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빌 벤슬리 호텔 트레일 - 2편
지난 편에 이어서 저의 팬심 가득 담긴 럭셔리 호텔이 사랑하는 디자이너 '빌 벤슬리 (Bill Bensley)'와 그의 대표 호텔 작품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카펠라 하노이는 지난 시리즈의 카펠라 브래드 소개 편에서 살짝 소개드린 적이 있는데요, 당시에는 호텔이 오픈 전 인지라 베일에 둘러싸여 있어 자세히 소개해 드리지 못했는데 드디어 그의 작품이 대중 앞에 공개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오픈한 빌 벤슬리의 호텔이라 다양한 호텔과 디자인 미디어 매체에서도 앞다투며 소개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호텔의 위치한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는 오랜 역사를 지닌 랜드마크인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데요, 이번에는 이 오페라 하우스가 호텔의 메인 모티브로 이용되었습니다. ‘호텔 드 라 쿠폴’과 마찬가지로 카펠라 하노이에서도 게스트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스토리텔링이 사용되었는데요, 이번에는 스토리뿐만이 아닌 캐릭터, 그리고 이야기와 인물에 어울리는 배경을 호텔의 공간 안에서 새롭게 탄생시켰습니다.
스토리에 따르면, 이곳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작은 부티크 호텔이었는데요, 오페라 하우스에서 몇 발자국 떨어져 있었던 이 호텔은 오페라를 보기 위해서 하노이에 오는 당시의 인싸들이 꼭 방문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중 한 사업가가 이 건물에 매료되어 이를 구입을 하게 되지만, 베트남 전쟁으로 호텔은 결국 폐허가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오페라를 사랑하는 한 부유한 베트남 사업가가 이곳을 다시 구입하게 되면서, 그의 훌륭한 취향과 약간의 광기를 호텔 재건 사업에 불어넣어 예전의 영광을 되찾게 됩니다.
특히 호텔 객실이 총 47개인데요, 이를 위해 스토리 안의 캐릭터도 오페라 가수, 작곡가, 무대 연출가, 의상 디자이너, 관중 등으로 47명을 만들어내어 각 객실의 주인공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빌 벤슬리는 그의 그림 선생님이자 아이콘인 ‘케이트 스펜서 (Kate Spence)’를 초빙하여 호텔 안의 다양한 부분을 그녀와의 협업을 통해 이뤄냅니다. 우선 자화상을 주로 그리는 그녀가 그린 캐릭터의 자화상과 그림들이 호텔의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며, 또한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고급스러운 식기 또한 그녀의 디자인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호텔의 레스토랑의 이름도 ‘Backstage’와 ‘Diva’s Lounge’처럼 오페라가 연상되는데요, 특히 ‘Diva’s Lounge’는 오페라 무대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답니다. 디바가 무대에 오르기 전후에 휴식을 취할 법한 장소처럼 무대로 통하는 통로의 커튼을 살며시 걷어 올린 디테일을 표현하기도 했어요.
이밖에도 통로의 벽에는 디바를 기다리는 파파라치들의 벽화가 있기도 하고요, Backstage 레스토랑은 오픈 키친으로 만들어 바쁜 셰프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치 오페라 무대의 뒤의 바쁜 백스테이지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사실 카펠라 하노이가 생기기 이전부터 하노이의 오페라 하우스를 모티브로 한 유명한 호텔이 하나 있는데요, 이름부터 오페라가 들어간 바로 아코르 계열의 Hotel de I’Opera Hanoi- MGallery입니다.
이곳은 호텔에서 오페라 하우스가 보일 정도로 위치도 훨씬 더 가깝고, 레스토랑 안의 대형 스크린으로 항상 흑백영화를 상영하고, 객실도 여배우가 사용하는 조명 달린 거울과 고양이 발 욕조를 셋업 할 정도로 오페라 하우스를 콘셉트로 이용하고 있었는데, 카펠라 하노이가 오픈하자마자 쭈구리가 되어버렸어요.
아주 작정하고 호텔의 모든 것을 오페라 콘셉트로 만든 카펠라 하노이는 디자인, 인테리어, 호텔의 DNA까지 역시 빌 벤슬리의 작품답게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이 섬세함이 돋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곳은 ‘JW 메리어트 푸꾸옥 에메랄드 베이 리조트 앤 스파 (이하 JWM 푸꾸옥)’인데요, 이곳은 주변의 랜드마크나 지역의 역사적인 배경과 같은 것들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완벽하게 가상의 스토리를 입혀 마치 영화 한 편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리조트입니다.
지금이야 푸꾸옥이 베트남의 하와이로 불리며 떠오르는 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과거에는 캄보디아와의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가장 먼 섬이라는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정치범 수용소가 있었던 곳으로 항상 베트남 본토로부터 외면받아왔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 곳에 명문 사립대가 있을 리가 만무하겠지요.
