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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월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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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Mar 29. 2023

널 향한 나의 그리움을 사랑으로 또렷이 기억하겠다

<장기자랑>_ 그럼에도 너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장기자랑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로 영화는 시작된다. 무대 위에서 빈 맥주병을 기타 삼아 능청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여성과 그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여성들의 모습은 꽤나 능숙한 연극배우의 모습처럼 보인다. 연신 밝고 유쾌한 극의 전개 속에서 미소를 잃지 않던 배우들은 공연이 끝나자 담담한 얼굴로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을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담으며 어느새 9년이나 흘러버린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혹은 생존자의 엄마라고. 무대 위에선 공연을 즐기는 연극배우 같던 그들은 현실로 돌아오자 그리움으로 가득한 나날의 연속이다. 그리움이 켜켜이 쌓인 시간 속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그저 아이들이 남기고 떠난 작은 흔적을 닦고 또 닦는 일뿐이다. 끈이 끊어진 가방이 혹여나 더 상할까 봉투 안에 소중히 간직하고 가장 좋아했던 루피 피규어 위에 쌓인 먼지를 깨끗이 닦아내고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대회에 나갈 거라며 만들어놓은 로봇을 상자 안에 고이 모셔두며 애써 세월의 흔적을 지워내는 것이 그들의 중요한 일과 중에 하나가 되어버렸다. 한없이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함께 모여 커피를 배우고 그리움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던 그들은 우연한 기회로 연극을 시작하게 되고 그렇게 2014년에 멈춰있던 그들의 시간은 연극을 통해 더디지만 차근히 흐르기 시작한다.

 

2014년 그날 이후, 집 밖으로 나서기 어려웠던 엄마들은 지나가듯 얘기한 ‘재밌겠다’ 한마디에 연극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웬걸? ‘연기’라는 뒤늦은 재능을 발견하고 열정을 불태운다 그러나 새로운 연극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엄마들 사이의 질투와 갈등은 깊어지고 급기야 몇몇은 극단을 나가버리는데… 일곱 엄마들의 좌충우돌 연극 도전기! 우리 잘할 수 있을까?


생애 첫 공연을 순조롭게 마친 그들은 다음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고민하던 중 장기자랑을 주제로 공연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아이들이 수학여행에서 선보이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준비했던 장기자랑을 이제야 비로소 완성해 주기로 한 것이다. 각자 아이들이 좋아했던 관심사와 꿈, 성격을 본 따 만든 캐릭터를 교복 위에 덧입은 채 공연을 준비하는 그들 사이에서 그전까지는 느낄 수 없었던 미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들의 이름이 잊히기 않기 위해, 참사의 원인을 분명히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연극이었지만 준비를 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그동안 자신 스스로가 잊고 지냈던,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다양한 감정들과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극에서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가장 비중 높은 캐릭터를 사이에 두고 서로 경쟁하기도 하고 왠지 감독님에게 총애를 받는 것 같아 질투가 나기도 하고 그 누구보다 잘 해내겠다는 마음으로 밤낮없이 연습하기도 하면서 그동안 수없이 불려 왔던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혹은 누군가의 엄마라는 이름에서 벗어나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생생하게 살아 숨 쉬기 시작한다.


무대 위에서 아이를 대신한다는 마음에 다이어트를 하기도 하고 아이를 기억하겠다는 마음으로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기도 하면서 저마다 공연에 대한 마음을 다잡으며 그렇게 연극 <장기자랑>의 막이 오른다. 함께 아이돌 안무를 배우며 웃기도 하고 소소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유쾌하게 공연을 이어가던 그들의 순간순간마다 불쑥 그리움이 찾아오기도 한다. 아이의 일기장 속에서 뒤늦게 발견한 소중한 꿈에 미안해지기도 하고 밝은 얼굴로 아이가 좋아했던 루피 옷을 손수 만들면서 가슴이 저려오기도 하고 공연을 바라보는 관객 속에서 괜스레 아이의 얼굴을 열심히 찾아 나서기도 하면서 그들은 공연의 순간을 켜켜이 쌓아나간다.


연극을 알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이어오던 그들 앞에 마지막 공연 장소가 정해진다. 마침내 아이들이 떠난 학교에서 아이들이 입었던 교복을 입고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언젠가는 찾아오게 될 순간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 그들은 두려운 마음을 애써 감추며 공연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더디지만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최선의 공연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꼼꼼히 준비해 나간다. 극에서 작은 소품으로 지나가는 인형의 옷을 한 땀 한 땀 정성껏 입혀주기도 하고 혹여나 실수할까 안무며 대사며 달달 외우기도 하고 언제나 깨끗이 준비해 놓은 교복을 다시금 말끔히 세탁하기도 하면서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공연의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 어느 때보다 결의를 다지는 마음으로 무대에 선 그들은 반짝반짝 빛을 내며 무대를 쉼 없이 누빈다. 공연을 하다 울컥 차오르는 감정에도 굴하지 않고 어디선가 이 무대를 지켜보고 있을 아이들을 떠올리며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무사히 공연을 마친다. 언제 끝이 날까 싶었던 공연이 정말 끝이 나고 그들은 미안하고 홀가분한 마음이, 그립고 뿌듯한 마음이 수없이 교차한다. 여전히 제자리걸음 같은 현실 속에서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마음 한 구석에 희미하지만 또렷이 빛을 내는 작은 새싹 하나가 돋아난다. 반드시 앞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지의 새싹이, 너의 이름을 또렷이 새기며 삶을 살아가겠다는 사랑의 새싹이 훌쩍 자라난 것이다. 다음 공연을 위해 다시 강의실에 모인 그들의 시선은 모두 한곳에 집중되어 있다. 하얀 칠판 위에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 빼곡히 적히기 시작하고 이름을 하나씩 확인하던 그들 사이에서 또다시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결코 주인공을 하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와 이번에도 주인공을 놓치지 않겠다는 욕망의 불씨가 불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또다시 새로운 도전과 희망을 향해 한 발짝 걸음을 옮긴다.


*본 포스팅은 영화사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받고 작성하였으며, 내용은 주관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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