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by 사월


왜 울 때면 괴상한 목소리로 말을 하게 되는 걸까. 비록 내가 지금 울고 있긴 하지만 평소와 다르지 않게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피력하고 싶어 질수록 목소리는 더욱 제멋대로 높아지고 낮아진다. 심호흡을 수없이 해보고 괜히 헛기침을 내보내 봐도 목울대에 눌린 마음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자기주장을 내세우기 바쁘다. 분명 구차한 목소리로 구차한 마음을 쏟아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매번 구차함이라도 내뱉기에 여념이 없다. 구차함 뒤에 솔직함을 조금 묻혀냈다는 어설픈 변명이 아슬하게 우세했기 때문이다. 내 진심은 구차함이 있어야 간신히 용기를 낼 수 있다. 가만 보면 나는 울 때 소리를 잘 내지 않는다. 높아지고 낮아지는 목소리를 일부러 내려고 힘을 주지 않는 이상 매번 조용히 운다. 그래서인지 나는 울고 있다는 걸 잘 들키지 않는 편인데 만약 들키게 된다면 눈보다는 코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 코는 마음보다 진실된 면이 있다. 요령껏 숨기지 못하고 언제나 진심을 다해 흐르기 때문이다. 변화하고 있는 계절을 그 무엇보다 빠르게 맞이하고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그 무엇보다 솔직하게 흥분하고 애써 감추고 있는 눈물 앞에서는 매번 진심을 다해 울었다. 내 몸 중 단 한 곳이라도 진실될 수 있어 다행이라고 가끔 생각한다.


한 번은 소리 내어 우는 연습을 해본 적이 있다. 매일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날이기도 했다. 준비되지 못한 이별은 슬픔보다 당혹스러움이 크다는 걸 배운 날이기도 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평소와 조금 달랐던 점이 있었다면 그날따라 그들만의 놀이를 더욱 격정적으로 즐기며 자고 있는 나를 자주 밟았다는 것 정도였다. 단지와 감자 사이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싸우더라도 절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놀이는 언제나 놀이로 끝내야 한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다. 소란스럽게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던 소리가 잦아졌다는 걸 잠결에도 눈치챌 수 있었다. 사납게 울려 퍼지던 소리가 사라졌으니 더욱 깊은 잠에 빠져볼 참이었다. 그런데 왜인지 잦아진 소리 위에 불편한 기운이 퍼지고 서늘한 느낌마저 감돌았다. 조용하면 사고를 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늦잠을 포기하고 그들의 행방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사실 이 이후의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장면들이 정말 내가 겪은 일인지 내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장면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당시 놀란 마음이 기억을 모조리 먹어버렸다.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그저 검사 결과 간수치가 평균에 비해 3배 정도가 높았으니 아마도 그 점이 원인이 되었을 거라고만 했다. 더 자세한 원인을 알고 싶다면 부검을 해봐야 한다고 했지만 이미 떠난 아이에게 고통을 더해 주고 싶지 않았다. 사실 나는 방심하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단지의 의식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런 인사도 없이 떠날 리 만무하다고 믿었다. 스물두 살의 나는 모든 것이 미숙했지만 특히나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에 더욱 미숙했다. 이박 삼일로 떠나는 수련회를 앞두고 엄마와의 이별이 걱정되어 눈물을 훔치던 열다섯 살에서 대책 없이 나이만 먹어버린 탓이었다. 단 삼일 간의 이별도 견뎌내지 못하는 내가 평생의 이별을 견뎌낼 재간은 없었다.


몇 번의 이별을 경험한 엄마는 차가운 도자기 안에 담겨있는 단지를 끌어안으며 비명을 지르듯 울었다. 놀라서 내지르는 소리 같기도 하고 억울함에 울분을 쏟아내는 것 같기도 하고 몹시 화가 나서 지르는 것 같기도 한 울음이었다. 이제 막 어둠이 빛을 덮어가고 있을 무렵 시간이 멈춘 듯한 집 안에선 오직 엄마의 절규에 가까운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그 옆에서 나는 눈물보다 콧물을 더 많이 흘리며 울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알고 있는 눈물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눈물이기도 했다. 도자기를 끌어안은 채 소리 내어 울고 있는 엄마를 보며 나도 소리 내어 울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단지를 사랑하고 있는 만큼 애도의 마음 담아 소리 내어 울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혹여나 무지개다리를 걷고 있는 단지가 조용히 울고 있는 내 울음소리를 듣고 자칫 내 진심을 오해할까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목에 힘을 주어 울기 시작했다. 어설프게나마 소리가 조금 새어 나왔다. 조금씩 새어 나오는 울음에 적응이 되자 조금 더 힘을 주어 울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목과 배에 힘을 주어 소리를 내뱉었다. 엄마의 자궁에서 막 빠져나와 온 얼굴을 찌푸리며 울었던 그때의 울음과 닮은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 내어 우는 것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엇하나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리를 내어 울면 슬픔에 집중할 수 없었고 슬픔에 집중을 하면 소리 내어 울 수 없었다. 슬픔이 앞서야 하는지 애도가 앞서야 하는지 잘 몰랐다는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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