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연이라 느껴지는 책이 한 권쯤 있지 않나요?
나는 책과의 인연을 믿는다. 마치 사람과의 인연처럼 꼭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책이 내 앞에 나타나곤 한다. 내가 소화할 수 없는 혹은 지금 필요치 않은 책은 눈앞에 있어도 볼 수 없고, 읽을 수 없다. 책에 발이나 날개가 달렸을 리는 없으니, 책이 나타난다기보다는 내 눈에 띈다는 쪽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때로는 적절한 시기가 되기 전까진 책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 법이죠.
<섬에 있는 서점> p.119
얼마 전 리뷰한 송은정 작가님의 <저는 이 정도가 좋아요>라는 책에는 나만 신기하게 생각하는 소소한 사연이 담겨있다. 3~4년 전쯤 다니던 직장 앞에는 교보문고가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서점을 배회하면서 이 책, 저 책을 탐험하곤 했다. 보통은 베스트셀러가 전시된 코너에서 '요즘 핫한 책들은 뭔가?'하고 둘러보는 편이었는데, 그날따라 그와는 멀찍이 떨어진 에세이 코너에 꽂혀있는 책들을 유심히 살펴봤다. 아담한 내 키에 맞는 시선에 걸리던 책의 제목들을 훑어보던 중,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를 발견한다.
책방을 닫는 이야기라? 보통은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열심히 해내고 있다는 소재의 이야기를 쓰기 마련인데, 신선했다. 책을 꺼내 들고 마음에 드는 꼭지를 펼쳤다. 글이 술술 읽혔고 나머지 내용도 궁금해졌다. 망설임 없이 책을 사서 며칠간 푹 빠져 읽었고, 그 후로 우리 집 책장에 조용히 꽂혀 지냈을 것이다.
그로부터 수년이 흘렀고, 나는 책방을 닫았다는 책도, 작가님의 성함도 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책으로, 10명의 작가들이 '집'에 대한 생각을 써낸 이야기였다. 여러 가지 문체들에 적응하며 읽어가던 중 유난히 술술 읽히고 재미있는 글을 발견했다. 그렇다, 바로 '송은정' 작가님의 글이었다. 스마트폰을 켜 이름을 검색했고, 책의 목록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글 취향이 너무 소나무같이 변함없다는 사실에 살짝 소름이 끼쳤다.
'이게 바로 내 취향이구나, 이 분의 책은 무엇을 읽어도 재미있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어서 가장 끌리는 제목이었던 <저는 이 정도가 좋아요>를 주문했다. 그렇게 이 책은 몇 년의 시간을 지나, 몇 권의 책들을 거쳐 내 앞에 나타났다.
사실은 지루할 수도 있는 이 이야기를 <저는 이 정도가 좋아요>를 리뷰하는 글의 서문에 썼다가 모두 지웠다. 그런데 자꾸만 이 이야기를 쓰고 싶다. 이번에도 다른 주제의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연결이 잘 될 거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또 쓰고 말았다. 쓰고 보니 서문으로 쓰기에는 역시나 너무 길다. 추가로 다른 글과 연결 짓기에는 부담스럽다. 아무래도 이 글은 어떤 글의 서문이 아닌, 당당히 단독으로 남겨질 운명이었나 보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비슷한 경험이 하나쯤은 다들 있지 않을까? 나만 신기하게 느낄 이 경험에 대해 "아니에요. 저도 신기한걸요?"하고 공감하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난 이 과정에서 좀 흥분했고 들떴고 설렜는데,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상상을 해보니 영 시시하게 느껴져서 혼자만의 추억으로 간직하려던 참이었다. 그렇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라면 좀 더 용기가 생긴다.
인연이라고 느낀 책이 있나요?
그 책과 어떻게 만났나요?
어떤 부분에서 강한 연결감을 느꼈나요?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무엇이든 듣고 싶습니다.
당신도 책에 분명 인연이 있다고 믿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