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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Feb 11. 2023

마성의 스킵 버튼

일상 속 보물찾기

언젠가 친구가 “나는 요즘 드라마도 배속으로 봐. 안 그러면 답답해서 못 견디겠어.” 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한 적이 있다. 그 때 다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드라마를 배속으로 보는 사람이 어딨어.” 하고 깔깔거렸다. 얼마 전에는 지인에게 매우 두꺼운 책 한 권을 빌렸었는데, 1/3 쯤 읽다가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포기하고 돌려준 일이 있었다. 친구에게 다 못 읽었다고 하자 이런 말이 돌아왔다. “괜찮아. 유튜브에 치면 15분에 요약해서 알려주는 거 있어. 그거 보면 되지.”


우리는 점점 지루한 시간을 조금도 견디지 못하는 몸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핵심이 나오기 전까지의 내용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화면 오른쪽을 검지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10초 뒤에 나올 말을 당겨 듣곤 한다. 드라마를 배속으로 본다던 친구도 사실 꽤나 정성스러운 편이다. 그래도 전체 장면과 내용을 다 본다는 거니까. 16화짜리 드라마를 20~30분에 압축해서 알려주는 영상도 많은데 말이다.


가끔은 멍 때리는 게 뇌 건강에 그렇게 좋다는 데 흘러가는 시간을 그냥 두고 보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가만히 앉아 머리를 쉬게 해줄 자신이 없을 때는 기꺼이 몸을 일으켜 요가원에 간다. 몸을 괴롭혀서라도 딴 생각을 못하게 막아보고 싶은 간절함의 표현이다.


“매트 앞 쪽 1/3 지점 쯤에 무릎으로 서 볼까요?”


선생님 지시에 앞서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건만 두려워하는 동작 앞에선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요동친다. ‘우스트라아사나’를 하려나 보다! 일명 낙타자세로 허벅지 앞면의 힘과 척추의 유연성을 요구하는 자세이다. 일전에 이 자세를 연습하다가 허리를 삐끗한 적이 있다. 그 후로는 무릎으로 스자는 말만 들어도 뜬금없이 쪽지시험을 본다는 말을 들은 아이처럼 긴장이 감돈다.

우스트라아사나(낙타자세)

일단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집중해 보려 노력했다. 꼬리뼈가 움직이는 느낌, 몸의 중심이 어딜 향해 있는지, 숨쉴 때 내 갈비뼈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런 것들 말이다. 그 다음에는 시도나 한 번 해본다는 마음으로 한 쪽 씩 살며시 손을 떼 가슴 앞으로 가져와 봤다. 그때 그때 해야하는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었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허벅지에 온 몸을 맡기며 합장하고 있었다.


수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동안 잘 안되던 동작을 만들려 애쓰던 나를 떠올렸다. 나는 이미 잘 되는 앞 동작들은 모두 건너뛰고, 완성에 가까운 어려운 동작들만 반복하며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요가에서 건너뛸 수 있는 동작은 없었다. 모든 동작은 연결되어 있어서 생략하고 결말부터 볼 수는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올법한 행복이나 슬픔이 최고점을 찍는 순간이라던가,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날은 찰나에 불과하다. 오히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들과 핀 조명을 받지 못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최고의 명장면만을 고대하며 산다면 아마도 매일 대부분의 경험이 마치 넘어지고 고꾸라지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아니, 차라리 넘어지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너무 느려서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유튜브 영상을 빨리감기 하고, 배속하듯이 일상에서도 자꾸만 스킵 버튼을 찾아 헤맸다. 어떻게 하면 이 괴롭고 지루한 과정을 빨리 넘겨 버릴 수 있을까 궁리하며 말이다. 문제는 그랬더니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목표를 달성해도 허무하고 회의감이 들었다. ‘이게 다 뭘 위한 거지?’ 하고 말이다. 아무래도 대단한 일을 해내는 위인이 되긴 글렀다. 재밌게 살기 위해 일단 몸을 움직여야 겠다. 오늘은 요가원이 문을 닫았으니 나가서 산책이라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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