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방청소를 하기로 했다. 청소를 하겠다는 마음을 자주 먹는 편이 아니어서 결심이 선 김에 재빨리 고양이 세수를 하고 청소를 시작했다. 언제 사놨는지 모르겠는 에너지 바와 초콜릿, 이천십구 년 날짜가 찍힌 영수증이 서랍 안에서 꾸준히 나왔다. 버릴 것이 별로 없을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어느새 쓰레기봉투의 절반이 채워져 있었다. 간신히 서랍에 숨통이 트이자 밑바닥에 깔려있던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다. 외할머니댁에 갔을 때 챙겨 왔던 사진들이었다. 할머니께서 누가 보겠냐며 쓰레기봉투에 버리셨던 사진을 휴대폰 플래시를 비춰가며 미련하게 주워왔었다. 엄마는 더럽다며 그냥 버리라고 했지만 함부로 사진 버리는 거 싫다며 내가 다 가질 거라고 나중에 보여달라고 하지 말라며 일회용 비닐봉지에 담아왔던 그 사진들. 어디다 뒀는지 까먹고 있었는데 습관처럼 또 서랍에 넣어두었던 모양이었다. 청소를 하다 말고 의자에 앉아 제법 묵직한 사진들을 하나 둘 구경하기 시작했다. 대체적으로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이 많았는데 다섯 장에 하나 꼴로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있는 사진도 있었다. 환하게 웃음 짓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내 일기장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그녀는 외삼촌이 하는 작은 서점에서 그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외삼촌의 서점에서 일을 도와줬는데 서점에 자주 오는 거래처 사장님께서 그녀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괜찮은 사람이 있다며 그를 소개해줬다고 했다. 그녀는 그를 처음 봤을 때 이 사람과 결혼하면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었냐고 그녀에게 물었더니 사람이 까무잡잡해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다부져 보였다고 했다. 다부져 보였다는 인상 하나만으로도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조금 신기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만난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결혼을 했고 결혼 한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오빠를 낳고 삼 년 뒤에 나를 낳았다. 내가 어떻게 세상에 태어났고 왜 이 두 사람이 내 부모인지조차 알지 못했던 어린 나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하는 행동을 자주 이해하지 못했다. 결혼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왜 굳이 결혼을 하려 하는 가에 대한 의구심만 커질 뿐이었다. 어린 내가 기억하기론 그녀는 자주 길 잃은 표정을 지었다.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지 어디쯤 왔는지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녀가 길 잃은 표정을 지을 때면 어린 나 역시도 그녀와 함께 자주 길을 잃었다. 나라도 그녀의 길을 찾아주고 싶었지만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기껏 해봐야 남자애와 손 한번 잡아본 것이 다였던 어린 나는 이제 막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보다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희뿌연 사랑에 더 끌렸다. 서로의 존재를 알고 관심을 갖게 되면서 시작되는 소위 좋아 죽겠는 사랑보다 이미 모든 걸 다 알게 되어버린 사랑, 좋아하는 마음 뒤에 따라오는 또 다른 모양의 사랑에 더 정이 갔다. 무슨 일이 있었더라도 어찌 되었건 이루어지는 해피엔딩보다 무슨 짓을 다 해도 끄끝내 엇갈리게 되는 새드엔딩을 더 좋아했다. 이혼하고 난 뒤에 서로에 대한 애틋함을 깨닫게 되는 드라마나 꿈을 이루면 사랑을 잃게 되는 영화를 보며 자주 눈물을 훔쳤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루어지지 못하는 엇갈린 마음이 더 현실적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어린 나는 나의 이런 취향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왜 사랑하고 난 뒤에 남겨지는 잔상에 더 끌리는 걸까. 좋아하는 감정이 사그라진 재 같은 잔열을 좋아하는 걸까. 어쩌면 그들에게 배운 사랑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좋아하진 않지만 사랑하고 있는,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모양 말이다.
그냥 날 좋아해 줄 순 없냐는 질문에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좋아는 하는 거냐고 다시 묻는다. 영화 레이디 버드에 나오는 한 장면의 대사이다. 영화를 보다 이 장면이 나오면 몇 번이고 돌려보며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언제나 좋아하는 것 뒤에 사랑이 뒤따라온다고 생각했다. 좋아해야만 사랑이라는 깊은 감정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선 좋아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먼저 일 수도 있다는 걸 배웠다. 그들에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어린 내가 보기엔 그들은 서로를 좋아하지 않아 보였다. 분명 좋아했을 테지만 좋아하는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사소한 이유로 자주 다퉜고 언성을 높였다. 왁자지껄하게 다툰 뒤에 그들의 화해는 언제나 은은했다. 아침에 일어나 쌀을 씻어 새로 밥을 짓는 정도의 은은함. 이것도 언제나 그녀의 사랑으로 시작되었지만. 좋아하진 않지만 사랑하고 있다는 건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 장을 볼 때 그가 좋아하는 반찬의 재료를 빼놓지 않고 사는 것. 미리 해놓은 음식을 매 끼니때마다 접시에 옮겨 담는 것. 바뀌는 계절에 따라 옷을 바꿔두는 것. 새벽녘의 온도를 미리 확인해 보일러를 켜 두는 것. 지난날의 흔적을 깨끗하게 쓸고 닦는 것. 무엇보다 그에 대한 모든 마음과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어쩌면 사랑은 그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을 수도 있겠다. 사랑에는 많고 다양한 이름들이 존재한다는 걸 그녀에게 배웠다. 그녀에게 배운 사랑 때문인지 나는 언제나 사랑이 몹시도 두렵다. 그녀에게 배운 사랑의 깊이는 도저히 내가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알아버린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