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넷플릭스 <인간수업>을 봤다. 여러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바른 길이란 선상에서 내몰린 청소년들이 생존하기 위해 걸어가며 만나는 몇몇 어른들을 보면서 마음이 자꾸 가라앉았다. 당사자들은 매춘과 폭행, 사기와 살인이 넘나드는 세계에 이미 깊숙이 들어가 있고 - 미성년이기 때문에 아직은 보류된 - 확실한 하류 인생(재물 유무와 상관없는 하류의 삶)을 향해 직진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가끔 만나 저만치에서 걱정해주는 선량하고 온전한 인품의 담임 선생님의 '꼰꼰댐'이 이들에게 어떤 영향력이 있을까.
학교에서 일했을 때 정말 폭력적인 남학생을 겪은 적이 있다. 웃으며 떠들다가도 마음에 안 들면 절친 머리통을 화장실 세면대에 박아버리던 그 애 눈에 여리고 반듯할 뿐인 나는 얼마나 우스웠을까. 나는 그들 삶과 아무 관련이 없는 그냥 타인이었을 뿐이다. 그런 존재가 과연 강력 범죄자들 틈바구니에서 헤매는 청소년을 지도하거나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보호자 역을 할 능력이나 있나?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는 시스템의 부재와 한계가 실감되어 마음이 답답했다.
한국에서는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어나는 거의 모든 문제 해결을 가정을 통해서 처리한다. 가정의 정상성에 대한 논의는 지적이거나 도덕적인 접근으로 합의를 본 적이 없다. 보수적 정치 논리와 자본주의 논리가 섞여 기이하게 비틀어져 있어서 기득권의 재생산에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어떤 결핍을 가진 미성년이 그걸 채울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안 올 확률이 높다. 거의 100%라고 본다.
엘리트 코스를 밟고 적당한 가난과 적당한 고생을 계급장처럼 달고 안정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다루기엔 너무 거친 일상을 살고 있는 미성년자들에게 극복한 인생을 사는 사회인들이 다가갈 수 있는 확률은 너무 낮다. 어려움이라곤 겪어본 적도 없을 것 같은 어른의 언어는 그들의 소통 방식과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무리 '말해도 된다'라고 말해도 그들은 함구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생각엔 안전한 곳에 안착한 어른들은 그들에게 안전한 존재일 수 없기 때문에.
가난과 소외를 극복하고 다른 삶을 일궈낸 사람은 점점 적어질 테니 계급 이동이 불가능한 사회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 확고해질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도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보다 빨리 어른이 된 사람을 가르치거나 계도하려는 현상이 생긴다. 다른 계급의 사람들이 그나마 같은 공간에서 어울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의 장인 학교에서조차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선한 의도의 좋은 어른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상상한 정상성을 연기하는 청소년의 얼굴을 보며 속고 안심하는 것 말고...
오히려 오기가 있고 자기 앞가림을 하는 정신을 가꾼 청소년들일수록 더 적응을 못하고 적당한 범죄를 통해 살길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간 수업>이야말로 진짜 수업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어차피 그들은 다른 곳에서 배운다. 인간에 대해.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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