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변 훈련

치리오도 항상 고마워하고 있답니다.

by 물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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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인데도 치리오는 실수를 자주 합니다. 워낙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거든요. 가족이 집에 있으면 패드 위에서 용변 보는 게 어려워요. 가족 모두 외출했을 때나 한밤중 모두가 잠들었을 경우에만 볼일을 보죠.

생후 12주가 지나자 용변훈련이 시작됐습니다. 가족들이 타이밍 조절해서 용변 패드로 유인하여 훈련시켰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한테 칭찬받고 싶어서, 아니 맛난 간식으로 보상받고 싶어서 배변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게 맘대로 안되니 정말 속상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킁킁거리고 빙글빙글 도는 내 행동을 알아챈 엄만 편하게 배변하라고 일부러 주방으로 자리를 피해 줍니다. 어떻게 해서든 성공하고 싶었지만 꽉 들어찬 똥과 오줌이란 놈이 안 나오는 겁니다. 미치겠더라고요. 결국 엄마와 집 앞 짧은 산책을 나가서 봤다는 걸 숨기지는 않을게요. 엄마한테 너무 미안했어요.


엄만 일상의 모든 경험이 공부라고 하죠. 배변훈련도 공부라는데 아무리 시도해도 인기척 있는 곳에서는 볼일을 볼 수가 없어요. 누가 치를 쳐다보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가족들도 부끄럼 타는 성격을 알고 용변기 쪽으로 가면 자연스럽게 모른 척해주는데도 말이죠. 졸래졸래 거실로 오면 형아가 제일 먼저 용변기 쪽으로 가서 확인하죠. 그러다가 곧,


-- 치!


하고 부르죠. 그때 기분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힘들게 참지 말고 집 밖에서 볼일 보자는 형아의 신호거든요. 다만 고마울 뿐이죠. 산책 가자며 부르는 소리와 단지 용변을 보게 할 목적으로 부르는 소리는 확실히 다르거든요. 그래도 오줌주머니가 꽉 찬 상태여서 빠르게 달려가기가 힘들어요. 너무 급하게 뛰다가 거실 바닥에 몇 방울 실수한 적이 있거든요. 그 뒤로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마음을 가족들이 알까요. 용변 문제로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은데 그게 제 능력 밖이라서요.


매일 아침이면 가족 모두 각자가 있어야 할 곳으로 떠납니다. 마지막으로 엄마가 나가면 그때부터 치리오의 루틴이 시작되죠. 일단은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엄마와 아빠 방은 모든 게 정돈되어 있어요. 이 방에는 언제나 엄마가 아끼는 연둣빛 둥근 병에 담긴 꽃향기 나는 향수 냄새가 났어요. 치리오도 그 향기를 좋아해요. 가끔 엄마 품에 안겨도 그 냄새를 맡을 수 있죠.


누나방은 언제나 어지러워요. 침대에 마구 올려놓은 잠옷과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책과 학용품들, 쓰레기통 바로 옆에 떨어진 휴지 조각들, 엄마에게 야단맞아도 정리 정돈하지 않는 누나가 답답할 뿐입니다. 나라도 정리해주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엄마한테 야단맞을 게 뻔하죠. 자기 방은 스스로 정돈해야 한다는 게 엄마의 교육철학이니까요.


형아 방으로 가볼까요? 형아는 그래도 기본 이상은 합니다. 어지러트리진 않거든요. 그런데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형아방에서는 좀 이상한 냄새가 났어요. 사춘기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겠죠. 초등학생 때 밖에서 뛰어놀다 들어왔을 때 나던 땀냄새랑은 달랐어요. 치리오가 한 '개코'하거든요.


얼마 전부터 누나도 치리오를 안고서는 냄새가 좀 달라졌다고 했지만 그건 목욕할 때가 돼서 그런 거랍니다. 누나는 요새 학교 생활이 너무 바쁜 것 같아요. 치리오랑 눈 맞추는 걸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눈빛 맞춘 게 열흘은 넘었을 걸요. 이번 주말엔 치리오와 눈빛 교환도 하고 산책도 길게 시켜주었으면 좋겠어요.


사람 나이로 치면 다섯 살인 치리오는 벌써 중년을 살고 있는 셈입니다. 세네 살 때와는 다르게 활동량이 약간 줄어든 걸 아빠는 벌써 눈치를 챘더라고요. 문득 아빠의 중년시절은 어땠을까 궁금했어요. 상상이 잘 안 됐지만 왠지 조용했을 거 같았어요. 치리오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서 아빠의 애정이 느껴졌어요. 아빠는 가족과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가족에는 언제나 치리오가 함께였다는 걸 알기에 아빠의 손길이 더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이제 주방으로 가봅니다. 아침에 먹던 치킨샐러드 냄새가 아직도 나는 것 같았어요. 살짝 데쳐서 구운 닭고기 냄새를 형아만큼 치도 좋아한답니다. 오늘 아침식사로 삶은 당근과 구운 닭고기 몇 조각을 우유와 함께 먹었어요. 엄마는 식사를 하기 전 언제나 치리오 밥그릇을 먼저 신경 써서 채워줍니다. 치리오가 별다른 병 없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엄마의 정성 덕이라는 걸 가족 모두 알고 있어요. 치리오도 항상 고마워하고 있답니다.


집안을 둘러보고 나니 '끄윽'하고 트림이 나오네요. 이제야 아침 식사한 게 소화되나 봅니다. 오줌 마렵다는 신호뿐 아니라 큰 거까지 나올 기미가 보이네요. 텅 빈 집에서 용변 보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죠. 화장실 옆에 준비되어 있는 용변패드에 배설하고 나니 시원해졌어요. 주특기인 스트레칭을 몇 차례 합니다. 적당히 운동도 했으니 이제 포근한 요람으로 가서 승아누나가 선물해 준 판다와 함께 놀다가 낮잠 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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