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한 마음

by 사월


행복에 대해 자꾸 묻게 되는 일은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는 멈출 수가 없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털어내려 할수록 그것은 더욱 집요하게 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정한 주기 없이 찾아오는 이 물음은 언제나 그를 난처하게 만들곤 했다. 언제쯤 찾아가겠다는 예고도 없이 무턱대고 들이닥치거나 소리 소문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뻔뻔함에 웬만한 일은 웃어넘기는 그도 영 탐탁지 않아했다. 그는 언제나 관계에 있어서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었기에 제아무리 감정이라 할지라도 예의를 갖추지 않고 찾아오는 그 무례한 방식이 영 정이 가지 않았다. 정이 가지 않는다고 해서 행복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는 매번 낯선 마음으로 그것을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항상 지금 행복한가라는 물음을 당했다고 표현했는데 언제 한 번은 왜 '당했다'는 표현을 쓰느냐고 물었더니 언제나 린치를 당하는 것 같은 충격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외관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내부는 끔찍할 정도로 처참한 상태를 만들어 놓기 때문에 언제나 행복을 경계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차라리 다친 게 눈에 보이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걱정이라도 해주는데 이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라서 꾀병 부리지 말라는 핀잔을 듣거나 너보다 내가 더 힘들다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도 있다며 고개를 내젓기도 했다.


그는 행복에 대해 이런 생각까지 했었다며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가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어느 날의 이야기였다. 지금보다 묘하게 앳된 얼굴을 하고 있는 그는 신호등 앞에 서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그는 앞으로 가고 있는 건지 뒤로 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구름의 움직임을 관찰하거나 속도를 내며 지나가는 차들이 혹여 어제 내린 빗물로 만들어진 물웅덩이를 밟고 물을 튀길까 봐 물웅덩이와의 거리를 눈대중으로 재고 있었다. 조금 더 뒤에서 기다려야 할까 고민을 하고 있는 그의 옆으로 케이크 상자를 든 사람이 다가와 섰다. 누군가의 생일인 걸까 생각하며 케이크 상자 안에 들어있을 케이크를 상상했다. 생크림 케이크일까, 진한 맛의 초콜릿 케이크일까, 단 걸 좋아하지 않는다면 고구마 케이크일 수도 있겠다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신호가 바뀌었고 케이크 상자를 들고 있던 사람은 빠르게 그를 앞질러 걸어가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지는 케이크 상자를 바라보며 그는 자신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매년 자신의 생일을 손꼽아 기다려왔던 그였지만 이번 해만큼은 그리 반가워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왠지 그동안의 생일과는 조금 다른 생일을 맞이할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그 예감은 그리 좋은 느낌의 예감이 아니었으므로 그는 자신의 예감이 틀리길 간절히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현실로 마주하고 말았다.


그때였다고 했다. 자신의 예감이 조금 서러울 정도로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걸 실시간으로 체험하고 있을 때 그는 생각했다고 했다. 꼭 행복해야 하는 날이 그냥 평범한 하루처럼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왜 그런 날이 있지 않나. 무언가를 기념해야 하는 날. 꼭 행복해야만 하는 날. 생일이나 사귄 지 몇 주년, 크리스마스 같은 날들. 그런 날은 꼭 하루 종일 행복해야 한다는 부채감에 시달려야 했다. 행복하면 그나마 평타를 치는 기분. 만약 그렇지 않다면 갑자기 엄청난 불행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것 같은 그 느낌. 그는 살면서 간간이 그러한 기운을 느낀 적은 있었으나 그 날만큼 날 것의 기운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 기운은 또다시 마주하고 싶은 기운이 아니어서 그는 그 해 크리스마스이브를 하루 앞두고 어떻게 하면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을까 고심했다. 그는 시간을 빨리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 생각해놓았는데 그중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은 고작 잠 하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정말 잠 하나만큼은 남들보다 잘 잘 자신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하루에 아홉 시간 정도는 자줘야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람이었고 그렇게 자고도 자투리 시간을 간식 챙겨 먹듯 잠으로 채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가능하면 한 이박 삼일 정도 잠에 녹아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미 크리스마스는 다 지나가 있을 거고 생각보다 잠을 너무 많이 자버렸군, 이라는 짧은 문장으로 고단한 마음과 멀어질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래서 그 작전은 성공했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의 잠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박 삼일까지는 힘들어도 마음만 먹으면 일박 이일 정도는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 해가 뜰 때쯤을 기준으로 일박 이일을 잔다 치면 그리 나쁘지 않게 시간을 채우게 된 거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는 뭐든 마음먹으면 잘 되지 않잖아, 라는 말로 그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해의 크리스마스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어, 라는 말을 곧바로 덧붙였다. 나쁘지 않았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를 한참이나 더듬었다. 나쁘지 않았다는 말은 행복하다는 말과 이어질 수 있을까. 그는 확신에 찬 듯 단단한 말투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대화를 할 때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옳다고 하여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화를 하는 편이었는데 이번만큼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정답이라는 듯 눈빛마저 명료했다. 어디에서 오는 확고함일까 싶은 마음에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그에게 물었더니 행복하지 않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기 때문, 이라고 짧게 답했다. 그는 자신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쁘지 않은, 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그 존재를 알고나서부터 불행과 조금 더 거리감이 생긴 것 같아 이 역시도 나쁘지 않은 일 같았다고 말을 이어 붙였다.


그는 대화를 이어나가는 중간중간에 지금, 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는데 그가 지금, 이라고 내뱉을 때마다 정말 지금, 이 가장 중요한 순간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우연히 그와 처음 대화를 나누었을 때 그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아도 그의 화법만큼은 또렷이 기억할 수 있었는데 지금 그가 말하는 지금, 이라는 말도 다른 누군가가 지금, 이라는 말을 쓸 때마다 자연히 그를 떠올리게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가 지금을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라고 믿는다, 는 확신 돋친 말을 믿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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