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_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충전기에 꽂아두었던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뒤척이지도 않고 자고 있던 나는 눈치도 없이 울려대는 알람 소리에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알람 중지 버튼을 누르고 한참을 미적거리다 이내 다시 침대에 몸을 웅크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한다. 잠에서 깨기 위해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구석구석 양치도 한다. 막 세수를 마친 얼굴에 물기를 닦아내고 스킨과 로션 그리고 선크림까지 꼼꼼히 바른 후 머리를 말리고 옷을 챙겨 입고 장마철인 요즘엔 우산도 꼭 챙겨나간다. 항상 같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매번 내리는 버스 정류장도 같다. 칠이 벗겨진 횡단보도를 건너 일터에 도착하면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가끔씩 바뀌는 동료들과 매번 다른 고객들을 맞이하며 일을 한다. 일이 끝나면 유니폼을 갈아입고 같이 일한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매번 같은 길을 걸어 집으로 향한다. 대부분 같은 시간에 점심 겸 저녁을 챙겨 먹고 영화 혹은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텀블러를 챙겨 밤산책을 나선다. 그날 컨디션에 따라 세 군데의 산책 경로 중 한 곳을 정해 음악을 들으며 하염없이 걷다가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휴대폰을 조금 하다 잠에 든다. 그리고 또다시 아침이 밝았다는 알람 소리가 울린다.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 ‘히라야마’는 매일 반복되지만 충만한 일상을 살아간다. 오늘도 그는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고,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이에 비치는 햇살을 찍고,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잔을 마시고, 헌책방에서 산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이가 소원한 조카가 찾아오면서 그의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긴다.
알람 소리 대신 낙엽 치우는 빗자루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난 히라야마는 창문 틈새로 보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며 상쾌하게 아침을 맞이한다. 잘 자라라는 마음으로 식물에게 물을 주고 세수를 하고 양치도 한다. 몸에 딱 맞는 파란색 점프슈트 유니폼을 입고 차키와 필름 카메라, 몇 푼의 동전을 챙겨 항상 그 자리에 놓여있는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뽑아 차를 몰고 일터로 향한다. 그의 일은 도쿄 전역에 있는 공공 화장실을 돌아다니며 청소하는 일이다. 오랫동안 같은 일을 반복해 온 그는 장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걸맞은 청소 용품을 꺼내 곳곳의 더러운 흔적을 남김없이 닦아낸다. 누군가는 어차피 금방 더러워질 곳인데 왜 그렇게까지 청소를 하냐며 핀잔을 주지만 히라야마는 개의치 않고 구석구석 깨끗이 닦아내고 휴지까지 삼각형 모양으로 보란 듯이 접어둔다. 청소 일을 모두 마친 그는 공용 목욕탕에서 말끔히 몸을 씻어내고 단골 가게에 도착해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하루의 고단함을 위로받으며 매번 같은 음식을 먹는다. 조용히 식사를 마친 그는 밤공기를 마시며 집으로 돌아와 낡은 책을 읽으며 꾸벅꾸벅 졸다 잠에 든다.
