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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Apr 06. 2016

솔직함과 진실함

나의 감정이 무엇인지 나에게 물어보기

어제는 부활절이었다 내방 창문 앞의 벚꽃도 이제는 꽃을 피웠다. 다시 생명을 얻는 것의 기쁨을 진심으로 느끼려면 반드시 죽음의 고통도 알아야 한다. 늘 꽃이 만발한 인생에 개화의 감격은 없다.


함석헌 선생은 말하길 모든 경전의 상징성은 현대라는 시대 속에서 재해석되고 유연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이미 저항과 진보의 색을 잃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예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것을 허물고 다시 짓겠다고... 그는 그 시대의 깨는 인물, 문제아, 골칫거리, 불경한 자, 그리고 진실한 사람이었다.


허물어질까 봐 잃을까 봐 어리석음이나 거짓됨이 드러날까 봐 벌벌 떠는 지도자들에게 질려 어떤 조직이라는 것에 환멸을 느끼다가 이젠 관심도 없어진 나는 카잔차키스의 '유연한 해석'으로 재탄생한 <최후의 유혹>을 읽으며 생각해 본다. 적어도 이 작가는 시대 속에서의 현재였던 그들의 고통이 무엇인지 이해하고자 진심으로 고통에 직면하며 이 글을 썼겠구나...


개신교의 언어는 너무나 상투화되어 사언어화 되고 있다. '그가 찔림은...'으로 시작하는 몇 천년 된 경전의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묵상해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이었고 신이었고 가족과 친구가 있었던 존재가 우정과 사랑과 숙명과 신앙과 역사 앞에서 느꼈을 혼란과 비겁함과 두려움을 구체적이다 못해 잔인하게 허구화한 이 책은 사실보다 진실하다.



예수를 향한 막달라 여인의 분노와 절규를 읽으며 난 종교가 인간에게 신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삶의 가혹함에 대해 생각해 봤다. 신께 실망하고 상처받은 적이 있는 존재는 애증이 무엇인지 안다. 사랑하지 않고서 저렇게 미워할 수 있을까.


오로지 이해 없는 순종과 의미 없는 용서와 감정 없는 사랑의 모양에만 숙달된 예쁜 성전의 자리보다 미칠 듯이 사랑을 갈구하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바깥 자리가, 더 신과 부활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죽음도 실연도 실망도 절망도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 또는 그런 고통이 올까 봐 무서워 신께 숨어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부활과 위로와 사랑은 상투적일 수밖에 없다.




작년 오늘 썼던 글이다.


저 글을 쓰던 당시 누군가가 나에게 솔직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상처를 줬었다. 그리고 나는 상대방의 솔직함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과연 저 사람은 자신이 하는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나 있을까? 본인이 하는 말과 행의 결과가 타인에게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생각은 해 봤을까? 그리고 그가 그토록 충실하게 따르는 저 감정의 이끌림은 과연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그 이후 오랜 시간... 그동안 굳건히 믿어왔던 나의 솔직함이 과연 옳았던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누군가를 아끼는 것도 배척하는 것도 나의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면 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감정에 휘둘리고 있었다. 솔직해지는 것에 매우 용기가 필요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감정을 무시한 채 기만에 빠져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솔직함이 옳은 것은 아니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솔직함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자격미달의 감정 부림을 솔직 함이라고 믿는 경우가 많았다.



솔직하다는 것이 진실함으로 전달되려면, 투명한 자기인식이 필요하다. 감정에 휘둘려 나풀거리는 것과 감정을 끌어안고 묵중히 전달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감정은 무척 소중하지만 존재를 망칠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감정 리터러시'를 갖추지 않고 표현하는 솔직함은 치명적인 흉기가 될 수 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를 쓴 페터 비에리는 <자기 결정>에서 우리가 자기 인식을 명확히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한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는가. 무엇을 증오하는가. 왜 사랑하고 왜 증오하는가 자꾸만 물어봐야 한다. 눈앞에 아름다운 꽃을 보고 행복해하기 보단 같이 볼 남자친구가 없다며 슬퍼하는 '타자 인식'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 자기인식 없이 자기결정적 삶은 없다.


쓰기 힘들고 다루기 힘들어 얼렁뚱땅 덮어버렸던 의문들을 이제 가만히 들여다볼 때가 된 것 같다.



다시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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