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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프릴 Jul 05. 2021

10. 빌 벤슬리 (Bill Bensley) - 1부

빌 벤슬리 호텔 트레일 - 1편

안녕하세요, 글 쓰는 호텔리어 에이프릴입니다.


지난 편에서는 대표 자연주의 럭셔리 호텔 브랜드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이번 편에서는 저의 팬심이 가득 담긴 럭셔리 호텔이 사랑하는 디자이너 ‘빌 벤슬리(Bill Bensley)’와 그의 대표 호텔 작품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파라다이스 메이커 ‘빌 벤슬리’

빌 벤슬리가 대표작 ‘인터컨티네탈 다낭 썬 페닌슐라’의 스위트 객실의 모습 / 포토 크레디트 @ InterContinental Danang Sun Peninsula Resort

건축가, 디자이너, 조경사, 인테리어 디자이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토리텔러, 컬렉터, 아티스트 등 빌 벤슬리를 수식하는 타이틀은 매우 다양합니다. 하버드 대학원을 졸업하고 싱가포르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한 그가 1989년 방콕과 1990년 발리에 각각 ‘빌 벤슬리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유명 체인 호텔들과 하나씩 작업을 해나갔는데요, 커리어 초창기에는 먼저 조경사로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도 그가 설계에 참여한 ‘빌 벤슬리 가든’이라 불리는 정원이 있는 골프 리조트가 하나 있는데요 (엘OOO 리조트), 한 인터뷰에서 가장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가 재미없는 건물의 정원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 적도 있어 과연 그가 어떤 생각을 하며 이곳을 만들었을지 궁금해지기도 했어요.


그가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확장해 나가며 빌 벤슬리 스튜디오는 호텔의 조경뿐만이 아니라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도 제공하는 스튜디오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제는 호텔의 프로젝트에 따라서 DNA를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하여, 호텔의 작은 수저 하나까지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보여주는 가히 작품이라 말할 수 있는 호텔들이 하나둘씩 대중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가상의 ‘라마르크 대학’을 콘셉트로 스토리와 디자인을 선보인 JWM 푸꾸옥 / 포토 크레디트 @ JW Marriott Phu Quoc Emerald Bay Resort & Spa

그 첫 번째 신호탄으로 베트남의 JWM 푸꾸옥을 들 수가 있는데요, 제가 빌 벤슬리를 알게 된 리조트이기도 합니다. 리조트에 숙박하며 인하우스 고객을 위한 호텔 투어 액티비티에 참여했는데요, 지금까지 듣지도 보고 못한 콘셉트의 리조트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디자이너가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것들을 다 생각해낼 수 있었을까?


호텔 안에서 마주하는 모든 순간들에 감탄을 금치 못했답니다. 그래서 빌 벤슬리의 홈피를 파고, 인터뷰 기사를 몇 년 전 것들까지 찾아 읽어가며, 나중에는 그가 만든 호텔들을 찾아 숙박하고 인스펙션 하면서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며 어느덧 빌 벤슬리 팬이 되어버렸어요.

복장부터 특이한 빌 벤슬리, 그의 짝짝이 구두가 보이시나요?

빌 벤슬리는 다양한 철학과 디자인 콘셉트를 가지고 있는데요,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대표 철학이 바로 “The odder, the better.”입니다. 그의 비디오나 사진을 보면 살짝 광기가 있는 사람으로 의심이 들 만큼 특이한 행동과 복장들이 눈에 띄는데요, 그가 종종 인터뷰에 신고 나오는 짝짝이 수제 구두나 유명 시상식에 피카소가 연상되는 디자인의 화려한 재킷에 청바지를 입는 것만 보아도 보통 사람은 절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특히 그가 애용하는 서로 색이 다른 짝짝이 구두는 ‘이상할수록 더 좋다’라는 그의 철학을 잘 표현하는 그만의 스타일의 상징으로, 이를 마주친 사람들을 항상 웃고 즐겁게 만든다고 합니다. 물론 이 철학은 그의 작품에서도 철저하게 반영되고 있습니다.

