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클했던 첫 번째 독서모임

월요책방지기 일지 7일 차 (221128)

by 사월

책방으로의 출근길에 소나기가 쏟아졌다. 제법 차가워진 공기를 느끼며 이제 가을을 느끼러 책방에 오라는 공지는 올리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직접 주최하는 첫 번째 독서모임이 있는 날이다. 월요일 저녁, 퇴근 후 간단히 요기만 하고 책방으로 향할 발걸음들이 떠올랐다. 집을 나서기 전 다급히 냉장고 문을 열었다. 주황빛 귤들과 풍성한 포도 한 송이가 눈에 띄었다. 귤과 포도를 챙겨 들고 든든한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독서 모임 때는 읽은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대화하는 것도 좋지만, 꼭 책을 다 읽지 못하셨더라도 이야기에 즐겁게 참여하실 수 있기를 바랐다. 심지어 선정된 책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말이다. 나름대로 뽑아본 대화의 주제들을 다시 살펴봤다.


#노동 #비건 #독서 #아름다움


다양한 이야깃거리 중에서도 재미있을 것 같은 질문을 8~9개 정도 추렸고, 질문들의 테마를 구분해 보니 이렇게 네 가지로 압축이 됐다. 나라면 이 질문들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지도 간단히 정리해 봤다. 이런저런 생각을 열심히 해서 그런지 오늘따라 시간은 더욱 쏜살같이 흘렀다. 책방 주인장님이 저녁 드시라며 빵과 김밥을 사서 들러 주셨다. 저녁을 먹고 간식과 음료들을 상 위에 준비하자, 오늘의 독서모임을 위해 추운 저녁을 뚫고 달려와 주신 분들이 모두 도착했다. 사월과 민지님, 기쁨님, 그리고 풍경님까지 그렇게 네 명은 오순도순 네모난 책상의 한 면씩을 차지해 둘러앉았다.



"제가 독서모임을 처음 진행해 보는 거라 조금 서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참여하신 분들이 '어떤 식으로든 특별한 경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준비해 보았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하고 반가워요."

(*: <가녀장의 시대> 56쪽, 강연을 준비하는 슬아의 마음가짐에서 인용함.)


나의 인사를 시작으로 각자 이 시간에 불리고 싶은 이름을 정하고, 모임에 오게 된 이유를 이야기하며 물꼬를 텄다. 난생처음 본 넷이었지만 같은 공간에 모여 각자의 기대를 나눈 것만으로도 책방의 공기는 한층 더 따뜻하고 부드러워졌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나만 재미있어 보이는 주제이면 어쩌지? 다른 분들에게는 흥미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어.' 하고 생각했던 걱정들은 기우에 불과했다. 반짝이는 눈으로 발문을 열심히 들으시더니,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대화는 쭉쭉 뻗어 나갔다. 신기하게도 미리 준비해둔 다른 질문들과 연관되는 이야기들이 하나씩 나와 자연스럽게 다음 주제로 연결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비건 지향적임'에 대한 화제에서 나왔다. 책 <가녀장의 시대>에서 주인공 슬아와 슬아의 엄마 복희 씨는 비건이다. 하지만 아빠 웅이 씨는 고기를 먹는다. 그런 웅이에게 슬아는 "아빠도 조금은 비건"이라고 말한다. 비건인 엄마와 딸에게 협조적이기 때문에 '비건 지향적'이라는 말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요조 작가의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이라는 책을 떠올렸다. 그 책에는 '저는 채식주의자이고 고기를 좋아합니다'라는 꼭지가 있다. 채식 생활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커스터마이징 한 것에 대한 이야기인데, 예를 들면 매일을 비건으로 살다가도 작가님의 채식 생활을 못 미더워하시는 어머니께서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를 넣어주셨을 때 등 '의도치 않게' 고기를 먹게 되는 순간들을 실패로 여기지 않고 즐기는 것이다. 심지어 생일 하루는 치팅 데이로 정해 작정하고 고기를 드시기도 한다. 오히려 요조 작가님은 '고기를 안 먹으며 잘 살아보기 위해 고기를 가끔 맛있게 먹으며 산다.'라고 표현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채식의 진입장벽을 낮춰 시도해 볼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는다.


두 가지 이야기를 떠올리며, 'oo지향적'이라는 태도가 비단 비건에서 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다른 분들은 무엇을 지향하며 살고 계신지 궁금했다. 풍경님은 이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 주셨다.


"저희 딸은 엄마인 저를 보니 결혼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해요. 나는 엄마처럼 가족들 밥 차리고, 일도 하고, 살림까지 잘 해낼 자신이 없다고요. 저도 요즘 시대에 결혼은 선택 사항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저는 이미 결혼을 했으니 비혼 주의자는 아니라고 할 수 있죠.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딸의 생각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지지하고, 그런 삶의 태도를 응원하는 것뿐이에요. 그런데 oo지향적임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것만으로도 비혼을 지향하는 것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특별히 무언가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더라도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고 지지하며 응원해 줄 수 있는 것 말이에요."


보물 같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오는 것이라는 정현종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그날 책방에는 사월과 기쁨과 민지와 풍경의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이며, 책 한 권에서 인생 전체로 확장되는 아름다움이 펼쳐졌다.



같은 책을 읽고도 각자만의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구석구석을 함께 읽고 나누는 분들이 랜턴을 들고 환하게 비춰 주신다. 그렇게 나의 세상은 한 뼘 더 넓어졌다. 이게 독서모임의 짜릿함이 아닐까? 어쩐담. 12월의 독서모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그렇게 책방지기로서의 일곱 번째 하루는 오래도록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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