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시아버지의 생신을 맞아 온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집에 들어와 케이크에 촛불도 켜고 선물도 드리며 생신을 축하드렸다. 한참을 도란도란 대화하던 중 문득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 훅 들어와 마음이 상해버렸다. 전말은 이렇다.
올해 1월에 결혼한 도련님네 부부가 본식 사진 앨범을 가져다 드렸다. 사진을 둘러보다가 우리 부부의 사진도 다시 보고 싶다며 우리의 결혼식 앨범도 함께 펼쳤다. "이날 정말 예뻤다.", "어머님 정말 고우셨네요.", "가족 모두 잘 나온 거로 하나 인화해서 액자에 걸자."같은 말들이 오고 가던 중 어머님의 한마디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역시 대도시랑 지방은 다른가 봐.
천안에서 받았던 메이크업보다는 인천에서 받은 게 훨씬 예뻤어.
천안은 내가 결혼식을 올렸던 지역이고 인천은 도련님네가 결혼한 지역이다. 순간 너무 당황해서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셨냐고 물을 뻔했다. 동그래진 눈을 감추며 혼란스러운 마음을 애써 추스르고 있는데 분위기를 알아챈 도련님이 한마디 하셨다.
엄마 왜? 나는 천안에서 메이크업받은 게 훨씬 마음에 들었는데.
해주는 사람 따라 다른 거야. 어디가 더 잘하고 못하는 게 아니고.
나중에 남편에게 왜 한마디도 안 했냐고 물었는데, 자기가 반박하다 보면 동생네를 낮추는 말을 하게 될 것 같아서 말을 아꼈다고 한다. 동생이 수습하려고 말한 것도 느꼈다고. 어머님 말을 더 들어보니 인천에서는 이건 어떠냐, 저건 어떠냐 물어보면서 진행됐는데 천안은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고 하신다. 어머님의 말에 딱히 악의는 없었다는 게 느껴졌는데 그래도 섭섭한 마음에 그 후로 이어진 대화가 다 아니꼽게 들렸다.
우리 부부는 그 당시 메이크업 업체에 꽤나 신경을 썼었고 화장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내심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때를 떠올리면 메이크업 하나는 거기서 하길 정말 잘했다고 말하곤 했었는데 하필이면 그걸 부정당하니 둘 다 황당한 마음이었다.
남편과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섭섭했던 마음에 대해 대화하다가 내가 왜 이렇게 그러려니가 안되고 마음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시어머님께 우리 엄마를 투영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아들만 있는 집은 딸 같은 며느리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품는다는데 나는 반대로 엄마 같은 시어머니를 기대했던 거다. 우리 엄마였다면 저렇게 말하지 않았을 텐데 하고.
결혼하면서 나에게도 다시 엄마가 생겨 좋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실제로 어머님은 며느리들에게 부담을 주거나 뭘 강요하지도 않는 분이다. 아들을 통하지 않고는 연락도 안 하시고 항상 너희들 즐겁게 살면 그걸로 족하다고 말씀해 주신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남편보다 나를 더 걱정하시고 챙겨주셔서 정말 엄마인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결혼식 때 이제 너희들 세상이니 좋은데 여행도 많이 다니며 즐겁게 살라고 편지를 써주셔서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시어머니를 엄마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기대만큼 무언가가 돌아오지 않았을 때 크게 상처받게 됐다. 사실 아버님이 말실수할 때가 더 많은데(^^;;) 생각해 보면 난 아버님의 말이나 행동엔 별 신경이 안 쓰였다. 어머님은 우리 엄마라고 생각하니 엄마와 다른 점이 조금이라도 보일 때마다 혼자 실망하고 서운했던 것 같다. 둘은 처음부터 다른 사람이었는데. [시어머니=우리 엄마]라고 계속 생각한다면 앞으로는 더욱더 상처받을 일 투성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이 생각을 떼 내야 할 것 같다. 그게 쉽지는 않다. 잠시나마 엄마가 다시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랑 또 한 번 이별하는 기분이 든달까. 하지만 '딸 같은 며느리'라는 말에 거부감이 든다는 걸 나도 아니까 '엄마 같은 시어머니'라는 생각도 어머님은 부담스럽고 힘드실 거다. 그동안 내게 보여주신 미소, 포옹, 따뜻한 말들을 떠올리며 한동안 우리 엄마와 분리시키는 연습을 해야겠다. 친구 엄마라고 생각하면 그게 좀 쉬울까? 언젠가 시어머니를 시어머니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면 어머님이 보여주신 모든 선의가 덤처럼 느껴져 그저 감사해지겠지? 나도 참 복잡하고 피곤한 며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