빌 벤슬리 트레일 프로그램, 어마 무시한 가격이 눈에 띈다.

럭셔리 호텔이 사랑하는 디자이너인 만큼 그가 만든 호텔과 리조트 대부분의 객실 요금이 꽤 비싼 편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든 호텔 작품들만을 찾아 호텔 여행을 즐기는 이들도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지난해에는 한 럭셔리 여행사에서 ‘더 빌 벤슬리 트레일’ 패키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판매하기도 하였습니다.


프로그램 안에는 빌 벤슬리와 그의 남편이 함께 사는 방콕의 유명 보태니컬 하우스인 ‘Baan Botanica’에서 그와 함께 디너까지 먹을 수도 있었는데요, 다만 약 2주간의 일정이 인당 4000만 원이 넘는 가격으로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는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빌 벤슬리 덕후인 저에겐 꿈같은 프로그램이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네요…

빌 벤슬리가 사는 방콕의 보태니컬 가든 하우스 ‘Baan Botanica’ / 포토 크레디트 @ Baan Botanica

그래서 제가 대신 ‘빌 벤슬리 랜선 트레일’로 이번 글을 써 보았습니다. 특히 요즘 그가 자주 사용하는 호텔의 DNA와 스토리텔링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프로퍼티들로 골라보았아요.


그럼 여러분, 저와 함께 랜선 트레일 떠나볼까요?!




1) 호텔 드 라 쿠폴 엠갤러리 (Hotel de la Coupole, MGallery)

호텔 드 라 쿠폴의 전경, 쿠폴은 Dome이라는 뜻으로 몇 개의 돔이 관찰된다 / 포토 크레디트 @ Hotel de la Coupole - MGallery

“More is never enough.”를 모토로 빌 벤슬리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운 맥시멀 리스트라고 표현합니다. 여행을 할 때면 어디를 가던 항상 그 지역의 골동품 쇼핑을 즐기는 그가 “Buy first, think later.”를 실천하는 마음으로, 언젠가 쓸모 있을 것 같은 아이템을 전부 싹쓸이를 해 온다고 합니다. 덕분에 그의 창고에는 몇 년 동안 묵혀있는 골동품들이 수두룩하지만, 이런 아이템들로부터 새로운 호텔 프로젝트의 영감을 얻기도 하는데요, 베트남 사파에 위치한 ‘호텔 드 라 쿠폴’이 좋은 예입니다.


이 호텔의 전체 콘셉트는 빌 벤슬리가 파리의 거리에서 구매한 수박색 포카 도트 무늬의 베트남 대나무 모자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모자 하나에서 호텔의 콘셉트와 스토리텔링, 그리고 인테리어까지 만들어내었다고 하는데, 또 하나의 성공한 빌 벤슬리의 호텔 작품은 이처럼 그의 유별난 쇼핑 기벽에서 시작된 것이랍니다. (참고로 이 호텔은 월드 트래블 어워드 2020에서 ‘베트남 리딩 럭셔리 호텔상과 ‘아시아 리딩 디자인 호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함종산에서 바라본 사파 타운의 모습, 산악 지역이라 항상 안개가 자주 낀다.

호텔 드 라 쿠폴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먼저 사파의 역사적 배경을 알면 더 이해가 빠르실 텐데요, 사파는 하노이에서 북서쪽으로 약 350km 떨어진 해발 1650m의 산악 지역으로 고산 기후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 식민지 시절 하노이의 고위 관료의 여름 피서지로 개발된 지역입니다.


현재로 치자면 뉴욕의 상류층이 여름마다 햄튼의 별장으로 피서를 가는 것과 비슷하게 보면 될 것 같아요. 햄튼 스타일이 있는 것처럼 당시의 프랑스 귀부인들도 피서지 패션을 만들었는데요, 호텔의 모티브가 된 포카 도트 무늬의 대나무 모자도 어쩌면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라는 그의 즐거운 상상이 시작됩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팩트에 그의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호텔의 스토리텔링 배경이 만들어집니다.

