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나야 뽈라냐에서

인문학 기행 - 2018년 여름, 톨스토이의 작품 속으로...

by 물들래

2018년 여름, 톨스토이 문학기행을 떠나기 14년 전, 2004년 겨울이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렸던 <톨스토이 展 - 살아있는 톨스토이를 만난다>에 다녀온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 전시는 한ㆍ러 수교 120주년, 한인 이주 14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기획전이었다. 전시가 특별했던 것은 톨스토이의 친필 원고가 처음으로 러시아를 떠나 서울에서 일반인들에게 공개됐다는 점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리야 레핀의 회화, 에디슨이 선물한 축음기, 육성 테이프 등 국보급 유물 600여 점이 공개되어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를 중심으로 그가 누렸던 19세기 러시아의 문학·예술·교육적인 면을 밀도 있게 다루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었다. 워낙 크게 기획한 전시라 둘러보는데도 서너 시간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2018년 여름, 러시아에서 가져온 전시물로 만나는 것이 아닌, 톨스토이의 작품을 잉태한 바로 그 현장에서 생생한 감동을 경험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2백여 km 떨어진 레프 톨스토이의 영지 툴라주(州)에 있는 야스나야 뽈라냐 입구에 섰을 때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까. 왠지 톨스토이보다 레빈의 환영을 받는 느낌이었다. 영지 입구의 커다란 호수를 지나 저택으로 향하는 자작나무 길과 사과나무밭을 가로지르는 동안 레빈이 곁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책 속에 언급했던 생동감 넘치는 자연 풍광이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리라.


푸른 생명체들이 발동하는 8월의 초록 숲에서 맞닥뜨린 영지는 『안나 카레니나』 작품 속 레빈의 공간으로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하늘까지 녹색으로 물들여 버릴 듯 초록의 정수 한가운데 서 있던 순간 전신이 전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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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 야스나야 뽈라냐 영지에서...


먼 들판에 한 무리의 농부들이 모여있었다. 무리 속에 낫을 들고 있는 건장한 레빈, 땀 흘리며 농부들과 함께 조화를 이룬 그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해마다 이백만 섬을 수확하는 농지를 세습받은 제정 러시아의 귀족이었지만 간소한 농부의 삶을 실천한 세기의 문호 톨스토이는 곧 레빈이었으니까.


드디어 아담한 에메랄드빛 저택과 마주했다. 감격의 순간이다. 바로 이곳에서 전 세계 독자를 웃고 울게 한 작품, 절망하고 희망을 다시 찾게 했던 명작 『안나 카레니나』가 탄생했다니. 저택 박물관으로 개방된 1층과 2층을 둘러볼 때의 가슴 벅찬 순간이 지금껏 선명하다.


저택 박물관에는 톨스토이가 읽었다는 2만 권에 달하는 책과 집필실, 침실, 식당 등을 만나볼 수 있었다. 2층 식당에는 위풍당당한 그랜드피아노와 함께 벽면 가득 당대 화가들이 그린 가족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식당 옆 작은방은 타치아나 아주머니가 머물렀던 곳이다. 모친을 일찍 여읜 톨스토이 형제들을 어머니처럼 정성껏 길러준 친척이었다. 방에는 오래된 소파가 있었는데 모친이 톨스토이와 형제들을 출산했던 곳이라고 했다. 잠시 소파의 역사를 어림잡으며 시공을 거슬러 19세기 말로 되돌아가 보았다. 어린 형제들과 함께 계단을 오르내리며 재잘거렸을 톨스토이 형제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기념관이 잘 보존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1층에는 톨스토이가 직접 사냥했다는 사슴의 뿔이 걸려 있었다. 백작이었고 부자였던 톨스토이 저택은 의외로 아담했고 따뜻한 분위기였다. 공간을 둘러보면서 레빈의 발자취를 좇는 기분이었다. 이곳에서 생활했던 톨스토이가 곧 레빈이요, 레빈이 곧 톨스토이지 않은가.


집필실에서 순간 생기 있는 시선으로 변했다. 책상 바로 옆 바닥에 가지런히 놓인 아령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레빈이 신체 단련을 위해 수시로 사용했던 바로 그 아령이지 않겠는가? 두 개의 육중한 아령으로 운동하듯 위아래로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며 기운을 북돋우려 애쓰던 레빈과 톨스토이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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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 야스나야 뽈라냐 톨스토이 영지 저택박물관


집필실 앞으로 오가는 키티와 레빈의 모습에서 젊은 시절, 톨스토이 부부를 연상하면서 아장아장 걷고 있는 그들의 2세 모습을 그려보았다.


