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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Sep 28. 2019

외로운 사람의 침묵

북클럽에서 만난 사람들 1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은데 내(가 지금 집중하는) 직업은 북클럽 운영이다. 나도 내 직업이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책 토론을 통해 사람들이 자아를 확장시켜 사회적 자아를 확립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음 사고 프로그램 개발자 정도?)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북클럽에 가장 많이 오는 유형이 치료받지 않고 방치된 채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이다. 적당히 보다가 상담을 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상대방도 그렇겠지만 내쪽에서 너무 괴로워서 지금은 그런 케이스를 피하는 쪽으로 감각을 벼리고 있는데 쉽지 않다. 난 평생 어떤 우울을 깊게 느끼는 사람들에게 너무 잘 노출되는 성격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우울감과 의존성 공존하는 사람에게만.

어떤 사람이 있었다. 성인 남자. 나이는 모름. 계속해서 모임에 참여하는데 말을 한 마디도 안 하고 단순한 느낌이나 기분만 물어봐도 식은땀을 흘리고 눈동자가 흔들리고 안절부절 못 했다. 그런데도 계속 왔다. 첫 모임 후엔 인스타를 알림 설정해서 내가 언제 어떤 포스팅을 올리든 3초 안에 반드시 좋아요를 누르고 반드시 댓글을 1등으로 달고 신청서도 공지 올리자마자 1등으로 신청하고 자기 1등이냐며 확인하고 좋아했다. 나중엔 페북도 팔로우하고 똑같이 굴었다. 숨이 막히고 부담돼서 양해를 구하고 페북은 차단했다. 북토론에 참여한다기보단 종교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리를 두고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것을 못하는 사람들 중에 종교색이 느껴지는 사람이 많다. 내 일상에 이런 경우가 끊임없이 있다 보니 스트레스가 심했고 어느 날부터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났고 치료를 받아야 했다. 어떤 유형의 사람에겐 심각하게 예민해졌다. 나에겐 그게 안전장치라고 믿는다. 순진해서 막 들이대는 사람은 좀 위험한 상태라고 본다.

어느 날 이 남자가 북토론에 왔는데 정말 자아가 없는 눈빛으로 아무 반응도 없이 구경하듯 멍하니 내 말을 듣길래 질문을 던졌더니 또 심각하게 불안증을 보였다. 그날 내가 심리 검사라도 받아보시는 게 어떻겠냐고 북클럽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일단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단순 작업만으로 버티는 것은 나이의 한계가 있을 것이고 아무리 봐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글과 말이 너무 극단적이었다. 모니터 저편의 성격과 실제 상황의 성격이 너무 달라서 도저히 적응이 안 됐다.

그 주에 그 사람이 보내준 소감문. 사실 북토론과 관계도 없는 글. 이 글을 읽으며 한 편으론 어떤 움직임이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론 언제까지 나는 이런 일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어야 하는 건지 힘이 빠지기도 했었다. 철저히 자기 자신만을 위한 글이지만 아마도 나에게 칭찬과 격려를 듣고 싶었을 것이다. 심리 상담도 그래서 받았을까. 내 주변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그건 정말 사람을 외롭게 한다.

타인과의 소통을 전제로 하는 말의  생산성이 결여됐다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 알았으면 좋겠다.

외롭다고 섣불리 대화를 시도하고 모임을 찾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대화의 대상이 되는 누군가는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소모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억지로 버티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소중한 시간과 언어를 함부로 나누어 쓰려고 하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다. 내 눈에 멀쩡해 보이는 누군가도 배수진을 치고 버티는 삶일지도 모른다. 아껴주고 조심해야 한다. 외롭다면 먼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이 순서다.

이후 나는 그와 알고는 지냈지만 거리를 두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소통이지 가르침이 아니었기 때문에.