포토 크레디트 @ Hotel de la Coupole - MGallery

스토리에 따르면 (As per story로 항상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호텔 인스펙션 때도 말이지요), 20세기 초 사파는 조용한 산골 마을이었는데요, 홍강 삼각주 주변 도시의 프랑스 식민지 개척자들은 여름 동안 모든 사무실을 사파로 옮겨 더위를 피했습니다.

사무실을 옮기게 된 남편들을 따라 사파에 온 귀부인들은 함께 모여 피크닉을 즐기고 수영을 하고 살롱에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합니다.


특히 이들 사이에는 패션 경쟁이 치열했는데요, 로컬 고산족의 문화가 반영된 다양한 옷감과 색감의 실을 이용하여 탄생한 패션이 파리의 오뜨 꾸뛰르와 어떻게 혼합되는지 대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호텔의 배경 스토리가 만들어집니다.

부티크 살롱과 같은 분위기의 호텔의 로비와 프런트 데스크의 모습 / 포토 크레디트 @ Hotel de la Coupole - MGallery

스토리 라인에 따라 호텔의 로비는 부티크 살롱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프런트 카운터에는 다양한 색감의 실로 가득 찬 벽장을 만들어 두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로비 라운지의 긴 소파 위 쇼케이스에는 골동품, 낡은 트렁크, 날아다니는 모자 등으로 장식되어 있는데요, 이 중에는 이 모든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수박색 포카 도트 무늬의 대나무 모자도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에 전시된 모든 것들이 빌 벤슬리의 지난 여행 중에 파리를 포함한 다양한 장소의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골동품 전시장과 같은 로비 라운지의 모습, 호텔의 모티브인 수박색 포카 도트 대나무 모자가 중앙에 있다 /포토 크레디트 @ Hotel de la Coupole - MGallery

각각의 객실은 콘셉트에 따라서 기발하게 장식되어 있는데요, 사파 마을의 소수 민족들이 수작업으로 만든 화려한 색감의 바틱 디자인을 곳곳에 배치하였다는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또한 머스터드 옐로, 레드 자오족의 레드, 인디고 블루 등과 같은 베트남과 사파의 소수 민족들을 대표하는 색을 사용해 객실의 메인 컬러를 설정하고 인테리어 소품들과 조화롭게 융합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객실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바로 베드 사이드 조명인데요, 검은색 리넨으로 덮인 조명 갓 위로 프랑스 오뜨 꾸뛰르 스타일을 표현하는 진주 목걸이와 사파의 소수 민족의 인디고 염색천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달팽이 무늬를 은 수공예품으로 만들어 달았습니다.


빌 벤슬리가 이 호텔의 디자인을 ‘A marriage of Hill Tribe fashion and Parision Haute Couture’라고 표현하는데요, 이 조명 장식 하나로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호텔의 콘셉트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 같네요.

포토 크레디트 @ Hotel de la Coupole - MGallery

객실은 물론이며 호텔의 공용공간이나 시설물을 살펴보아도 화려한 색감의 디자인과 장식이 많은 것이 빌 벤슬리의 맥시멀 리스트 성향이 뚜렷하게 엿보이는데요, 심플하고 모던하며 여백의 미를 즐기는 이들이라면 그의 스타일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만드는 것은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신조를 지키며 그만의 스타일을 고수해왔기에 빌 벤슬리의 작품을 좋아하고 그를 응원하는 많은 이들, 그리고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호텔 오너들이 있다는 것은 계속해서 그가 새로운  호텔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일 것입니다.

인스타그램 핫스폿인 웅장한 호텔의 수영장 / 포토 크레디트 @ Hotel de la Coupole - MGallery


2편으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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