대다수 남성과는 다르게 가정을 선사해 줄 여성과의 결혼을 배제하고서는 여성에 대한 사랑을 생각할 수 없었던 레빈은 키티에게 청혼하지만 거절당한다. 결혼은 레빈에게 평생의 행복이 걸린 중요한 사건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레빈은 과거에 묶이지 않은 채 전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되라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어느 것도 소홀하지 않겠다던 레빈의 다짐을 집필실에서 느꼈다.


많은 이들이 극찬한 책을 나는 이순 언저리에 읽었다.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를 이해한다는 그 나이에 톨스토이 문학기행을 앞두고 있었고, 톨스토이를 좀 더 진하게 만나고 싶어서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문학기행이 아니었다면 이 책과의 만남은 더 늦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톨스토이를 만나길 정말 잘했다.


1,500쪽에 달하는 『안나 카레니나』의 독자라면, 톨스토이의 작중 인물 창조 능력에 놀랄 테고, 작품 속 인물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애증 하다가, 분노하다가, 답답하다가, 안쓰럽다가, 처절하다가, 급기야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눈길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구체적이고도 섬세한 심리묘사, 휘황찬란한 사교계의 파티 의상을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또한 사냥 이야기나 정치, 토지, 농법, 농노 관련 이야기에 깊숙하게 들어가면 지루한 감이 있었지만, 레빈의 자취를 쫓는 것은 유익했다.


레빈이란 인물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끊임없이 자문자답하며 인생을 성찰해 나간다는 점이었다. 캔버스에 톨스토이를 많이 그린 화가 일리야 레핀의 <쟁기질하는 톨스토이> <야스나야 폴랴나의 아치 천장 방에 있는 레오 톨스토이>와 같은 그림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어서 톨스토이와 레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톨스토이를 읽는다는 것은 작품 속 인물들을 사랑하고 공감하며 이해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 톨스토이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알게 된 것들이라고 했다. 그는 가족은 물론 영지에서 일하는 일꾼들과 식솔들, 그리고 수많은 작품 속 인물들까지 그의 애정과 관심이 서려 있다. 냉혹하게 밀어내다가도 연민의 눈길을 던지며 인정을 베풀고 어루만져주는 느낌이었다.


책 속 등장인물 속에서 우리는 내면 깊숙이 숨어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된다. 드러내고 싶은 부분, 감추고 싶은 부분, 은근히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는 부분, 내 안의 분노와 불안, 억누르며 살고 있지만 은밀히 쌓여있는 폭력적인 면모, 누군가를 향한 설렘, 거절당했을 때의 참담함, 그런데도 다시 용기 낼 수 있는 내적 자원을 발견할 수 있다. 작중 인물을 통해 자신과 독대하는 순간을 맞닥뜨릴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게 바로 책을 가까이하는 이유며, 인문학의 힘이다. 톨스토이의 작품에서 만난 인물 중 일부는 나였고 너였으며 그였고 우리였다. 그래서일까. 『안나 카레니나』 속 인물들에게 빠져들었다. 지주 귀족 출신 레빈과 러시아 귀족의 전형 안나의 상반되는 삶과 그 주변 인물은 시대를 초월해서 21세기 독자들의 공감대까지 이끌어냈다.

톨스토이는 1870년 42세에 『안나 카레니나』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1872년 1월, 야스나야 뽈랴나 인근 기차역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기차에 몸을 던진 '안나 피고로바'라는 상류층 여인이 죽는 사건이 모티프가 되어 『안나 카레니나』 구상에 힘을 싣는다. 그 여인은 톨스토이의 이웃 영주의 내연녀로 톨스토이도 그녀를 알고 있던 터였다.


1873년 집필 시작하여 1875년 『러시아 통보』에 『안나 카레니나』 연재했다. 톨스토이를 떠올리면 목가적, 기독교적인 분위기가 연상되나『안나 카레니나』는 세속적이고 대중적인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 독자도 있었다. 그런데도 집필을 끝낸 1877년 『러시아 통보』 발행인과의 의견 충돌로 인해 제8부 수록을 거부하여 줄거리만 해당 잡지에 요약 발표했다.


