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씨만의 매력

월요책방지기 9일 차 (22.12.12)

by 사월

책방에 출근하면 책방 오픈 공지에 사용할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매번 무엇을 찍을지 고민이 된다. 초반에는 구석구석을 담는 재미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한 풍경이 되어서 오늘은 어떤 장면을 찍어 올려야 하나 생각이 많아진다. 그동안 내가 올렸던 사진들이나 다른 책방지기님들께서 올리신 것들과 약간은 달랐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더해져 더 복잡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은 평소에 자주 찍어 올렸던 책이나 소품들 대신 책방 곳곳을 채우고 있는 손글씨들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책방에는 책방지기들과 손님들이 남겨놓은 책과 관련한 메모들이 많다. 책을 읽다가 좋았던 구절이 나타나면 기록해 붙여둔 것들이다. 꾹꾹 눌러쓴 손글씨에서 진심을 느끼고, 적어주신 문장들을 통해 작성자의 고민과 심정을 엿보기도 한다.


요즘은 컴퓨터에도 손으로 직접 쓴 것 같은 글씨체가 다양하다. 기계가 쓴 것이 아닌 양 일부러 더 삐뚤빼뚤하게 타이핑된다. 배달음식을 시켜도 마치 직접 쓴 것 같은 감사의 말이 담긴 포스트잇이 인쇄되어 올 때가 있다. 얼핏 보면 헷갈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쇄물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그러다 우연히 사람이 직접 작성한 메모를 발견하면 뜻밖의 행운이라도 만난 것처럼 행복해진다. 새로 산 책에 저자의 사인이 돼 있었는데, 종이 뒷면에 올록볼록한 자국을 보고 ‘인쇄된 게 아니고 작가님께서 직접 해주신 거구나!’ 하고 감동을 받은 적도 있다. 펜촉을 넘어 굴러온 사람의 온기가 느껴졌기 때문일까?


이런 현상은 비단 남이 써준 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노트북도 있고, 아이패드와 스마트폰도 있지만 여전히 일정과 일기는 아날로그 다이어리에 작성한다. 한 때 일정은 캘린더 어플에, 일기는 블로그에 비밀글로 남겨두려고 시도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편리를 위해 발명된 도구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다시 아날로그 수첩과 달력으로 돌아왔다. 당시에는 낯설고 불편해서 회귀한 것인 줄로만 알았지만, 문득 손글씨에 대해 사유하다 보니 그 이유가 단순히 생소함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펜을 잡고 글씨를 오래 쓰다 보면 손이 아프다. 때론 다한증도 아닌데 손에서 땀이 난다. 컴퓨터에 치면 썼다 지웠다 하는 것도 간단한데, 종이에 쓸 때면 틀리진 않을까 조그만 긴장감이 감돈다. 그러다 실제로 글씨를 틀렸을 때 수정테이프가 없으면 얼마나 난감한지 다들 알 것이다. 그럴 줄 알고 연필로 썼다가 지우개로 지우더라도 글씨 자국이 남거나 지운 부분만 종이색이 바래면 자못 속상하다.


손글씨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은 쓰는 이의 노고와 마음을 다들 알기 때문이 아닐까. 불편을 감수하고, 긴 시간을 들여 적었을 정성을 사람들은 서툰 글씨체 안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양한 글씨체들 안에는 글 쓴 사람의 성향과 마음이 담긴다. 그래서 그 메모는 단순한 글씨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펜으로 눌러쓴 일기장 속 글씨에서는 그날의 감정과 기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필기하면서 생각한 바들이 좀 더 뚜렷하게 각인되기도 한다.


끝끝내 손으로 쓰는 맛을 버리지 못하고 세련된 기계들을 메신저와 유튜브 보는 도구로만 사용한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났다. 누군가에게는 다이어리 때문에 무거워지는 가방과 일정을 확인하려 핸드폰 대신 수첩을 꺼내는 모습이 불편하게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마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나는 계속해서 다이어리와 달력에 펜으로 글씨를 쓰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그 모습을 보고 예전 세대여서 그게 편한 거라고 이야기한다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손글씨만의 매력을 설파하고 있진 않을까 어처구니없는 상상도 했다.


그렇게 오늘도 글씨를 쓰고, 남이 쓴 것들을 보며 삐뚤빼뚤한 것들의 매력을 한껏 느꼈다. 이제 책방으로 출근할 수 있는 월요일이 며칠이나 남았나 세어보며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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