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다. 평소에도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편이긴 하지만 코로나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활동반경이 더욱 좁아졌다. 좁아진 활동반경만큼이나 마음 역시 쉽게 쪼그라들고 자주 무력해져 갔다. 밖을 맘대로 돌아다니지 못한다는 갑갑함보다 나를 쪼그라들고 무력하게 만드는 건 근 한 달 간의 미래도 쉬이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장 내일도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 하지만 최소한의 계획도 마무리 짓지 못하는 상황에 하루가 다르게 납작해져가고 있다. 3월부터 경제활동이 중단되면서 모아둔 돈으로 근근이 생활하는 삶이 지속되고 있다.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 최소한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런 삶을 3개월가량 지속하다 보니 가슴에 돌덩어리를 하나 얹고 있는 것 같은 체기가 자주 따라다닌다. 최소한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돈이 나가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그만큼 무언가를 시도함에 있어서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심문하듯 따져 물어야 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돈 앞에 나날이 납작해져가고 있지만 마음만은 가난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답을 알 수 없는 문제를 풀어야 할 때는 걷기만 한 게 없다. 걷기를 한다는 것은 평소에 숨 쉬듯이 걸어 다니는 행위와 조금 다른 느낌이 있다. 어딘가를 가기 위해 걷는 행위가 아닌 오로지 걷기를 위해 걷는 행위는 목적성보다 지속성이 더 우선시 된다. 꼭 몇 시에 어디까지 가야 한다는 도착의 목적보다 중간에 경로를 바꾸게 되더라도 걷기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가에 더 주안점을 두기 때문이다. 자칫 모호하고 나태한 일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 유연하고 명확해질 수 있는 일이 또 없다. 그래서 삶이 흐릿해지고 갈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 때면 운동화의 끈을 단단히 묶고 집을 나선다.
한동네에서 30년을 살아왔다. 태어나고 걷고 뛰고 놀고 싸우고 화해하며 살아온 과거의 기억이 집을 나서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집에서 십 분 정도 걸으면 아직도 가끔씩 꿈에 나오는 갈색 벽돌로 둘러싸인 유치원이 보이고 그곳에서 오분 정도를 걸으면 신발주머니를 달랑 흔들며 친구들과 피카츄 돈가스를 야무지게 나눠먹던 골목길이 보인다.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아이와 비밀 이야기를 나누던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벤치도 그대로 남아있다. 교복 치마 안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자전거로 오르내리던 언덕길엔 새로운 주택이 두 채나 생겼다. 그곳에 원래 어떤 건물이 있었는지 과거의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봐도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내내 친구와 함께 다녔던 원장 선생님 이름 그대로가 간판이었던 영어학원은 간판 이름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영어학원을 운영 중인 듯하다.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은 바뀌었지만 건물 안에 풍기는 특유의 알싸한 소독약 냄새만큼은 변치 않았다.
어딘가 목적지를 두고 걸은 것은 아니었지만 걷다 보니 한 아파트 단지에 도착해 있었다. 엄마와 아빠의 신혼집이자 오빠와 내가 태어나 처음 살았던 곳이다. 아파트 단지 안에는 놀이터가 하나 있는데 오빠는 그곳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자는 시간 외에는 항상 놀이터에 있을 정도로. 어느 날은 엄마가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잠에서 깨보니 오빠가 집에 없었다. 놀란 엄마가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오빠를 찾아다녔는데 알고 보니 엄마의 속도 모르고 놀이터에서 혼자 신나게 흙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말도 없이 툭하면 사라지는 바람에 엄마는 오빠가 사라지면 놀이터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놀이터에서 한바탕 놀고 온 날이면 오빠는 항상 동네 형 혹은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린 나이에 친화력이 얼마나 좋았는지 엄마는 매번 처음 보는 동네 어린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어야 했다. 흙을 잔뜩 묻힌 채 집을 찾아온 아이들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오빠가 동네 친구를 만드는 것이 내심 기특했던 엄마는 그런 오빠를 그냥 두었다. 아파트 복도에서 내려다보면 놀이터가 바로 보여 엄마는 저녁 먹을 시간이 되면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오빠를 부른다. 오빠는 목청 높여 대답은 하지만 여전히 미련이 잔뜩 묻은 얼굴을 하고 있다. 괜히 시간이라도 더 벌어볼 요량으로 느릿하게 손에 묻는 흙을 턴다. 또 한 번 엄마의 부름이 이어지자 오빠는 남아있던 미련을 모두 털어내고 걸음을 옮긴다. 엄마에게 오빠의 놀이터 홀릭 시절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그때 어떤 계절이었을까 상상하곤 했다. 대부분 매미소리가 잔뜩 울려 퍼지고 노랗던 빛이 빨갛고 보랗게 물들어가는 한 여름의 빛을 떠올렸다.
오빠가 그렇게 사랑해마지 않던 놀이터에 도착해보니 어린아이와 엄마가 마스크를 쓴 채 흙장난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오랫동안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큰 맘먹고 집 앞 놀이터로 나와 그동안 놀지 못했던 아쉬움을 흙장난으로 달래는 눈치였다. 두 사람은 쭈그려 앉아 흙으로 무언가 형태를 만들었다 무너뜨리는 놀이를 했다. 무엇을 만드는 걸까 멀리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다 놀이터 구석에 있는 그네에 시선이 머물렀다. 무언가를 자꾸 쌓았다 무너뜨리는 두 사람을 지나 그네 앞으로 다가갔다. 그네 발판에는 '일인용'이라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일인용이라는 글자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그네는 앞뒤로 움직이며 머리카락 사이에 잔잔한 바람을 만들어냈다. 양발을 더 힘차게 동동 구르자 이번에는 온몸을 휘감는 바람이 옷깃을 스쳐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땅과 너무 멀어진 느낌이 들어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일 인분의 몫을 해내느라 어지럼증이 밀려온 탓이었다. 동동 구르던 발에 힘을 풀고 제자리를 찾으려 삐걱거리는 그네의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잦아지자 어지럼증 역시 서서히 가라앉았다. 어렸을 때는 쉽게 잘만 타던 그네도 어른이 되니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무엇이든 덜컥 겁부터 먹게 되는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발을 동동 구를 때 운동화에 묻은 흙을 손으로 탁탁 털어낸다. 언제 풀렸는지 모를 오른쪽 운동화의 끈도 리본 모양으로 단단히 동여맨다. 노랗던 하늘빛이 어느새 빨갛고 보랗게 물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