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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지붕 B사감 May 23. 2024

무쓸모의 쓸모

<깊은 강, 엔도 슈사쿠>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시는 건가요?”
그러자 수녀의 눈에 놀라움이 번지더니, 천천히 대답했다. "그것밖에... 이 세계에서 믿을 수 있는 게 없는걸요. 저희들은"
그것밖에라고 한 건지, 그 사람밖에라고 말한 건지, 미쓰코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 사람이라고 말한 거라면, 그건 바로 오쓰의 '양파‘이다. 양파는 까마득한 옛날 죽었지만, 그는 다른 인간 안에 환생했다. 20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뒤에도 지금의 수녀들 안에 환생했고, 오쓰 안에 환생했다.

<엔도 슈사쿠, 깊은 강, p.324>


어려서 교회는 고급스럽고 새로운 놀이를 알려주는 공간이었다. 노래와 춤을 배우고 점잖게 의자에 앉아 말씀을 듣고 간식을 획득할 수 있는, 동네친구들과의 놀이와는 사뭇 차별된 행위를 하는 곳이었다. 당시 신에 대한 믿음은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하지만 막연했지만 절대적인 믿음의 크기만큼, 성장하면서 교회가 지닌 폐쇄성과 집단이기주의적인 모습을 목도하면서 크게 실망했다. 그 시절 어리고 순수한 믿음이 지금까지 지속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오쓰는 구도자이다. 그의 행적을 따라가며 끝없이 내적갈등을 겪는 미쓰코 역시 또 다른 의미의 구도자로 보인다. 절대적인 유일신의 존재 유무에 집착하지 않고, 각자의 고통과 슬픔을 흘려보내고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를 만나는 과정을 이 책은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민간신앙, 샤먼, 미개한 믿음이라고 경시되는 것, 누군가에겐 그런 비인간 생명체가 품어내는 노골적인 생명력을 종교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매년 푸르게 살아내는 나무와 순리대로 흘러가는 강물과 보도블럭 사이를 뚫고 나오는 가냘픈 몸의 이름 모를 풀까지도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모순, 부조리, 혐오, 전쟁이 지속되는 인간 세상의 모든 문제를 종교가 해결할 수 없고 그 안에서 고통받는 인간을 구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바라나시의 깊은 강에서 각자의 슬픔, 고통을 쓸어내려 흘려보내는 의식을 통해 각자의 고유한 믿음으로 이 세상을 재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상에 쓰러져있는 사람들을 하나라도 구하려는 수녀의 손길이 일견 티끌처럼 무기력하고 쓸모없는 행위와 같이 느껴지더라도 이러한 진정한 이타성이 인간 세상에 필요한 것은 아닐지. 그래서 위 문장을 꼽아보았다. 일말의 이타성도 상실해가고 있는 지금 절실한 구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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