ㅡㅡㅡ

#북클럽오세여
#오픈클럽소감문

며칠 전 지인과 이야기하며 김제동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일이 있었다. 내가 그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재치 있고, 말을 조리 있게 하고, 명언이나 격언 등을 적절하게 활용하며 아주 지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매력이 넘쳐 보였다.  그는 오랫동안 계속 싱글이었고, 나는 이런 좋은 사람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는가 하고 안타까웠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본 그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는 맞선을 보는 프로그램 (방송을 위해 연출된 가짜 상황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에 출연했고, 맞선녀를 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맞선 상대에게 도무지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맞선녀가 얘기를 하고 있는 도중 갑자기 지나가는 아이들을 향해 인사를 하는 등. 누가 봐도 비상식적이고 불쾌한 상황이었다. (한두 번이 아닌 지속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였으니까) 그리고 그런 그의 행동을 지적하는 맞선녀에게 김제동 씨가 한 대답은 상황을 더 묘하게 만들었다.

"세월호 사건 이후, 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꼭 잘 대해주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언제나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며, 밥을 먹었는지 물어본다. 굶은 아이에겐 밥도 사주고 싶다" (정확한 워딩을 찾아서 옮긴 것이 아니라 기억의 왜곡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뜨악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에서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기로 했다는 연결은 언뜻 나쁘지 않게 들린다. 하지만 상황이 나쁘다. 맞선 상황에서, 나에게 집중 좀 해달라는 질책에 대한 답변으론 도저히 얼토당토않은 대답이다. 전혀 재치 있지도 조리 있지도 않다. 그제야 나는 왜 사람들이 김제동 씨를 싫어하는지, 그리고 왜 아직도 혼자 사는지를 얼핏 짐작하게 되었다.

그는 대의와 선의를 위해 산다는 아주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인 듯 보인다. 하지만 그는 그와의 맞선을 위해 나온 상대방에게 고작 한 시간조차도 같이 집중하지 못했다. (네, 저도 죄송합니다) '이타적인 삶을 추구하는 나, 정의로운 나'가 존재하는 자신만의 세계 속의 살고 있지만 정작 그 세계 속엔 자기 자신 외엔 아무도 없는, 자신의 바로 앞에 앉은 맞선자 조차도 들어갈 수 없는 공허한 세계에 그는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의 옆에 서는 일은 얼마나 무의미하며, 시간낭비로 느껴질까.

관계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나와 나, 나와 너, 나와 우리(사회)'의 관계. 이 세 가지가 모두 중요하다고 여우님은 지적하셨다. 아마 김제동 씨의 경우는 '나와 너'의 관계가 부재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제 김제동 씨는 아무래도 좋아) 문제는 바로 나인데, 나는 이 세 개의 관계 중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관계가 없다고 느꼈다. 나는 나와의 관계에 무관심한 듯 보인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게 의식적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리고 사회와도 별 다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나에게 관심사는 오로지 지금 당장 내가 재미를 느끼고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이 어릴 적엔 게임이었다가, 20대 초엔 프로그램 개발을 거쳐 지금은 요리로, 그저 그렇게 흘러왔을 뿐이다. 나에겐 오직 지금의 욕망만이 존재하며 과거도 미래도 부재한, 텅 빈 세계 속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것을 남에게 들킬까 두려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혼자 꽁꽁 싸맨 체, 평범한 사람인척 하려 그럴듯한 말을 둘러대고 있다.

심리상담 때 선생님은 검사 결과를 보여주며 나에게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수치심'이라고 하셨다. 타인에게 속내를 드러내면 비웃음을 살 것이다.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을 것이다 라는 심리상태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기의 모습을 숨기고 '복종심'을 선택하게 된다고 한다. 남의 말을 그대로 따르면, 타인과 일단 당장의 마찰도 피할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내가 수치를 느낄 일이 없다. 복종에 따른 실패는 나의 수치가 아니라 명령자의 수치라며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꽤 달랐던 부분이라, '정말 나도 나를 잘 모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은 타인의 시선에 완전히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타인의 평가 때문에 나를 옭아매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후기를 쓰면서, '나는 왜 그냥 독서모임 후기다운 후기를 쓰지 못하는 건가..', '이러다 미움 살지도 몰라' 같은 생각 등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심리검사는 꽤나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 또 생각만 혼자 저 멀리 달리고 있다)

나의 일에 신경 쓸 것. 타인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좀 더 자주 만들 것. (필요하다면 우황청심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면 긴장 시 나타나는 증상들이 조금 완화된다고)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시간을 보내려 한다.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가만히 있으면, 나도 김제동 씨처럼 매력 없는 사람으로서 평생을 살아갈 테고 그렇게 기억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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