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책방지기 10일 차 (22.12.19)
겨우 두 번째일 뿐이지만 독서모임을 준비하는 나름의 루틴이 생겼다. 일단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는다.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문구에 밑줄을 치고,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좋았던 문장들을 모두 타이핑해서 나열한다. 선정된 문장들을 살펴보며 책의 내용을 상기해 본 후 떠오르는 질문들을 하나씩 적는다. 그중에서 모임원들과 나눌만한 주제들을 8~9개 정도 추려 대화하기 편한 순서대로 정리한다. 나라면 어떤 대답을 하고 싶을지도 간단히 생각해 본다.
독서모임은 꼭 여러 명이서 한 문장씩 이어가며 쓰는 소설 같다. 첫 문장은 모임의 장이 제시하지만 그 끝은 어디로 향할지 아무도 모른다. 모임을 마치고 나면 처음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이 잔뜩 펼쳐져 있다. 모두가 질문들 마다 한 번씩 주인공이 되었다가 듣는 이가 되고, 서로의 이야기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파생된다. 11월 첫 번째 독서모임을 준비할 때만 해도 대화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었다면, 이번 달에는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게 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책방지기 일지를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께서 “마치 휴남동 서점 같아요.”라는 말을 자주 남겨주셨다. 휴남동 서점은 어떤 곳일까 궁금해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게 됐고, 이렇게 아름다운 시선으로 봐주셨다니 하고 감동도 했다. 책 내용 중에서 독서모임을 시작할 때 ‘아무 말 토크’로 물꼬를 튼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아무 말 토크’는 말 그대로 하고 싶은 말이라면 무엇이든 아무 말이나 하면 되는 거다. 근황도 좋고, 요즘 하는 생각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도 된다.
‘황보름 작가님(휴남동 서점 소설의 지은이)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을까?’ 감탄하며 이번 모임을 시작하는데 차용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달에 이어 이번달에 또 참여해 주신 한 참가자 분께서는 11월에 고민하며 함께 나누었던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셨다. 이 모임은 언제나 나의 기대를 뛰어넘는다. 모두 함께 설레는 마음을 공유하며 본격적인 책 이야기에 돌입했다.
12월의 독서모임 선정도서는 개브리얼 제빈의 장편 소설 <섬에 있는 서점>이었다. 이 책을 읽고 뽑아 본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책 #인생 #가족 #관계 #사랑
인간은 섬이 아니다.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세상이다.
섬에 있는 작은 서점의 주인 피크리는 얼마 전 아내를 잃고 혼자 산다. 성격도 까칠한 데다 책 취향까지 까탈스러워 서점 운영은 어렵기만 하다. 포기를 꿈꾸던 어느 날 놀라운 꾸러미 하나가 서점에 도착하면서 그의 삶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섬에 있는 서점>은 책과 사랑을 그린 가슴 뭉클한 소설이다. 정말 우리 곁에 있을 것 같은 생생한 이웃들, 절로 웃음이 나는 해프닝들, 피크리의 논평을 통해 맛보는 수많은 문학작품, 스릴러급 반전과 비밀을 만나는 동안 작은 서점 하나가 세상의 보물이 될 수도 있음을 느끼게 된다.
아무래도 서점과 관련된 소설이다 보니 서로 소개해 주고 싶은 인생 책을 한 권씩 들고 와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참석한 네 명의 관심사와 취향에 따라 모두 다른 책 4권을 추천받을 수 있었던 것은 색다른 매력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훌쩍 흘러 모임의 막바지에 달했고, 나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었다. ‘마야의 창의적 글쓰기 수업 숙제는, 자신이 좀 더 잘 알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섬에 있는 서점> 중에서) 만약 우리도 이런 글쓰기 수업 숙제를 해야 한다면 누구에 대해 써보면 좋을지 말해 보기로 했다. 네 명 모두 잠시 생각에 깊이 잠겼고, 누군가는 할머니에 대해서, 또 다른 누군가는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에 대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움과 이해, 눈물이 오가는 현장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수집하고, 습득하고, 읽은 것들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여기 있는 한, 그저 사랑이야.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그런 것들이 진정 계속 살아남는 거라고 생각해. (<섬에 있는 서점> 중에서)
끝으로 우리는 각자 사랑하는 것들을 적어보며 이 시간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내가 무엇으로 이루어진 존재인지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느 날 문득 오늘 적은 작은 메모지를 발견했을 때 따뜻했던 이 시간을 떠올리며 잠시라도 위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가을, 풍경, 북희, 사월이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 책방정류장의 밤이 아름답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