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보물찾기
때는 옷이 조금씩 얇아지던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동생네 커플과 우리 부부가 서울에서 만나 놀기로 했다. 동생이 토요일 오후 4시에 유화 그리기 원데이 클래스를 잡아줬다. 신나는 마음으로 낮 12시, 서울을 향해 차로 열심히 달렸다. 대전에서 서울까지 3시간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는데 서울의 도로 사정을 우습게 봤다. 네비게이션에 찍힌 도착시간이 자꾸만 늘더니 결국 4시 반이 다 되어서야 공방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뿔싸!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옆 동네에 있는 다른 지점의 공방에 도착하고 말았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부터 예민해지고 있었던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저희 대전에서부터 4시간 걸려서 왔어요.”하고 사장님께 내 사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한 정거장 거리이니 일단 가보라고 하시면서 너무 늦어서 원칙적으로는 클래스를 수강할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그 말에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럼 가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이러나저러나 동생은 만나야 하니 씩씩거리며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공방에 도착하니 선생님께서 우리를 맞아주시며 사장님께 미리 연락받았다는 말을 하셨다. 그러면서 아쉬운 대로 짧은 시간 동안 완성할 수 있는 간단한 프로그램을 준비해주셨다.
앉아서 숨을 고르는데 순간 부끄러운 마음이 올라와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무리 멀리서 왔어도 늦은 건 늦은 건데 혹시 공방 사장님께 내 입장만 고집한 건 아니었을까? 사장님의 사정과 원칙도 있었을 텐데 내가 난처하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 그런데 정말 너무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순간에는 오히려 죄송하단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불편해진 마음을 꼬깃꼬깃 숨긴 채 그림을 그리고 나와 놀며 그 날의 부끄러움을 잊어보려 노력했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까맣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 무릎이 아파 검사를 받으러 정형외과에 들렀다. 접수를 하고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 “저기요.” 하고 불렀다. 뒤를 돌아보니 의료용 보행기에 힘겹게 몸을 기댄 채 서 계신 할머니 한 분께서 자리를 옆으로 옮겨줄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럼요.” 하며 황급히 가방을 챙겨 옆 자리로 옮겼다. 할머니는 간신히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나를 향해 말하셨다. “좋은 자리였는데 양보해 줘서 고마워요. 다리가 불편해서 통로 쪽에 앉아야 하거든요. 정말 고마워요.”
딱히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다. 누구라도 할머님의 모습을 봤다면 벌떡 일어나 자리를 비켜드렸을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아픈 사람이니까 당연히 받는 배려 말이다. 그 순간 당연하지 않은 것도 당당히 요구하던 나의 부끄러운 모습이 스쳤다. 그렇게 나의 부끄러움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꽁꽁 숨어 올라올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당연하지 않은 것도 당당하게 요구하는 사람과 당연한 것도 연신 고마워하며 받는 사람이 있다. 그런 할머니와 내 모습을 보며 어쩌면 세상엔 당연한 게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우리 집 거실 한 쪽 벽면에는 그 날 그려온 그림이 걸려있다. 그림을 볼 때마다 부끄러웠던 마음과 진심으로 고마워하던 할머님의 미소가 함께 떠오른다. 그런 배려와 따뜻한 마음들 덕분에 나는 조금씩 더 좋은 어른으로 자라고 있다. “공방 사장님, 그 날 참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닿지 못할 뒤늦은 인사를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