다음 해인 1878년 50세에 드디어 직접 수정 작업을 마친 뒤 제8부와 함께 장편소설 『안나 카레니나』 단행본이 출판됐다. 대작이 탄생하기까지 무려 8년이 걸린 셈이다.


많은 이가 그렇겠지만 나 역시 『안나 카레니나』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제8부라고 생각한다. 안나가 철길에 뛰어들어 자살한 뒤,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계속 이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제8부가 없었다면 『안나 카레니나』는 오늘날까지 열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우여곡절 속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으면서도 계속 살아가야 할 이유를 제8부는 알려준다. 영화로만 『안나 카레니나』를 기억하는 사람에겐 안나의 죽음 뒤에 레빈과 키티의 삶, 까레닌과 브론스끼의 삶, 곧 우리 모두의 삶이 멈추지 않고 어떻게 계속 이어지는지를 만나게 된다. 과장하거나 서두르지 않은 채 그게 삶이라는 듯이 알려준다. 혹시 안나가 떠난 뒤 남은 자들의 삶이 궁금하다면 제8부를 읽어보라. 그러고 나면 자연스레 제1부부터 정독하게 될 테니까.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아서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 뚜벅뚜벅 걷는 것, 다시 불안과 좌절이 다가오고, 힘겨운 싸움 앞에 맞서고, 과정을 이겨낸 후 성취감을 맛보고, 다시 다가오는 허탈함을 감당하면서 살아나갈 것이다. 결국 산 자는 계속 살아지게 마련이다. 각자의 삶에 저마다의 의미를 불어넣으며 사는 게 우리네 인생임을 제8부는 담담하게 보여준다.


레닌은 ‘톨스토이가 쓰기 전까지는 러시아 문학에 진정한 농부가 없었다'라고 했다. 그만큼 톨스토이는 농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작품에 드러냈고 표현했다. 문득 궁금했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톨스토이가 사랑했던 인물은 누구였을까? 미루어 짐작하건대 작가의 분신인 레빈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라던 작가는 레빈에게 어떤 사랑을 부여했을까. 어쩌면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연민하면서도 증오하지 않을까?


인간의 내면에 얽히고설킨 거미줄 같은 감정의 실타래를 활자로 풀어낸 그의 문체 앞에서 쏟아지는 탄성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작가는 무수한 등장인물을 통해 인간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작품 속 여러 인물을 통해 내 안의 감정과 맞닥뜨릴 때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어쩌면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연민하면서도 증오하지 않을까? 동전의 양면을 모든 인간은 품고 있으니까.


『안나 카레니나』는 너무나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상권, 11쪽


그에 비해 덜 알려진 마지막 단락은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첫 문장을 다시 설명하는 느낌이다.

하권, 671~672쪽에서 작가는 여전히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기도하는 모습, 삶 속에 의미를 불어넣으며 엇비슷하게 닮은 행복과 제각각 다른 이유로 불행한 게 우리네 인생이라고 무심한 듯 다감하게 말해준다. 어떤 의미로 이해할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농지를 세습받은 제정 러시아의 귀족이었음에도 농부처럼 간소한 삶을 실천한 세기의 문호 톨스토이는, 인생의 해넘이 나이 여든두 살의 노구를 이끌고 아내 몰래 유랑 길에 올랐다. 그러나 유랑 10일 만에 아스타포보역에서 급성 폐렴으로 객사 후, 영지 숲으로 돌아와 영원히 안장됐다.


1828년 태어난 곳에 1910년 묻힌 톨스토이 생애 82년, 시간 대부분을 보낸 야스나야 뽈라냐로 돌아온 작가의 유해는 찬란한 햇빛이 쏟아지던 숲 속 사각형 잔디 묘에 누워있었다. 묘비는 없었지만 말할 수 없이 평화롭던 2018년 초록 여름 풍경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 속에 모든 것을 썼기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브론스키를 사랑하게 되면서 불행해진 여인 안나 카레니나의 이야기로 알려진 소설이지만 무수히 많은 이들의 이야기이다. 작품 속에서 나의 이야기가 여러 부분에서 중첩되곤 했으니까. 나뿐이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은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안나 카레니나』를 인생의 책으로 언급한 독자들 역시 『안나 카레니나』에서 많은 물음표 앞에 섰을 것이다. 자문자답의 시간이 길수록 작품은 우리 기억 속에 오래 남게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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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야스나야 뽈라냐 영지 톨스토이 잔디묘 촬영 (우)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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