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 같은 애는 두 명이라도 더 키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밥을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눕히면 잠투정 한번 하지 않고 쿨쿨 잘도 잤다고 했다. 오빠가 엄마의 젖이란 젖은 다 빼먹었는지 젖 한번 제대로 물려보지 못하고 분유를 먹였는데 분유도 잘 받아먹더니 백일도 채 되지 않아 밥을 술술 넘겼다고 했다. 오빠는 먹는 거에 영 관심이 없어서 밥시간 때가 매번 전쟁 같았다고 했다. 밥을 먹이면 항상 씹지 않고 입 안에서 밥알을 삭히는 경우가 다반사라 매일 오빠 옆을 졸졸 쫓아다니며 잘 먹고 있는지 확인하기 바빴다고. 반면 나는 솜뭉치 같은 손으로 숟가락을 꽉 움켜쥐고 이마에 땀이 송골 맺힌지도 모른 채 밥알을 열심히도 씹어먹었다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관심을 갖은 건 분명 먹는 거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맛을 다 맛보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오빠와 나의 음식 성향은 정 반대였다. 오빠는 배가 부르면 바로 숟가락을 놓는 반면에 나는 음식이 다 사라질 때까지 절대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 이미 배의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어도 그릇에 음식이 남는 꼴을 못 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까지 음식을 갈구했는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그저 말 그대로 배 터지게 음식을 먹은 후 통통해진 배를 탁탁 두드리는 맛에 중독되었던 것 같다. 아- 오늘 하루도 만족스럽게 살았구나를 넘칠 것 같은 포만감으로 대신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된장찌개를 어떻게 끓이는 지조차 몰랐던 엄마는 매일같이 아빠의 밥을 짓고 오빠와 나를 키우면서 된장찌개 정도는 눈감고도 끓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린 마음에 엄마를 닮고 싶었는지 혹은 힘들어 보이는 엄마를 도와주고 싶었는지 나는 곧잘 부엌에서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구경하곤 했다. 둥그랗고 노란 감자가 어떻게 감자볶음이 되는지 통조림에 담겨있는 참치가 어떻게 참치찌개가 되는지를 지켜보았다. 어느 날은 엄마가 만들어 놓은 밀가루 반죽이 어떻게 수제비가 되고 있는지를 구경하고 있었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팔팔 끓고 있는 냄비 속을 보기엔 아직 키가 작았던 나는 냄비 안으로 홀연히 사라지는 밀가루 반죽의 행방을 몹시도 궁금해했다. 냄비 주변을 알짱거리며 궁금해하는 내 표정을 엄마가 읽었는지 높이가 낮은 의자를 가지고 와 나를 올려주며 "다예두 해볼래?" 물었다. 발효가 되어 쫀쫀해진 반죽을 잘 떼어내기 위해선 손에 물을 묻혀야 한다는 걸 처음 배운 날이었다.
내 손으로도 음식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날 나는 다양한 맛을 맛보고 싶다는 목표에서 내 입맛에 꼭 맞는 나만의 맛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로 진화하게 되었다. 애니메이션 채널보다 요리 채널을 더 눈여겨보며 지금까지 먹어온 음식의 재료와 조리법의 과정을 차근히 익혀가기 시작했다. 집에서 흔히 먹는 김치볶음밥부터 어설프게나마 맛을 내는 파스타, 조금 더 기술과 시간이 필요한 베이킹까지 보편적이지만 개인적인 맛의 취향을 담아낼 수 있는 나만의 레시피를 구현하기 위해 나름 얼마간의 실험과 연구의 단계를 거치기도 했다. 덕분에 쉬이 실패하지 않는 나만의 레시피를 몇 가지 갖게 되었다.
음식을 만들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음식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어떤 음식을 만들지 구상하는 것부터 필요한 재료를 고르고 사고 다듬는 것, 보다 더 좋은 맛을 만들어내기 위해 시간을 충분히 쓰는 것까지 음식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수고로움이 동반된다. 그럼에도 내가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 손으로 무언가가 완성되고 있다는 걸 직접 확인할 수 있어서다. 비록 실망스러운 맛과 마주해야 할 때도 있지만 말끔히 먹어치우는 것으로 고민을 쉽게 해결할 수 있으니 부담이 덜하다. 무엇보다 만드는 과정이 명확해서 좋다. 소금을 넣으면 짜고 설탕을 넣으면 달아진다는 단순한 진리를 손끝으로 느낄 수 있어 순간 모든 것이 구체적이고 명확하고 완결형이 되는 기분이 든다. 음식을 만들 때면 처음 엄마와 수제비를 뜯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말랑하지만 제법 찰기가 도는 반죽은 오물오물 만지던 촉감도 새삼 느껴진다. 어쩌면 엄마는 어린 나에게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마감시간이 다가왔을 때 마트에 가면 할인된 상품을 살 수 있어서 좋다. 운이 좋으면 평소에 살까 말까 고민하던 식재료를 반값에 득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 할인된 가격표를 보고 넙죽 새우 팩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새우로 무엇을 해 먹을 수 있을까. 새우 팩을 담은 장바구니를 달랑 흔들며 마트를 구경한다. 다시 내가 각별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