스토리에 의하면 리조트의 모태는 19세기 후반 베트남의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실존 인물인 프랑스의 생물학자 ‘장 바스 티스 라마르크’의 이름을 따서 만든 가상의 ‘라마르크 (Lamarck) 대학’인데요, 리조트의 상점들이 위치한 베트남의 전통가옥의 모습을 담은 메인 스트리트는 처음 대학이 만들어진 장소였으며 부유한 가문의 자제들이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학교의 규모는 현대식 건물로 점점 더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이 대학은 스포츠 명문학교로 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까지 베트남의 명문 대학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이후 폐교되어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 있다가 개발사인 썬 그룹에 의해 다시 라마르크 대학의 모습으로 복원한 리조트로 재탄생되었다는 스토리입니다.
스토리에 사실감을 더하기 위해 베트남 전통 가옥 형태의 모습을 띤 메인 스트리트를 일부러 만든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어요. 또한 스포츠 명문 학교라면 빠질 수 없는 운동장과 트랙이 있고, 로비에는 학생들이 받은 우승 트로피로 벽장을 가득 채우고, 전쟁으로 인해 학생들이 놔두고 떠난 가방들도 로비의 한쪽에, 그리고 학생들의 흑백으로 된 단체 사진들이 로비의 벽면을 구석구석 채우며 스토리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또한 이 학교에는 마스코트도 있는데요, 바로 푸꾸옥의 토종 개인 푸꾸옥 리지백(Ridgeback) 도그입니다. 베트남의 국견으로 지정되어 있는 종인 데요, 호텔의 입구부터 로비, 정원의 동상 등으로 만들어 배치해서 리조트 곳곳에서 리지백 도그를 만나볼 수 있어요.
빌 벤슬리는 애견가로도 유명한데요, 잭 러셀 테리어와 불테리어를 5마리나 기르고 있는 개 아빠랍니다. 종종 그는 호텔 작품에 그의 강아지들을 모델로 한 조형물들을 설치하기도 하는데요, JWM 푸꾸옥에서는 동물학과의 트윈 베드 객실의 장식장에 강아지 탑을 세웠더라고요. 강아지 사랑을 또 이런 식으로 들어내시는군요!
이곳은 대학교 콘셉트이기에 리조트 동과 객실은 대학의 전공학과의 이름을 붙여 각 전공의 콘셉트에 맞게 디자인되어 있는데요, 특히나 이 중에서 화학과의 모습을 한 비치 바가 가장 눈에 띄었어요. 천장에는 원소 기호가 가득하고, 바에서 사용하는 컵은 비커로, 스포이트와 실린더를 이용해 칵테일을 조제하고, 바텐더들은 마치 연구원들처럼 실험실 가운을 유니폼으로 입고 있었답니다. 정말 디테일 장인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프런트와 벨 데스크의 직원들은 마치 방과 후 폴로 시합에 나갈법한 복장을 유니폼으로 입고 있어요. 이처럼 리조트를 상징하는 스토리를 설정하고 유니폼을 비롯해 스토리와 분위기를 세밀하게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아이템들을 직접 수집하여 전시한 리조트는 마치 영화를 한편 보는 듯합니다.
빌 벤슬리는 한 매체 인터뷰에서 리조트를 구상할 때 마치 할리우드 영화처럼 명확한 스토리 라인을 구축한다고 하였습니다. 스토리와 세계관이 마음에 든 영화라면 몇 번이고 다시 보듯이 고객이 몇 번이고 리조트를 다시 방문할 것을 믿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의도 한대로 저도 리조트에 있는 동안 잘 짜인 스토리를 가진 영화를 한 편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요, 숨어있는 스토리와 콘셉트를 찾는 재미가 쏠쏠했답니다. 정말 한번 방문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곳이었어요.
이처럼 빌 벤슬리의 디자인은 그저 화려한 스토리와 디자인만을 가진 것이 아닌 공간과 소품이 주는 상징성과 재미, 그리고 자신이 만든 스토리를 호텔 안에서 탄탄히 전개함으로써 보통의 호텔과 리조트에서 쉽게 만나 볼 수 없는 특이한 콘셉트로 고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럭셔리의 정의가 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그가 제시하는 ‘뉴 럭셔리’는 고객에게 럭셔리한 시설물과 서비스와 제공하는 것뿐만이 아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환경적 그리고 사회적인 지속 유지 가능성은 색다른 경험의 일부분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니 럭셔리를 추구한다면 이를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하는데요, 그는 항상 이 지속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그의 디자인 철학으로도 애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그가 디자인한 ‘카펠라 우붓’은 자연을 최대한 훼손시키지 않는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나무 한 그루 자르지 않고 23개의 텐트 타입의 객실을 만들어 냈으며, ‘더 슬레이트 푸껫’은 버려진 재활용 자재들을 적극 이용하여 친환경적인 리노베이션을 이뤄냈습니다. 이곳 JWM 푸꾸옥에서는 객실의 양면에 창을 설계하여 객실 안으로 자연 채광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도록 하였는데요, 덕분에 이곳에서는 낮에는 절대 조명을 필요 없을 정도로 환해 큰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프로퍼티로 거듭나게 하였습니다.
그럼 다음 편에서 다시 찾아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