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라고 했다. 분명 살아, 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는 꽤나 단호한 어조로 분명 그렇게 들었다고 말했다. 걸어가고 있는 자신의 등을 향해 누군가가 살아, 라는 말을 분명했다고. 처음부터 그의 말을 믿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말을 믿기 어려웠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 뒤에 덧붙인 말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일을 하는 중이었고, 이제 막 할 일을 끝내 놓고 자리를 이동하던 차에 누군가가 그의 등을 향해 살아, 라고 말했다. 그도 처음엔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봤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그곳에는 그 밖에 없었다. 정말 나한테 한 건가 싶은 마음이 들자 그는 몸을 돌려 뒤를 확인했고 이 곳엔 역시나 그 혼자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종합해보면 분명 그 말을 들은 건 맞는데 그 말을 한 사람은 없다는 거지. 그에게 재차 묻자 그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금 나를 시험해보려는 건가 잠시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 치고는 정말 그 말을 들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눈치였다. 이렇게까지 굳게 믿는 경우는 드문 편이었으나 사실 그는 자주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과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혼동하곤 했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밥을 배불리 먹고 카페에서 나른한 기분을 한껏 누리고 있을 때였다. 그는 보통 대화를 나눌 때 눈 맞춤으로 잘 듣고 있다는 걸 표현하는 편이었는데 그 날따라 시선이 자주 딴 곳을 향해 있었다. 굳이 이유를 묻지 않고 있었는데 그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에 대해 말해주었다. 저기 구석에 앉아 있는 사람 만난 적 있어. 처음 보는 사람 같아 보였지만 그와 모든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어디에서 만났는지 물었다. 그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고 이름 역시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런 경우도 있지. 자주 깜박깜박하게 되니까.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다 마감해야 한다는 점원의 말을 듣고 카페를 나오게 되었을 때 그가 말했다. 아까 그 사람 만난 적 없는 것 같기도 해. 아직까지 그 생각을 했어. 근데 진짜 만난 적 있는 것 같이 익숙했어. 그리고 얼마 뒤 그에게 빌린 책 속에서 카페에서 본 사람의 인상착의와 비슷한 인물을 만나게 되는 식이었다. 어떤 날에는 국자로 찌개를 덜어내고 있을 때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했고, 어떤 날에는 이 다음에 네가 어떤 말을 하게 될지 맞춰보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기도 했다. 자잘하게는 지금 입고 있는 옷을 본 적 있다고 했고, 말한 적도 없는 이야기를 분명 말한 적 있다고 우기기도 했다. 이번에도 그의 전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분명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말이거나 어디서 인상 깊게 본 것을 여전히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어젯밤에 꾼 꿈이거나.
그가 대뜸 물었다. 대뜸 물어보기에 쉬운 주제는 아니었으나 그는 어떤 주제든 곧잘 터무니없이 묻곤 했다. 너는 너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 갑자기 물어온 질문에 한참 할 말을 고르고 있는데 그가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가 말을 하기 시작하자 사실 그 질문은 그 자신에게 하는 질문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마치 아주 오랫동안 그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노력한 사람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밥을 먹을 때 있잖아. 응. 밥을 먹을 때. 밥을 먹고 있을 때 초라하다고 느껴. 밥을 먹을 때마다. 먹을 때마다는 아닌데 꽤 자주 초라하다고 느껴. 왜지. 별 것도 아닌 일에 열심히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밥 하나에도 비장함이 가득 묻어있는 것 같아서 초라하게 느껴져. 그렇다고 다른 걸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닌데. 혼자 밥을 먹을 때면 가끔씩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는 그 기분을 초라함이라고 명명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와 같이 먹으면 괜찮아지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그는 누군가와 같이 먹어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되려 같이 있으면 더 초라해지는 기분이 날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그렇다고 밥을 안 먹고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초라함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초라하면 초라한 데로 사는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굳이 그에게 이 말을 꺼내놓진 않았다.
근데 있잖아. 신기한 게 뭔 줄 알아. 뭐.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있잖아. 무슨 말. 살아라는 말을 듣고 나서. 아 그 살아. 응. 그 살아. 그래.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초라하다는 생각이 아니라 살아라는 말이 먼저 떠올라.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러니까 먹으면 살고 싶어 진다는 거지. 먹으면 먹을수록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른다는 거야. 좋은 거네. 좋은 거지. 그럼 아까도. 응 아까도. 어제도. 어제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많이 먹는 것보다는 자주 먹는 편이 훨씬 좋다고 그는 말했다. 그럼 자주 살아야겠구나 생각하게 된다고. 그래서 그는 살아야겠다는 믿음이 필요할 때마다 밥을 먹고 간식을 챙긴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그의 가방이 눈에 띄게 볼록해졌다고 느꼈었는데 그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구나 짐작했다. 그와 헤어져 혼자 남게 되었을 때 그가 무언가를 무심히 먹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음식을 입에 넣고 씹기 전, 그 아주 찰나의 순간에 호흡을 가다듬는 그의 모습을. 그는 그 아주 찰나의 순간에 초라함과 싸우고 살아야겠다는 믿음을 얻고 있었다니. 전혀 초라하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야겠다는 믿음을 꼭꼭 씹어 먹는 그의 모습을 아주 오랫동안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