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과 비밀

월요책방지기 8일 차 (221205)

by 사월

책방에서 100m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다. 그래서 책방에 앉아 있으면 재잘거리며 오고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책방정류장은 기본적으로 도서를 판매하는 곳이지만 대여할 수 있는 책들도 일부 구비되어 있다. 책방에 들리는 초등학생 친구들은 대부분 책을 빌려 보기 위해 온다. 대여 시스템은 간단하다. 읽고 싶은 책을 고른 뒤, 이름과 휴대폰 번호, 빌려갈 책의 제목을 적고 대여해 가는 날짜를 적는 것으로 끝이다. 반납 날짜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양심에 맡긴다.


대여 도서들과 책 대여 대장


요즘은 저녁 6시만 되어도 밖이 어둑해진다. 역시나 춥고 캄캄했던 저녁,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 두 명이 책방에 들어왔다.


"오늘 몇 시까지 문 열어요?" 한 꼬마 숙녀가 야무진 목소리로 물었다. 8시까지 열려 있다고 하니 잠시만 앉아있다가 가도 되는지 물었다.


"그럼요. 추운데 들어와서 앉아 있어요."


당연히 책 빌려 가는 친구들이겠거니 하고 반갑게 맞았다. 두 소녀는 잠시 재잘거리더니 야무진 목소리의 친구는 금방 집에 돌아갔다. 조용한 친구 한 명이 직접 만든 것 같은 화분을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책방에는 전에도 와본 적 있어요?" 소녀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네."하고 대답했다. 혹시 보고 싶은 책 있으면 읽고 있어도 되고,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라고 말하고 돌아서려는 찰나였다.


"혹시 이 화분 책방에서 키워주실 수 있나요?"


딱 봐도 오늘 만들기 시간에 만든 것 같은 화분이라 직접 만든 것 아니냐고 물었다. 역시 맞았다. 열심히 만들었을 텐데 왜 두고 가려냐고 물었지만 대답이 시원찮다. 무언갈 망설이는 듯했지만 감이 오지 않아서 의아할 뿐이었다. 거절하기도 애매하여 책방에 둘 수는 있지만 친구가 종종 와서 잘 크고 있는지 봐줘야 한다고 단서를 붙였다. 그럴 수 있다고 하기에 식물에 붙여주고 싶은 이름이 있는지 물었다.


"새싹이요."


나는 큰 견출지와 유성매직을 들고 나왔다.


"그럼 '새싹이'라고 써서 화분에 붙여 놓을게요. 괜찮아요?"


그러자 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사실은 저희 엄마가 요 앞에 마트로 데리러 나오시거든요."


"아~ 그래요?"라고 답은 했지만 무슨 의도로 한 말인지 눈치채지 못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아이를 쳐다보니 수줍게 말을 이어갔다.


"마트까지 들고 가려면 손이 너무 시려서요."


아, 화분을 집에 가져가고는 싶은데, 손이 시려서 함께 들고 가줄 수 있는지 부탁하는 거였구나! 하마터면 눈치 없는 책방지기가 한 소녀의 화분을 강탈할 뻔했다. 그럼 마트까지 함께 들고 가주겠다고 하니 여전히 망설이는 눈치다. 아마 자기 손이 시리면 상대방 손도 시릴 텐데 하고 걱정하는 것 같았다. 마침 집에서 장갑을 챙겨 나왔기에 꼬마 친구에게 "저는 장갑이 있으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했다. 그제야 초조해하던 표정이 부드럽게 누그러졌다.


엄마가 기다리고 계신 마트까지는 200여 미터, 2~3분의 짧은 거리였다. 그 길을 가며 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꼬마 친구는 비밀을 털어놓았다. 교우 관계의 어려움에 관한 이야기였다. 꽤나 무거운 주제였는데, 아이의 입에서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나와 내 앞에 툭 떨어졌다. 나는 그 말들을 무겁게 주워 담았고, 놀란 나머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애써 정신을 차려 위로의 말을 해주었는데, 더 좋은 말을 찾기엔 역부족인 거리였다. 어머님이 계신 차에 금세 도착했고 화분을 건네주며 다음에 또 놀러 와서 이야기 나누자는 인사를 끝으로 헤어졌다.




학창 시절의 '친구'라는 존재는 성인이 된 후와는 무게나 의미가 다르다. 그래서 선뜻 '친구'가 무어라 논하기 조심스러웠다. 그 꼬마 친구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꼭 다시 놀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여덟 번째 책방지기의 밤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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