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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Feb 25. 2023

기대와 실망 사이에서

일상 속 보물찾기

초등학교 5학년 성탄절에 있었던 일이다. 다른 부서 친구들과 함께 성탄 축하 예배 때 무대에서 찬양을 했다. 무대가 끝나고 모르는 친구들과 뒤엉켜 교회 버스에 올라탔는데 내 옆에 앉은 여자 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 내 이름은 ooo이고 나는 11살인데, 혹시 몇 살이야?”

나는 깜짝 놀란 눈으로 “12살…”하고 대답했다.

“그럼 언니네! 언니, 우리 친구할래?”


당돌했던 그 아이와 친구가 돼 오고 가는 길에 마주칠 때면 종종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그 후로도 같은 부서가 된 적은 없어서 그 이상 친해지지는 못했다. 그 아이는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 덕분에 교회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금세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어느새 아침 예배 시간이면 본당 무대에 서서 율동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있었다.


반면에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항상 혼자였다. 다같이 새 학기가 시작되는 학교같은 곳에서는 새 친구 사귀기가 힘들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교회에서는 그게 힘들었다. 누군가는 언니나 오빠와 함께 와서 놀고, 누구는 가족들끼리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있었다. 이미 무리를 이뤄 친해진 친구들 틈에 어떻게 끼어 놀아야 할지를 몰랐다. 쭈뼛거리며 멀찍이 앉아 바라만 보다가 집에 돌아오곤 했다.


사실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교회에 가서도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집에 오고 싶은데.

나도 저렇게 무대에 서서 노래도 부르고 율동도 해보고 싶은데.


그런 마음과는 달리 사람들 앞에서 수줍어 말 한 마디 꺼내지 못하는 내가 밉고 싫었다. 활발하고 밝은 친구들이 부러워 닮고 싶어졌던 것은 그 무렵 부터였다.


이 친구는 이런 말투를 쓰는구나.

저런 상황에선 저런 표정을 짓는 구나.

이런 농담을 하면 재미가 있구나.


관찰하고 익혀보려 노력했지만 미리 생각해놨던 것을 써먹을 만한 상황은 잘 찾아오지 않았다.

나도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잘 해야하는데. 잘 어울려야 하는데. 이런 생각들이 커질수록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갔다.


나는 안되는구나. 나는 말주변이 없어서, 낯가람이 심해서, 성격이 이상해서 할 수 없나보다.




결혼을 하고 남편과 함께 가는 모임이 하나 둘 늘었다. 모임에 같이 다녀올 때마다 남편은 불편해 했다.

“오빠. 거기에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사람들이 모였으면 재깍째깍 수저 세팅도 하고 음식도 날라야지.”

“오빠만 이야기하려고 하지 말고 사람들 표정을 살펴야지. 이럼 안돼.”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나의 주문은 날로 늘어갔다.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지연아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남을 배려하고 생각해주는 것도 중요하지. 그런데 내 마음이나 생각은 항상 뒷전이고 남들부터 챙기려고 하는 것 같애. 남들한테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달까? 그냥 자연스럽게 말하고 행동하면서 어울리고 친해지는 거지. 그러다 어떤 때는 실수할 수도 있어. 그럼 이야기 해서 다음부터 그 부분은 서로 조심하면 되는거야. 인간관계에 잘 하고 못하고가 있을까? 난 그냥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거든.”


나는 인간관계마저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었다. 내가 생각했던 완벽한 인간관계는 무엇이었을까?


오랜 시간 변치 않는 마음으로 꾸준히 잘 지내는 관계? 다양한 사람들과 시시때때로 만나며 사는 것? 서로 상처 입히지 않고 항상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는 관계? 언제 연락해도 반갑게 통화할 수 있는 친구? 속에 있는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다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과 빨리 어울리고 친해지는 성향? 직장에서도, 일상에서도, 가정에서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


내가 원했던 완벽한 인간관계는 이 모든 것들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진득하게 한 친구와 오래 지내는 사람을 보면 부러웠고, 어디서든 친구를 잘 사귀어서 발이 넓은 사람을 봐도 부러웠다. 누굴 만나든 잘 해야한다는 생각이 앞서니 무리해서 배려하게 됐고 그만큼 돌아오지 않을 때면 혼자 속상해 하고 상처 받았다. 인간관계는 나 혼자 노력한다고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습관이 된 생각들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을 만날 때면 예의를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고 폐를 끼치면 안된다던가, 나 때문에 불편해하지 않아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앞선다. 그럴 때마다 이건 잘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면 너무 추상적이어서 나 혼자 정리한 다짐이 하나 있다. 오늘도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말겠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은 표현이 극단적이라며 웃었다. 좋게 말하면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람들을 실망시키겠다고, 나의 마음과 감정을 살펴 말하고 행동하겠다고 다짐하며 친구와 노는 방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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