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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들래 Jan 01. 2024

살롱 드 경성

한국 근대사를 수놓은 천재 화가들의 이야기

몇 년 전이었던가? 덕수궁미술관에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였나. 그때 전시회를 둘러보며 가슴 벅차올랐던 환희를 어떻게 표현할까. 이렇게 감동적이고 취향 저격하는 미술전도 있구나. 이 전시회를 기획한 자의 아이디어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동일한 전시를 세 차례씩 보기 위해서 덕수궁미술관으로 향했고 이런 전시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었다.


그러다가 지난 12월이었나? 아니면 11월이었나? KBS 신윤주의 <문화 공감>이란 라디오방송을 듣다가 <살롱 드 경성>이란 책을 소개받았다. 작가 김인혜가 직접 나와서 책 내용을 소개하는 동안 곧바로 책을 검색했고, 며칠 이후 책과 마주했다. 이 책이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됐다.


미술관 산책이 취미인 나였는데... 그래도 미술 관련 대화에는 어느 정도 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는 동안 생소한 작가들을 너무 많이 만났다.  더구나 그들의 삶의 스토리는 실로 놀라울 만큼 드라마틱했다. 1910년대 태어나서 활동한 작가들의 공부한 곳, 모인 곳, 느끼고 토론하고, 작업한 곳이 중첩되거나 연관성 있었다. 


일단 책의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화가와 시인의 우정을 다룬 1장, 화가와 그의 아내를 다룬 2장, 화가와 그의 시대를 다룬 3장, 그리고 예술가로 살아갈 운명을 다룬 4장까지 재미있게 읽혔고, 이미 알고 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복습하는 마음으로, 생소한 작가들의 처음 알게 된 이야기들이 많은 부분에서는 정독하면서 작품을 직접 하나하나 찾아가며 읽곤 했다. 기록해 두지 않으면 금방 잊힐 듯싶어 메모 차원에서 내 식대로 내가 기억하기 쉽고 읽기 쉽게 정리해 두기로 했다. 정리하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제대로 미술 공부한 셈이다. 김인혜의 다음 책을 기다리며.


아래는 책 속 기억하고 싶은 부분을 내 식대로 기록해 본 내용이다.


*

김광균은 실제로 시를 그림처럼 썼다. 곁에 서양 화집을 끼고 살았고, 그림을 무척 좋아해 늘 화가들과 어울렸다. "1930년대 시는 음악이라기보다 회화이고자 했다."라고 그는 말했다. 시는 운율과 리듬이 있는 음악인 것이 자연스러운데, 김광균은 시가 '회화'이기를 의식적으로 추구했다. 

*

무엇보다 김향안의 대단한 점은 예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신념이었다. 그녀는 먼저 세상을 떠난 두 남편에게 보낸 진심 어린 신뢰만큼이나, 이들이 생산한 예술의 가치를 확신했다. 그 확신이야말로 김향안으로 하여금 과감한 결단과 끊임없는 도전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어떤 점에서 김향안은 세상이 예술가를 알아주지 않던 시대를 살아낸, 누구보다 선구적이고 용감한 예술 후원가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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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도 빛이 있다

"어떠한 추악함이나 증오 속에서도 미를 향해 나가는 흐름이 있을 때 비로소 회화 세계는 존재한다"는 것이 오지호의 굳은 신념이었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어떤 고난이 와도 삶은 총체적으로는 "환희"이다. 그리고 예술은 그 환희를 표현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인간 삶의 영역에서도 예술에서도, "그늘에도 빛이 있다"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지호가 작고하기 1년 전인 1981년에 그린 작품 <꽃_델피니움>이다. 싱싱하게 자란 꽃이 햇빛에 부서질 듯 환하게 빛나고 있다.


자연을 경외한 나머지 지나친 문명이 발달을 싫어해서, 버스는 탈지언정 택시 타기를 꺼려했던 그가 하필이면 택시를 타게 된 날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1982년 타계했다 결국은 문명이 그를 죽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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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디올러스와 석류는 알아볼 수 있는 대상이지만, 화가가 강조한 것은 결코 아름답다고만은 할 수 없는 처절한 느낌 자체이다. 꽃과 과일의 붉은색은 강렬하지만 피처럼 끔찍해 보이기도 한다. 김병기는 어느 한쪽으로도 단정 지을 수 없는 경계의 미학을 추구했다.


김병기는 잭슨 폴록의 말을 인용하기를 좋아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기 전에 나는 내가 무슨 그림을 그릴지 알지 못한다." 우리도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 않나. 다만 그런 불확실성을 안고서도, 하루하루 용기를 내어 도전할 뿐! 그것이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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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의 죽음을 예상한 조카 허명회는 권진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술을 전공할 생각도 있었으나  "미술보다 아름다운 학문"이라고 생각한 수학의 세계 빠졌다. 그는 고학으로 스탠퍼드대학교를 나와 한국 통계학 분야에 선구적 업적을 남긴 학자가 되었다.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한 그의 아들 허준이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허준이는 수학을 공부하는 원동력이 "아름다움의 추구"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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