그리고 또다시 쓱쓱- 바닥을 쓰는 반복되는 빗자리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깬 그는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낸다. 특별할 것 없는 삶. 매일매일이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그는 지루함과 나태함을 느끼기보다는 그 속에 존재하는 오늘만 느낄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한다. 매일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아침 햇살의 공기와 일터로 향하는 길에 기분에 따라 선곡하는 나만의 사운드 트랙, 점심시간마다 찾는 공원에서 매번 달라지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빛을 필름 카메라에 담아내기도 한다. 단골 헌책방에서 주인과 짧은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가끔은 어여쁜 주인이 있는 술집에 들러 잠시동안의 평온함을 되찾기도 하고 하루하루 차곡차곡 찍어두었던 필름을 현상해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는 듯 '코모레비'를 선별하기도 한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너무도 평범한 삶이지만 단정하게 반복되는 그의 삶은 잔잔히 흐르는 호수처럼 충만함으로 가득 차 보인다. 오늘의 하루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빼곡히 채워가며 살아가던 히라야마 앞에 어느 날 얼굴도 흐릿하게 기억하는 조카가 찾아온다. 마치 어제도 만난 듯 스스럼없이 대하는 조카와 얼떨결에 일상을 함께 보내게 된 히라야마는 언제나 충만함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보였던 자신의 삶을 타인의 시선으로, 사회의 시선으로 다시금 의식하며 바라보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초라하다 느끼게 만드는 순간은 언제일까. 너무도 당연한 오늘의 하루. 언제나처럼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성실히 일을 하고 깨끗하게 몸을 정돈하고 오늘도 나쁘지 않았다 하루를 돌아보며 잠이 드는 삶. 삶을 무너뜨릴 듯한 큰 문제도 세상이 떠들썩해질 만한 큰 사건도 없이 잔잔히 흘러가던 일상을 한순간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한없이 의미 없는 순간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은 어떤 것일까. 화장실 청소를 하는 히라야마는 일을 하는 매 순간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시선과 마주한다. 화장실에서 혼자 울고 있는 아이에게 엄마를 찾아준 순간에도 고맙다는 인사 대신 마치 가까이하면 안 되는 것과 마주한 듯 아이의 손을 물티슈로 쓱쓱 닦아내기도 하고 청소하는 중간에 혀를 탁탁 차며 자리를 비켜달라 요청하는 이도 있다.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 그러한 순간과 마주할 때면 그는 하늘에서 쏟아져내리는 빛을 바라보거나 혼자서 덤덤히 미소 짓으며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음미한다. 이제 이러한 시선에서 자신은 자유로워졌다는 듯이. 덤덤해진 상처를 더욱 견고하게 다져놓듯이.
어쩌면 사람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큰 의미 없는 누군가의 시선, 자신도 모르는 새에 유니폼에 묻은 더러운 얼룩, 기름값이 없어 아끼는 카세트테이프를 팔아야 하는 순간과 언제나 혼자서 삭혔던 자신을 바라보는 편견 어린 시선을 누군가에게 들키게 되는 모습까지. 언제나 초연한 태도로 자신만의 세상에서 성실하고 단정하게 삶을 일궈나가는 것처럼 보이던 히라야마는 자신의 일상을 바라보는 조카의 순수한 시선에, 조카를 찾기 위해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동생의 말 한마디에 그동안 열심히 일궈냈던 자신만의 세상이 한순간에 흔들리고 만다. 모든 것이 다 의미 없다고 느꼈던 적이 있다. 알람을 듣고 일어나는 것이,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해야 하는 것이, 옷을 고르고 얼굴에 화장품을 발라야 하는 것이 모두 번거롭다고 느껴지는 순간. 매일 끼니를 챙겨야 하고 고단함을 애써 지우며 일을 해야 하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 운동을 하고 오늘 있었던 일을 일기장에 풀어놓은 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나 무슨 소용이 있지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기력하고 무가치로 느껴지는 순간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일상을 언제까지 의미 없이 반복해야 하는 거지 자꾸 자문하게 되는 순간이 불쑥 고개를 내밀며 나를 바라볼 때가 있다.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조카는 히라야마에게 묻는다. 저기 끝없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바다가 나오는 거냐고. 히라야마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바다가 나올 거라고 대답한다. 그럼 바다를 향해 가보자고 조카가 말하자 히라야마는 다음에,라고 짧게 답한다. 다음에 언제? 조카가 되묻자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이라고 히라야마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어느 날은 물에 젖은 솜처럼 몸이 무거워지고 어느 날은 별다른 이유 없이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어느 날은 정차 없이 걷고 싶어지곤 한다. 이대로 영원히 사라져도 아무런 미련이 없겠다 싶은 날도, 빨리 내일이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게 되는 날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있다. 애석하게도 이 지지부진하고 아름답고 따분하고 행복한 순간들이 모여야 비로소 우리의 세상이 된다. 다음이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들이 모여 우리를 살아가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