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조. 찬

by 사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의 생활리듬을 아주 규칙적이고 정확하게 관리한다. 매일 아침 여덟 시에 일어나 날마다 먹은 음식의 칼로리를 체크하고 자기 계발에 매진하며 틈틈이 만보 걷기로 체력을 쌓는다. 모든 일과가 끝난 후에는 어김없이 그의 유일한 취미 생활인 사진 찍기 시간이 찾아온다. 그는 경건한 마음으로 내내 빛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젖히고 캄캄한 밤하늘 위에 둥그렇게 뜬 달을 보며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찰칵. 그가 달을 찍는 이유는 단순하다. 달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으면 외롭지 않으니까.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개척하고 싶어 한다. 작가라는 꿈을 통해서. 그는 여자도 감정만이 아니라 생각과 영혼이 있다고 말한다. 외모만이 아니라 재능과 야망이 있다고. 여자에게 사랑만이 전부라는 말은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소리친다. 그리고 덧붙인다. 하지만 너무 외롭다고. 한 사람이 있다. 평생을 일만 하며 살아온 그는 갑자기 자신의 삶에서 일이 없어지자 어떤 것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고 있는지 갑자기 불어닥친 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하면 채울 수 있는지 무엇하나 시원하게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는 헛헛한 마음의 골을 사람으로 채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연애를 하면 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빨리 떨쳐낼 수 있을 거라고. 그게 지금 내가 원하는 일일 거라고. 하지만 이윽고 그것이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된 그는 어두운 산속에서 달을 올려다보며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기도를 한다.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오늘따라 잠에서 깨어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매번 단잠에 푹 절여져 아침마다 눈을 뜨기가 고역이긴 했지만 오늘같이 곤란한 경우는 드물었다. 그는 침대에서 뒤척이며 몸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으나 그의 엄마가 손맛으로 접어놓은 김으로 싼 밥을 연신 주워 먹으며 나른한 기운을 떨쳐내려 애썼다. 여전히 잠에 푹 절여진 몸을 애써 꼿꼿이 세우며 수업을 듣던 그는 쇄골 근처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미세한 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름이었으므로 누군가의 등에 가려져 에어컨 바람이 채 오지 못하는 건가 생각하던 그는 목 근처에 어설프게 부채질을 해본다. 미세하게 올라오던 열감은 어느새 입술 근처를 지나 눈썹 언저리까지 올라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열감이 온몸을 장악했고 부재칠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느낀 그는 손을 들고 양호실로 향했다. 열을 재고 약을 받아먹은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다리를 위아래로 흔들며 조금 꾀를 부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윽고 그 꾀를 실행에 옮겼다. 친구의 부러운 눈초리를 받으며 교실에서 나온 그는 손에 들린 배낭을 양 어깨에 메고 쉬는 시간의 소란스러움을 가로질러 계단으로 향했다. 쉬는 시간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소란스러웠던 공기에는 텅텅 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가는 그의 발소리만이 남았다. 운동장 한 켠에 울창하게 솟아오른 나무 사이를 걷던 그는 나뭇잎이 만들어 내는 그늘 사이사이의 빛을 맞으며 어제의 오늘과 다르다는 설렘과 함께 등 언저리에서 피어오르는 낯선 감정을 마주하게 되었다. 등을 벽에 맞대지 못한 채 공포영화를 보게 되었을 때 느꼈던, 길거리에서 와앙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 느꼈던 서늘한 공포감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갑자기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기분. 열여섯 살의 그는 갑자기 찾아온 이 외로움을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고민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걸 배우게 되었는데 그가 스무 살을 몇 달 앞둔 어느 날이었다. 열 군데가 넘는 학교를 돌아다니며 입시를 치렀던 그는 집중력을 요할 때마다 알고 싶지 않은 그의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휴대폰 전원을 꺼놓는 방식으로 애써 그에 대한 소식을 외면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곤 했다. 절대 알고 싶지 않다 생각했던 절대적인 반감은 입시가 끝나고 시간이 너무 많아져버린 탓에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변하였고 애석하게도 자꾸 그의 소식을 알려주던 K에게 연락을 해 약속을 잡게 만들었다. K와의 대화는 소리보다 침묵의 공기가 더 많이 떠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그 대화는 조금 특이한 대화였다고 그는 자주 생각하곤 했는데 그 이유는 비가 막 내리려고 할 때의 공기의 느낌 혹은 비가 막 그친 뒤 축축하고 질퍽하게 내려앉은 공기의 느낌이 그 대화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는 비가 오거나 떠날 때 그 날 그 대화를 자주 떠올리곤 했다. 빙빙 돌려 묻기에는 이미 마음의 체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였고 무엇보다 K와 길게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던 그는 예의상 K의 근황을 몇 마디 묻고는 바로 오늘 만남의 이유에 대해 물었다. K는 그의 소식을 전하는 내내 조심스러웠지만 마음속 저편에는 그의 반응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눈치였다. 그래서인지 '외로워서 만났대'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하곤 했다. 그 때문인지 '외로웠대'라는 말을 내뱉는 K의 입모양을 그는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두툼하고 붉은기가 돌던 입술을.


그 날 이후 그의 삶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듯 보였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일단 그는 수치심이라는 낯선 감정을 전보다 자주 마주하게 되었는데 어딘가에 혼자 남겨질 때마다 그 두툼하고 붉은기가 돌던 입술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그가 '외로웠기 때문에' 선택했던 행동과 같은 것일까 봐 그는 그 감정과 마음을 과하게 경계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그때 뒤늦은 사춘기가 찾아오는 바람에 그는 길을 잃은 일이 잦았는데 길을 잃었다는 낭패감보다 그를 힘들게 만들었던 건 그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의심하게 만드는 순간과 그 순간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이었다. 그 수치심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그를 괴롭히곤 했는데 어린 그는 그것을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무엇으로 규정함으로써 받아들이고 이해하기보다는 도망치고 밀어내는 방향을 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망치기 위해 찾았던 곳은 먼 훗날 그의 꿈이 되었는데 그는 지금도 모두 우연일 뿐 그 덕분에 얻게 된 것은 절대 아니라고 단언하곤 한다. 그 때문에 얻게 된 건 자신의 몸을 오랫동안 혐오스럽게 바라보며 수치스러워했다는 부정적인 마음뿐이라고. 우연히 학원에서 K를 만났고 우연히 마음이 맞았고 아마도 평생 인연을 이어질거라 믿었지만 이제는 어떻게 사는지 조차 모르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처럼 그것 역시 그저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우연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이다.


서른이 된 그는 외로움이라는 건 밥먹듯이 찾아올 수 있는 일임을 조금 의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니, 사실은 그렇게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그는 여전히 그의 '외로워서 그랬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은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예상한 딱 그만큼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 화장실을 간 친구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구워지고 있는 고기를 앞에 두고 부어라 마셔라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 곁에서도, 먹고 싶었던 음식을 꼭꼭 씹어 먹는 그 순간에도,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그 찰나에도,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그 짧디 짧은 무료한 시간에도 문득 외로워질 수 있다는 걸 그가 어렴푸게나마 깨닫게 되어서 일지도 모른다.




사월 인스타그램



이전 07화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