했다. 퇴근하고는 대학원도 갈 건데 이렇게 오고 가는 것만으로도 난 최선을 다한 것이다.> 하고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그 이상의 에너지 소모를 막고, 많은 의무와 책임에 끌려 다니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라고 할까.


마음을 다잡기 위해 다녀온 산책. 가을 하늘은 내 마음까지도 넓어지게 한다.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글 쓰는 일이었다. 추석 연휴를 기점으로 일상의 균형이 깨져 회복이 어려웠다. 글을 쓰려해도 써지지 않고 머릿속에 소재들이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기만 할 뿐, 손에 잡히는 게 없는 듯 한 괴로운 기간이었다. 


너저분한 책상 위의 문서와 물건들을 한쪽으로 싹 쓸어놓는 것처럼 머릿속에 꽉 찬 해야 할 일들 목록을 한쪽에 치워버리고 나니 절대 쓸 수 없을 것만 같던 글의 소재가 드디어 떠올랐다. 그동안 이리저리 다방면으로 고민했었지만 한 번도 떠올린 적 없었던 내용이었다. 그리고는 일단 써 내려갔다. 


중간중간 ‘글이 이상한데?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악마의 속삭임도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쓰기로 했다. 글이 써지는 게 오랜만이라 허접한 글이라도 써내는 게 내게는 중요했다. 일단 쓰자. 쓰고 나서 다듬고, 다듬고, 또 다듬자. 


그렇게 또 한 편의 글이 탄생했다. 글 쓰는 방법을 다 잊은 것만 같아 참담하던 차였는데, 마치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전전긍긍하다가 별안간 뻥 뚫린 도로를 달리게 된 것처럼 후련하고 기뻤다. 작가 지망생들의 필독서로 유명한 <쓰기의 감각>에 그런 말이 있다. 어떤 대단한 작가라 할지라도 초고는 너저분하다고. 그러니 걱정 말고 일단 써보라고. 생각나는 말들을 계속 쓰다 보면 문득 5페이지 마지막 줄쯤에서 완벽한 첫 문장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이미 여러 권의 책을 냈고 대중의 인기도 상당한 한 작가도 이런 말을 했다. 여전히 빈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가 무섭다고 말이다. 그래서 마치 이 글을 다 쓰고 말 것이라며 자신과의 약속이라도 하듯 일단 커서를 쭉 내려 “끝”이라는 단어를 미리 써둔다고 했다. 재미있는 방법이다.


나만 무서운 게 아니라는 고백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특히 그게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의 말이라면 힘이 더 세다. 그 말들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도 용기를 내 써본다. 일기나 써봐야지 하며 시작한 이 글도 어느새 여기까지 썼잖아? 이렇게 매일 용기를 내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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