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아두면 방임, 끌고 가면 학대인가
어느 법정, 증거조사로 재생된 CCTV 이야기를 해 본다. 피고인은 24개월짜리 아이들 예닐곱을 돌보았던 어느 보육교사. 그중 한 아이가 야외 단체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교실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나갔고, 교실은 2층이라 아이들 중 누가 계단을 내려가다 다칠 수도 있는 상황. 교사는 아이 앞에 무릎을 꿇고 눈을 맞추며 설득하나, 아이는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설득하다 못한 교사는 아이의 팔을 끌고 데리고 나간다.
검사는 피고인신문에서 교사에게 묻는다. 아이를 저리 끌고 가면 아이의 정서적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유아교육과에서 배웠냐고. 피고인은 울며 대답한다. “아이를 괴롭힐 생각은 없었어요. 다른 아이들이 교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서, 그 애들도 돌보아야 하는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끌었어요.” 비슷한 장면 몇 개가 법정에서 상영되고, 검사는 준엄한 목소리로 아이를 정서적으로 학대했다며 징역 6월을 구형한다.
아동복지법은 아동의 건강과 안전한 성장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일정한 행위를 ‘아동학대’로 규정하고 금지하며, 그 경중에 따라 형사처벌과 취업제한까지 이뤄진다. 당연히, 아동의 건강·행복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는, 심할 경우 강력히 처벌해야 하고, 동종 업종에서 범행을 반복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그러나 아동복지법의 일부 독소 규정들로 인해, 양심과 사명감을 가진 교사들과 보호자들이 고통받고, 형사처벌의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방임행위’를 처벌하는 것이다. 아동복지법 제17조 제6호를 보자. “자신의 보호ㆍ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ㆍ양육ㆍ치료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방임행위”를 금지하며, 위반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저 놓아두는 것, 소홀히 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 처벌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다른 일이 벌어질 경우 훨씬 더 강한 처벌이 행위자를 기다린다.
오토바이 타기 좋아하는 고교 1년생이 학교를 무단이탈해서 사고가 나서 사망한다면, 지금의 법률에 따르면 교사는 ‘아동학대치사’로 처벌될 수 있다.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그 교사가 차를 운전하다가 실수로 사람을 치어 사망하게 한 경우에는 2년 이하의 금고형이 최대이다). 의도적으로 의식주 등 아동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보호를 하지 않고 방치하여 생명과 신체에 해악을 미치는 행위와, 그저 다른 아이들을 돌보다가 한순간 보호를 놓친 행위를 어떻게 같이 처벌하는가. 이것은 결코, 정상국가의 법이 아니다.
어떤 분야에서 사회적 문제가 생기고, 여론이 악화된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엄벌하라는 목소리는 높아진다. 국회가 움직여 특별법이 제정된다. 비슷한 행위에 대한 처벌의 강도가 형법에 비해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지며, 온갖 부가처분들이 덕지덕지 붙어온다(아동복지법은 벌금만 받아도 10년 동안 취업을 제한했고, 급기야 위헌 결정까지 받아야 했다). 행위의 사회적 해악, 죄의 경중, 행위자의 생계 등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특별법이 생기는 분야는 날이 갈수록 늘어간다. 그런 법들 중 어느 하나가, 자신은 법을 잘 지키는, 평범한 사회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목을 죈다. “아니 이런 것도 처벌한다고? 무기징역이라고?” 그 날에, 원망할 자를 찾고 싶겠지만 찾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에게 시민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생계를 침해할 날 선 칼을 쥐어준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위 사건의 최종 변론에서, 변호인은 검사와 판사에게 물었다. “단체 생활하는 여러 아이들을 혼자서 돌보다 보면,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일 아닌가요. 만약 억지로 데리고 가지 않고, 그냥 교실에 놓아뒀다면 방임으로 기소했겠네요. 놔두면 방임이고, 끌고 가면 정서적 학대입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쩌라고요’라는 말을 뒤에 붙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아동복지법의 해당 규정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심각히 훼손한다. 처벌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법률은 하루속히 개정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