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호두'에서 '치리오'로...

by 물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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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기 직전, 전 생애가 짧은 순간 떠오른다죠. 우리 강아지들 역시 지난날을 기억한답니다. 사람들과 다른 게 있다면 살아온 순서대로가 아니라 행복한 기억들 순서대로 떠올린다는 거죠. 물론 속상하고 힘든 기억들도 있어요. 그런 기억도 있지만 행복한 기억을 이기지는 못하죠.


니를 새벽녘까지 간호하다 지친 엄마는 소파에서 내가 떠나기 이십 분 전 깜빡 잠이 들었어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떠나는 슬픈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 대신 가족과 함께 했던 추억들을 떠올리며 평화롭게 눈을 감았습니다.


나는 “호두”라는 이름으로 분양된 수컷 토이푸들이죠. 늘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던 승아 누나와 승현 형은 사진을 보고 첫눈에 반해 분양 결정을 내렸다고 해요. 처음 만나던 날 생각보다 훨씬 작은 나를 보고는 걷다가 밟을까 봐 걱정하던 가족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라요. 처음 가족과 만났을 때는 정말 손바닥만 한 갈색 털 뭉치 같았거든요.


'호두'라는 이름 대신 새로운 이름이 생겼어요. 승아 누나와 승현 형아가 지어준 이름이죠. 치리오라는 시리얼이 있는데 동글동글한 모습이 나랑 닮았다며 '치리오'라고 부를 거라고 했어요. 가족들은 가끔 바쁘거나 화가 났을 때 내 이름을 줄여서 "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울 때도 "치! 치! 치!" 하곤 하죠.


치리오(cheerio)라는 이름은 영어로는 '안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요, 이탈리아 식품 회사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내 삶과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가족과 처음 만났을 때도 '안녕'했고요, 떠날 때도 마음속으로 '안녕'하고 인사했죠. 누나와 형아가 이름을 정말 잘 지었죠? 동글동글한 덕택에 예쁜 이름으로 15년 1개월 동안 행복한 견생이었습니다. 이제 수없이 치리오 이름을 불러 준 가족들과 함께 했던 추억을 선물로 남기고 떠납니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승아 누나 승현 형 고마워요, 치리오에게 준 사랑과 관심 잊지 않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