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 당시 많은 남자 연예인들이 당시에 참으로 비장한 표정으로 읊어댔던 말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평소에 공적 글쓰기와 발언을 많이 하는 사람이 검색어 순위에 오를 만큼 공분을 사고 있는 특정 주제에 대해 선택 없는 침묵이 가능한가? 난 침묵하는 모두에게 의문을 갖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분명한, 선택적이고 불균형한 발언 욕구에 의문이 든다. 일상적인 일에서 세계에서 일어나는 큰 사건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글을 써오던 사람들이 특정 주제에만 특별히 관심이 전혀 없다면 그것은 자유인가. 무책임인가. 난 이것을 반응하는 능력과 선택의 문제로 보고 싶다. 그들은 특정 주제에 대한 침묵을 선택한 것이다. 나에게 그 선택은 무책임으로 읽힌다.
이런 적극적 침묵인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고 모든 시대에는 특정 집단에 대한 적극적 박해자가 있었기에 그들과 비교되며 언제나 상대적으로 덜 나빠 보였다. 그들의 정신은 자기를 지켜주는 논리 속에서 안전했다. 그들은 늘 말이란 원해야 하는 것이라는 합리화를 하고 그 말을 믿고 살기 때문이다.
인간에겐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 있다. 한국에선 책임을 주어진 일이라는 의미로 쓰고 영어에선 '반응하는 능력'이라고 쓴다. 무언가를 접하고 반응을 하는 능력이 없다면 책임을 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반응하는 능력이 있는데 반응하지 않는다면? 어떤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이다. 어떤 말은 반드시 해야만 한다. 아무도 하지 않으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공적 언어란 그래서 특별한 힘이 있다. 책임 있는 이들은 역사 속에서 목숨 걸고 발화했고 그 행위로 소중한 많은 것을 지켜냈다.
힘이 없어서 두려워서 입장이 난처해서 다른 어떤 이유로 발언하지 못할 수 있다. 그건 이해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내심 이 문제에 대해 연대 책임지지 않기로 한 것이 맞으면서 자꾸만 권리라고 우기는 것이 우습다. 이 문제에 무책임하고 싶은 것. 뒤로 빠지고 싶은 것. 그것이 당신의 침묵으로 선명히 드러난다.
2명이 취재했고 누군가 반응했고 반응이 반응을 일으켰고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침묵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서 빠져 있다. 자기 문제가 아니어야만 누리는 평화가 그들에게 있고 그 권리를 선호하기 때문에 침묵을 깨는 선택은 하지 않고 있다. 하필 여성 문제에만 움직이지 않는 그 정의감에 정말 아무 문제도 없나? 이래도 무책임이 아닌가?
아무도 반응하지 않으면 이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발화하지 않으면 이 말들은 사라진다. 평소에 그렇게 많이 말하고 써왔으면서 이 문제에만 침묵하는 것 누군가 욕할 수 있다. 당신들의 침묵에 서운해하는 우리를 폭도로 모는 당신들 자신의 방관과 침묵에 대해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는 당신들. 이 문제가 남의 일인 당신들 무책임하다.
표창원만 저 약속을 지키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관심을 가져야 관심과 감정과 언어가 생긴다. 무관심하니까 침묵이 발생하는 것이고 알고 싶지 않으니까 모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지점에 선택이 있었다. 당신의 그 침묵이 저 가해자들의 자신감이 되고 그 피해자와 그 피해자를 지켜주려는 이들에게 상처와 무력감을 안겨 준다.
말하지 않을 권리? 당신은 그냥 성평등에 있어서 금수저를 갖고 태어났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스스로 얻은 어떤 권리도 없다. 그 침묵하는 입으로 침묵할 권리까지 떠들지 말라. 꼴사납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