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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Oct 22. 2022

감사하다는 인사말의 힘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나는 한의사이다. 한의사는 환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상담도 하고, 침도 놓고, 약도 처방하면서 말이다. 환자는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는다. 그리고 치료 비용을 지불한다. 돈을 냈으니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꼭 침을 놓고 나면 감사하다고 표현을 하는 환자들이 있다. 특별한 의도 없이 습관적으로, 또는 간단한 인사치레로 뱉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그 감사하다는 표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설령 진실로 그것이 의례 하는 말이었을 뿐이더라도 내가 그렇게 받지 않는다면, 내가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말은 의미 있는 말이 된다. 환자분들의 표현에 집중해 보니 생각보다 더 많은 분들이 감사를 표하고 계셨다.


나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감사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런 직종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한 부분이다. 어떤 날은 너무 피곤했고, 내 몸이 아픈 날도 있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힘을 빼고 진료한 날도 있었는데, 표현하는 환자들은 어느 때고 상관없이 감사함을 표하신다. 


불편했던 증상들이 많이 나아졌을 때에 고맙다고 표현하는 분들도 계시다. 예를 들면, "선생님이 침을 잘 놔주셔서 혹은 약을 잘 지어주셔서 많이 좋아졌어요. 감사해요!"와 같은 경우이다. 혹자는 이런 경우에는 당연히 고마울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여기실 수도 있겠으나, 고맙다고 생각하는 것과 말로써 전달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또한 나는 치료를 받고 나아지는 것을 온전히 치료자(의료인)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유난히 반복되는 컴플레인으로 자괴감에 빠진 날이었다. 힘들어하는 나에게 한 선배님은 이런 말을 해주셨다.


세상에는 총 3가지의 일이 있다고 해요. 나의 일, 남의 일, 신의 일.

우리가 열심히 진료하고, 처방하고, 치료하는 것은 '나의 일'이죠. 처방해 드린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생활 습관을 고치고, 치료받으러 한의원으로 나오시는 것은 '남의 일(환자의 일)'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질병이 나아지는 것은 사실 '신의 일'이에요.

그러니 '내 일'이 무엇인지 그 구분을 명확히 생각해 보세요. 혹시 남의 일이나 신의 일에 관여하고 있다면 스트레스가 클 거예요. 


그 후로 나는 환자의 증상이나 질병이 나아지는 것이 온전히 내 덕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노력과 환자의 노력이 합쳐지고, 거기에 우리가 알 수 없는 플러스알파까지 더해져야 병은 낫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좋아질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그 공로 중 일부를 꼭 환자분께 돌려드린다. 약도 열심히 챙겨 드시고, 침 치료도 꾸준히 나와주신 덕분이라고. 특히나 저를 믿고 따라와 주신 덕분이라고 말이다. 


나는 적절한 타이밍에 도착했던 어떤 칭찬들을 떠올렸다. 그 칭찬에 기대어 성장한 순간에 대해서도. 
<저는 이 정도가 좋아요> p.94


"15분 정도 침 맞고 계실 거예요~" 하고 마무리하는 나의 멘트 끝에 꼭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인사해 주시는 분들이 있다. 옛날에는 그 말을 그냥 흘려 들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 말을 땅에 떨어진 밤을 줍듯이 하나하나 소중히 챙겨 나온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반성도 한다. 내가 어딜 가서든 서비스를 제공받고 감사하다는 말을 꺼낸 적이 있었던가? 마음속으로는 고맙다고 생각해도 괜히 머쓱해서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본 적은 드물었다.


하지만 내가 이 말들을 주워 담아 곱씹어보니, 그 흔한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겠다. 그저 반복되는 업무 같고, 내가 쓸모없다고 느껴지는 우울한 날에도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따뜻한 말이다. 감사하다는 그 인사들이 이제는 너무도 소중하고 귀하게 느껴진다. 나도 어딘가에 가서 어떤 서비스를 받더라도 그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감사하다고 말해야겠다 다짐한다. 그 당연해 보이는 서비스 속에 얼마나 큰 노고가 담겨 있을지 내가 감히 가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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