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건 호기심이었다.
어릴 적 3살 터울의 남동생이 너무 예뻐 보여 아끼고 좋아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천방지축에 밖에 나가 뛰어놀길 좋아하다 보니 여기저기 깨지고 새카맣게 타기 일쑤였지만, 동생은 가만히 앉아 책을 읽거나 레고 놀이하길 좋아해서 피부가 뽀얗고 예뻤다. 그렇게 취향은 달라도 함께 놀 때만큼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어른들 말에 의하면 둘은 잘 싸우지도 않고 순했다고 한다. 엄마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너희 커서도 그렇게 지내야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남매가 지금처럼 사이좋게 지내면 얼마나 든든하고 좋겠어. 부럽다 정말."
애석하게도 우리의 우정은 성인이 되기도 전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사춘기에 접어들자 대화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동생은 고등학생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시작해, 그 이후로는 항상 따로 살았다. 어느 순간부터 동생은 우리 가족 사이에서 겉돈다고 느껴졌다. 아니, 동생이 우리 가족과 어울리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기 전까지 6~7개월 정도를 본가에서 함께 지냈다. 그때 본 동생의 모습은 유별나 보였다. 좋아하는 것들이 확고하고 그것들에 투자하기를 아끼지 않아서 작은 방 한편에 굿즈들이 가득했고 그것들에 시간과 열정을 쏟는 것 같았다. 동생 방에 들어가면 우리 집 분위기와 너무 달라서 전혀 다른 공간에 온 것 같이 느껴졌다. 부모님이나 나의 경우에는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많지 않을뿐더러 취미에 시간과 돈을 쓰는 것에 익숙지 않아서 그런 동생의 모습이 낯설었다.
형제간의 우애가 좋은 남편은 나와 동생의 남매간의 우애도 잘 회복되고, 본인도 처남에게 친형처럼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길 바랬다. 동생은 처음에는 매형을 낯설어했고 경계도 많이 했었는데, 선을 지키며 기다리고 먼저 손 내밀며 이해하려는 남편의 모습에 점차 마음을 열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여자 친구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며 넷이 함께 만날 약속을 잡았다.
서울에서 만난 우리는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곧장 보드게임 카페로 향했다. 그곳에서 신이 나 게임을 하는 동생은 영락없는 어릴 적 모습 그대로였다. 어색할 틈도 없이 게임을 통해 친해진 넷은 저녁 겸 술 한 잔 하러 식당으로 향했다.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가던 중 동생이 최근 도마뱀을 키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갑자기 웬 도마뱀?!' 하는 생각이 스치고 있었는데, 남편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남편: 우와! 어떻게 도마뱀 키울 생각을 하게 됐어?
동생: 도마뱀은 야행성이거든요. 낮에 제가 회사에 가있는 동안엔 잠을 자고 퇴근하고 오면 생활이 시작되니 반려동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남편: 오 그건 몰랐네. 직장인에게 정말 딱이다. 사실 나는 파충류는 조금 무서워하는데, 그 친구랑 교감도 할 수 있고 그래?
동생: 그럼요. 얼마나 귀여운데요. 동영상도 있는데 한 번 보실래요?
두 눈을 반짝이며 핸드폰을 꺼내 보여주는데 그렇게 생기가 도는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그때 우리 가족의 문제를 문득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동생이 좀 특이하고 유별나다고만 생각했지, 그게 뭔지, 그게 왜 좋은지를 물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물어본 적은 있었지만 좀 이상하지 않냐며 유별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의 마음을 동생은 모두 느끼고 있었다. 우리 가족 하고는 말도 섞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말할 수 없게 만든 것은 어쩌면 우리 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그리고 본가에 들렀던 어느 날 늦은 저녁, 피곤해서 먼저 방에 들어와 잠을 청하는데, 거실에서 술 한 잔을 기울이고 있는 동생과 남편 사이의 사랑스러운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동생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날 밤 눈물이 핑 돌았다.
"매형, 저는 어릴 적에 누나가 저를 데리고 다니며 놀았던 장면, 누나가 나를 챙겨주려고 하는 장면들이 정말 고마웠던 감정으로 기억에 남아있어요. 그런데 크면서 본 누나는 힘들어 보였어요.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 시키는 것들을 척척 다 해내는데, 대단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나는 좋아하는 게 뭘까? 행복할까? 생각했어요. 저나 아빠는, 매형도 보시면 알잖아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마음대로 살거든요. 이제는 누나도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도 보고, 마음껏 살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동생을 이해해보려고 한 적이 없었는데, 동생은 나보다 나를 더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를 향한 따뜻한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전하지 못했던 말들이 남편을 통해서 오고 가기 시작했다. 그 존재가 너무나도 당연해서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우리 가족의 관계 속에 새 사람이 들어와 아이스 브레이커가 되어 준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동생을 이해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다. 그렇게 동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고 나니 많은 것들로 꽉 찬 동생의 방이 다채롭고 즐겁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와 이별하면서 아빠도, 나도 정신없던 그 시간을 군대에서 홀로 이겨내야만 했던 동생의 모습이 스쳐갔다. 그 시간과 그때의 마음이 궁금하다. 언젠가는 동생과도 그 시절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