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_ 단 한 줌의 다정과 사랑을 담아.
만약에, 라는 게임이 있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과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르는 가상 세계를 동일 선상에 두고 만약에 당신이라면 현재와 조금 더 그럴듯한 가상 세계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물음을 던지는 간단한 룰의 게임이다. 만약에, 라는 가정에는 아주 사소한 것부터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 묵직한 설정들이 첨가되곤 한다. 만약에 당신에게 지금 당장 십억 원의 돈을 준다고 하자. 대신 그 돈을 받는 즉시 혼자 오 년 동안 골방에 고립되어 그 누구도 만날 수 없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혹은 이런 가정도 할 수 있다. 만약에 당신에게 당신이 원하는 그 모든 것을 다 준다고 하자. 많은 돈과 화려한 외형,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커리어와 아무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강한 힘. 그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대신 원하는 조건은 단 하나. 당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다신 볼 수 없는 것. 그들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에블린은
세무당국의 조사에 시달리던 어느 날,
남편의 이혼 요구와 삐딱하게 구는 딸로 인해 대혼란에 빠진다.
그 순간 에블린은 멀티버스 안에서 수천, 수만의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모든 능력을 빌려와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영화는 행복한 얼굴로 함께 노래를 부르는 가족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서로 노래를 부르기 위해 장난스럽게 입을 막거나 마이크를 빼앗는 시늉을 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가족의 모습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영수증을 이리저리 확인하는 에블린의 고단한 얼굴로 전환된다. 에블린 앞에 놓인 고민들은 쌓여있는 영수증만큼이나 가득하다. 당장 탈세 문제로 집요하게 압박해 오는 세무당국의 조사를 준비해야 하고 노쇠한 아버지의 끼니도 챙겨야 하고 눈치 없이 이혼을 요구하는 웨이먼드에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딸 조이까지 에블린의 아침은 고된 현실의 연속이다. 어딘가 삶의 한 구석이 꽉 막혀버린 것 같은 에블린 앞에 또 다른 세계에서 온 웨이먼드가 등장하게 되고 그의 등장으로 인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와 세상과 가족을 구해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까지 짊어지게 된다.
세무 조사를 받던 에블린은 또 다른 세계에서 온 웨이먼드의 지시에 따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행동을 행하기 시작한다. 일부러 신발을 바꿔 신고 깊은 공상에 빠지며 새로운 세계에 존재하는 웨이먼드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에블린은 현재 자신의 모습이 다양한 세계 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들 중 가장 최악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웨이먼드와 먼 미국 땅으로 날아와 세탁소를 하며 조이를 낳아 키운 삶. 가장 실망스러운 선택과 모든 거절로 이루어진 가장 볼품없고 초라한 에블린의 삶.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자신의 존재감에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잠시 자신의 딸인 조이가 다른 세계에서 모든 차원을 아우르는 절대적 존재 조부 투파키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에블린은 모든 고독과 절망 속에서 베이글 모양의 블랙홀을 키워나가는 조이를 구하기 위해 모든 차원을 넘나들며 삶에서 가장 중요한 힘을 점차 알아가기 시작한다.
모든 차원을 넘나들며 자신의 딸인 조부 투파키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에블린은 도저히 자신의 힘으론 블랙홀을 제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절망한다. 역시나 그러하다는 듯 다시 모든 힘을 잃고 절망에 빠져 비관적인 행동을 일삼는 에블린 앞에 언제나 진지한 것 하나 없이 물 흐르듯 느긋하게 사는 웨이먼드가 나타나 놀랍게도 아주 손쉽게 문제를 해결해놓는다. 절망감에 진이 빠져 있던 에블린에게 웨이먼드는 말한다. 모두에게 조금씩 더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 지금까지 자신이 삶을 살아왔던 방식이라고. 우리는 모두 조금씩 누군가에게 다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사실 우리는 모두 다정함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웨이먼드의 말에 지금까지 자신의 삶 속에 존재했던 다정함을 떠올리게 된 에블린은 웨이먼드를 꼭 껴안으며 다시 조이에게 다가갈 용기를 얻게 된다.
모든 절망과 고독으로 커진 블랙홀에 몸을 던지려던 조이에게 그곳이 지옥이더라도 함께 하겠다는 듯 에블린은 조이의 손을 맞잡는다. 혼자 절벽 속에 몸을 던져 외로이 굴러 떨어지던 조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에블린은 딱딱하게 굳어진 자신의 돌멩이 같은 마음을 절벽 밑으로 기꺼이 힘껏 내던져 함께 추락한다. 삶의 가장 밑바닥으로 추락하더라도 언제나 굳건히 곁을 지켜주겠다는 듯이. 다정한 손길을 건네는 에블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이는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고 주저한다. 에블린의 손을 잡게 되더라도 언젠가는 또다시 우리는 절망에 빠지고 더욱 깊은 고독 속에 빠지게 될 거라고. 아마도 단 한 줌의 행복한 시간만이 우리에게 주어질 거라고 단언하면서. 주저하는 조이에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에블린은 말한다. 단 한 줌의 행복한 시간만이 주어진다면 그 단 한 줌의 행복한 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거라고. 아주 늦은 밤 마이크를 함께 맞잡고 노래를 부르는 아주 한 줌의 시간, 함께 밥을 먹으며 보내는 따분한 찰나의 순간, 서로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보내는 보편적인 하루의 일상. 사실 그 모든 삶의 순간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단 한 줌의 다정함과 행복들이 깃들어 있다고 영화는 말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