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월요책방지기 일지 11일 차 (22.12.26)

by 사월

[스텔라 장 - 품]이라는 노래입니다. 이 글의 bgm으로 추천합니다.

https://youtu.be/xNzAu8IA790


요즘에는 초등학생 친구들이 책방을 자주 찾아온다. 3~4명이 무리 지어 올 때는 보드게임을 하기 위함이고, 1~2명이서 올 때는 책을 빌려 가거나 반납하기 위함이다. 이러나저러나 책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괜히 말 한마디 붙여보고 싶어 "핫초코 좋아해요? 따뜻한 핫초코 있는데 한 잔씩 마실래요?"하고 물어보면 "네 좋아요."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한 잔씩 음료를 만들어 대접하면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두 손 공손히 컵을 받아 들고는 금방 다시 하던 게임이나 책에 집중하는데, 그 모습이 매우 사랑스럽다.


아이들이 돌아간 자리를 정리하고 나도 오랜만에 핫초코를 타서 마시며 책을 읽었다. 요즘은 연말이라 그런지 따뜻한 소설책이 좋다. 오늘의 읽을거리는 <불편한 편의점>과 책방정류장 최애 도서 <옥탑빵>이다. <불편한 편의점>은 워낙 화제의 도서여서 계속 읽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연말 모임으로 지인의 집에 갔을 때 책을 읽지는 않으면서 사는 것만 취미이니 혹시 읽고 싶은 게 있으면 맘껏 빌려가라는 말에 신나서 집어 왔다.


<옥탑빵>은 웹툰으로 연재되던 만화를 4권으로 엮어 낸 책이다. 책방지기로 처음 왔던 날 대여 코너에 꽂혀 있던 1권을 읽고 2권은 누군가 빌려갔는지 없길래 돌아오면 이어서 봐야지 하고 남겨둔 책이었다. 2022년의 마지막 월요일까지도 2권이 돌아오지 않아서 결국 3, 4권을 먼저 읽게 됐다. 각 꼭지마다 새로운 에피소드가 펼쳐지니 꼭 이어서 읽지는 않아도 되지만 등장인물들의 소소한 서사들이 모두 궁금했기에 내심 섭섭했다.


그러던 중 한 손님께서 책방에 조용히 들어오셨다. 몇 권의 책을 읽어 보시다가 책 한 권을 빌리시겠다고 대여 목록을 작성하셨다. 손님께서 책방에 머문 시간은 30~40분 남짓. 그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는데, 책방에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편안하고, 안심이 되고, 이 공간이 절로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전에는 내가 말주변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이런 상황이 되면 어떻게 말을 붙여야 할지 몰라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에 안절부절못했었다. 그러나 지난 1년의 시간 동안 스스로에게 많이 다정해지고, 나와의 관계가 편안해졌는지 더 이상 그런 불안감을 느끼지 않게 됐다는 것을 그 짧은 30여 분 동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 손님과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배웅을 해드렸다. 좋아하는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마음깊이 감사한 요즘이다. 내가 이곳에서 지난 11주 동안 느꼈던 것처럼 책방정류장이 앞으로도 많은 이웃들에게 쉼과 위로, 그리고 행복을 내어주는 공간으로 오래오래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연말이고 하니 오랜만에 자문자답 다이어리를 펼쳐 끌리는 질문 하나를 골랐다.


진짜 오롯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어떤 삶인가요?


연말연시에 걸맞은 질문이었다. 나의 대답이 정말 내 삶을 그렇게 이끌기라도 할 것처럼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무언가에 쫓기듯,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닌, '내'가 기준이 되고 중심을 잘 잡아 스스로 나아가는 삶.


2023년 한 해는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는 나무처럼 원하는 곳을 향해 뿌리를 뻗고, 나만의 유일하고 고유한 잎사귀와 열매를 맺는 한 해로 살고 싶다. 1년 후 연말에는 내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상상할 수 없는 변화와 예측할 수 없는 흔들림들이 있겠지만 그야말로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한 해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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