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다 보니 에스엔에스 계정이 세 개나 생겼다. 물론 자의로 만든 계정이긴 하지만 세 개의 계정을 볼 때마다 괜히 마음이 심란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계정을 없앨까 아니면 올린 사진이라도 지워버릴까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에스엔에스를 절대 하지 않으려 했다. 에스엔에스를 시작했을 때 얻게 되는 새로운 정보보다 괜히 시작했다가 느끼지 않아도 될 공허함을 느끼게 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혹은 지금의 나와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삶을 곧잘 비교하는 편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꼭 해야 할 이유가 생기지 않는다면 절대 시작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나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에스엔에스에 조금씩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글을 홍보할 목적으로 하나 정도는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 몇 달간을 고민하다 글 쓰는 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다고 글 쓰는 계정을 하나 만들고 나니 개인적인 일상을 저장할 수 있는 계정을 하나 만들고 싶어 졌다. 술을 마시다 충동적으로 친한 친구와 함께 사적인 이야기를 올릴 수 있는 비공개 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 구 년째 함께 살고 있는 강아지의 이름으로 계정을 하나 더 만들어 총 세 개가 되어버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세 개의 계정을 오가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올렸다. 한동안은 그 일에 흥미를 느끼기도 했다. 강아지와 함께 했던 지난 추억을 회상하며 괜히 감상에 젖기도 하고 나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글을 보며 혼자 뿌듯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또다시 이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싶다는 욕구가 차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내가 만들어놓은 흔적에 부정적인 생각을 덧씌우는 일을 하곤 한다. 분명 그 당시에는 만족스러움을 느끼며 올린 사진이었는데 불과 일주일 만에 왜 이렇게 바보처럼 웃고 있지라는 생각과 마주해야 했다. 한 번에 여러 사진을 올린 경우면 꼭 올린 사진들 중 하나를 빼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계정 세 개를 운영하기에는 내가 너무 게으르니까 하나만 남겨두고 다 없애버릴까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 감정은 비단 에스엔에스에서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었다. 장문의 글을 쓴 경우에는 나의 이러한 태도가 더욱 심해졌다. 내 글은 쓸데없이 비장한 구석이 있어 자주 유치하게 느껴졌다. 내가 쓴 글을 제외한 모든 글은 모두 탁월한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도 지배적이었다. 가능하다면 출간된 책을 모두 회수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지 않았다는 것에 처음으로 안도한 순간이었다.
한 번은 메가박스에서 진행하는 시네마 리플레이라는 기획전에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일 년 동안 상영한 영화들 중 열 편을 뽑아 재상영을 하고 더불어 이동진 평론가가 지브이까지 진행하는 행사였다. 평소에 이동진 평론가의 블로그를 이웃해놓았던 터라 그의 블로그를 통해 마침 좋아하는 영화가 재상영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영화가 재상영한다는 소식도 기뻤지만 그보다 이목을 끌었던 건 영화가 끝난 후 진행되는 퀴즈에 대한 내용이었다. 기획전을 할 때마다 퀴즈가 진행되었던 모양인데 퀴즈를 맞추면 영화관에서 준비한 영화관람권과 함께 그의 어머니가 직접 뜬 수제 수세미를 상품으로 준다는 내용이었다. 나의 흥미를 끈 건 영화관람권보다 수제 수세미 쪽이었다. 이미 어떤 문제인지도 모르는 퀴즈를 맞추고 까끌거리는 수제 수세미를 만지작거리는 상상을 했다. 원래는 좋아하는 영화 한 편만 예매할 생각이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화관에서 볼 기회를 놓쳤던 영화 한 편을 추가로 예매했다.
하필이면 영화를 보러 가는 당일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직 잠이 잔뜩 묻어있는 채로 버스를 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일찍 영화관에 도착해 미리 커피를 사고 여유 있게 광고를 보며 영화를 기다리는 것이었는데 알람을 끄고 조금 더 누워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잠을 떨쳐내려면 커피를 마셔야 할 거 같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후다닥 근처 카페로 달려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커피 사기를 포기하고 근처 편의점에서 아이스티를 사서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상영관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됐다.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까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던 터라 한동안은 긴장감을 떨쳐내느라 영화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영화는 좋았다. 버스 운전사인 주인공이 매일의 일상을 시로 짓는 내용의 영화였는데 주인공의 모습이 내 모습 같아 영화를 보며 많은 위안을 얻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예술을 품으며 살아가고 있을 거란 생각에 감격스러웠다. 상영관에 불이 켜지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잊고 있던 긴장감이 다시금 솟아올랐다.
지브이가 끝나고 퀴즈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퀴즈의 룰은 간단했다. 그가 준비해온 영화 스틸컷을 보고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맞추는 게임이었다. 맞추기 힘들 법한 장면을 시작으로 단계별로 유추하기 쉬운 장면으로 넘어갔다. 스크린 위로 문제가 뜨자 사람들은 빠르게 손을 올리고 정답을 외쳤다. 익숙한 영화 제목부터 처음 듣는 영화 제목까지 다양한 오답들이 나왔다. 나 역시 그들처럼 스크린을 뚫어져라 보며 여러 영화를 떠올려보았지만 도통 어떤 영화일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몇 번의 기회가 지나가고 마지막 문제가 스크린 위로 펼쳐졌다. 문제를 보자마자 혹시..? 하는 마음과 함께 영화 한 편을 떠올렸다. 역시나 이번에도 사람들은 거침없이 손을 올리고 정답을 외쳤다. 다양한 오답들이 오가는 사이 나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정말로 내가 떠올리고 있는 이 영화가 정답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손을 올리고 정답을 외치는 사람을 보며 나도 저들처럼 일단 손을 들고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손을 들어, 어서. 막 손을 올리려던 찰나 누군가가 내가 생각하고 있던 영화의 제목을 외쳤다. 혹시나 했던 그 영화는 정말로 정답이었다. 정답을 맞히신 분들은 앞으로 나와달라는 안내멘트와 함께 모든 것이 끝이 났다. 괜히 온갖 허탈함과 억울함이 밀려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한 것 없이 분함이 차올랐다. 사실 이 상황은 굉장히 익숙한 장면이었다. 나의 대부분의 삶은 맞을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에 대한 확신보다 틀리면 창피해질 거라는 변명이 언제나 앞섰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깨닫는 건 언제나 한없이 늦은 일이었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러 가는 날이었다. 전과는 다르게 여유 있게 준비를 하고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머릿속에는 영화에 대한 생각보다 퀴즈에 대한 생각이 한 열 배쯤 더 많았다. 어떻게 하면 퀴즈를 맞출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보다 어떻게 하면 창피함을 무릅쓰고 손을 들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스물여덟 살이 되어도 정답을 외치기 위해 손을 드는 일은 여전히 어려웠다. 아니,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다행으로 이번 퀴즈에서는 손을 들었다. 비록 외친 정답은 틀렸지만. 하지만 굳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비록 정답은 틀렸지만 창피함을 무릅쓰고 손을 들었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싶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틀렸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모든 것들은 내 예상과 다르게 모두 다 맞는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