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꿈

by 사월


어두운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꿈을 자주 꿨다. 빙글빙글 올라가는 계단 사이로 떨어지는 꿈같은 것도. 꿈결에도 떨어지는 느낌이 아득해서 자주 잠에서 깼다. 떨어지고 깨어나고 빨려 들어가기를 반복하며 또래 아이들보다 긴 팔과 다리를 갖게 되었다. 그 때문인지 단체 사진을 찍을 때면 항상 친구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었다. 이름은 권 씨라 출석 번호순으로 하면 항상 앞자리인데 키 순서대로 하면 항상 뒷자리라서 내 자리가 어디인지 자주 혼란스러워했다. 반 인원이 홀수이면 맨 뒤에서 짝 없이 혼자 서 있는 경우가 생겨서 출석번호대로 줄 서는 것을 더 좋아했다. 간혹 착한 친구들을 만나면 짝 없이 서 있는 나를 가운데에 껴주기도 했지만 그것도 선생님 나름이라 대부분 혼자 멀뚱이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혼자 서 있으면 항상 시간이 배가 되는 기분이 들었다. 배가 되는 시간을 혼자 보내야 할 때면 자주 막막해했다. 그나마도 시간을 빨리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앞에 서 있는 다른 반 아이들을 구경하는 일이었다. 신발로 흙먼지를 만들어내는 애, 서서 졸고 있는 애, 몰래 초콜릿을 까먹은 애를 구경하고 있으면 그나마도 제 시간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마저도 투닥거리며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하면 금세 외로워져서 빨리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키가 커서였는지 성숙해 보이는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였는지 초등학교 사 학년 입학식 날엔 나보다 키가 훨씬 작았지만 육 학년 몇 반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언니가 다가와 책가방 지퍼를 닫아준 적도 있었다. "언니, 가방이 열려있어요. 제가 닫아드릴게요" 하면서. 책가방 지퍼가 열렸는지조차 몰랐던 나는 갑자기 나타나 책가방 지퍼를 닫아주는 사람의 호의에 당황스러워했다가 육 학년 몇 반이라는 이름표를 보고 더 당황스러워했다. 내가 동생이라는 걸 말해줘야 할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 그 언니는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어물쩡거리다 떠나는 언니의 뒷모습에다 대고 "고마워"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혹시나 학교에서 마주치면 어떡하지 내가 동생인 걸 알고 왜 반말했냐고 물어보면 어떡하지 걱정했다. 혹시 만나게 되면 언니인 줄 몰랐다고 말해야지 다짐하기도 했다. 그래도 고마워라고 하지 말고 고맙습니다 내지는 고마워요라고 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날 언니라고 생각했을까.


집에 도착해 육 학년 몇 반인 그 언니에 대해 엄마에게 말했는데 엄마는 그런 일이 있었냐고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왜 나를 언니라고 생각했을까 엄마에게 물으니 자기보다 키가 크니까 당연히 언니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러면 같이 하교하던 그 많은 아이들은 내가 당연히 육 학년이라고 생각했을까. 언니처럼 보인다는 말에 대해 잠시 생각하다가 그 언니랑 마주치면 어떻게 도망가야 할까에 대해 더 깊게 생각했다. 이후에도 수많은 물음과 마주해야 했다. 초등학생 때는 중학생이냐는 말을 들었고, 중학생 때는 고등학생이냐는 말을, 고등학생 때는 어느 대학교에 다니냐는 말을 들었다. 가족들과 영화를 보러 가면 오빠보다는 나에게 학생증을 보여달라고 했고 버스를 탈 때면 정말 학생이 맞냐고 미심쩍어하는 기사분도 계셨다. 엄마는 동안이라는 소리를 꽤나 듣던 사람이라 같이 다니면 항상 "이모랑 같이 왔니?"라는 말도 들었다. 처음에는 무덤덤하게 아니라고 대답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아예 대답을 안 하거나 질문한 사람을 흘긋 쳐다보곤 했다. 마음과 다르게 계속해서 커지는 몸이 당황스러웠다. 안에는 아직 채워진 게 없는데 자꾸 몸이 커지니까 인간 공갈빵이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인간 공갈빵은 도대체 얼마나 커지려고 하는 걸까 자주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키가 커지는 건 나쁘지 않은데 너무 빨리 커지는 것이 항상 부담이 됐다. 조금만 천천히 크면 좋으련만 성장과 나란히 걸어가기란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


오랜만에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꿈을 꿨다. 어딘가를 바쁘게 올라가고 있었는데 순간 발을 헛디디면서 끝이 안 보이는 어둠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놀이기구를 타면 느낄 수 있는 아찔함 같은 것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내가 방금 무슨 꿈을 꾼 거지 한참 꿈에 대해 더듬거렸다. 혹시 또 키가 크려는 건 아니겠지 멍하니 천장을 보며 괜히 새끼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이왕이면 키보다는 다른 것들이 조금 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통장의 숫자들이라던지 우리 집 강아지의 수명이라던지 그런 것들이. 아니면 보다 더 건설적으로 이제는 속이 채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른 살의 인간 공갈빵은 얼마나 채워졌을까. 진짜 공갈빵처럼 여전히 텅 비어있는 채로 있는 거면 어쩌지. 그때보다 나이가 들었으니 조금 쭈글 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괜히 심술로 빵빵해진 것보다는 조금 쭈글 해진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텅 비어있더라도 이왕이면 조금 달달한 속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이제 다시 잠들어야 한다. 지금 잠들지 못하면 내일 하루 종일 두통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다시 잠에 들면 나는 또 어떤 꿈을 꾸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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