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주말엔 가족 영화를 함께 보곤 해요. 승아 누나와 승현 형아도 이 시간을 좋아하지만 어쩌면 치리오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일 거예요. 가족이 모두 모이는 시간이니까요. 주중에는 함께 모이기 쉽지 않거든요. 영화를 보기 전에 누나는 엄마를 도와서 사과를 깎았어요. 형아는 새우깡과 땅콩을 그릇에 옮기고 엄마와 아빠가 좋아하는 맥주와 누나와 형아가 마실 음료수를 거실 테이블에 준비했어요. 치리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죠. 나를 위해 작게 잘라준 사과를 먹는 것도 좋지만 새우깡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짭짤한 게 강아지한테 안 좋다며 거의 안 줬어요. 사과 먹을 때 한두 번 작게 잘라서 준 게 다였으니까요. 몸에 안 좋다는 건 왜 더 맛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함께 영화를 본다는 건 가족 모두와 스킨십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함께 본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입니다. 엄마 아빠가 무척 좋아하는 아주 오래전에 만든 영화였어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촬영했다는데 영화 속 풍경이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형아가 영화 보는 중에 치리오의 최애 간식을 챙겨줬어요. 페페로니 오메가쓰리 함유 소고기 간식인데 보통 두세 개를 줍니다. 그런데 이날은 형아가 영화에 너무 빠져 있었기 때문일까요. 맛난 간식을 다섯 개나 먹었어요. 기분이 엄청 좋았습니다. 그때 마침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란 신나는 노래가 나오더라고요. 꼭 치리오 기분을 아는 것처럼요. 천둥 치는 밤에 아이들이 말괄량이 수녀 마리아의 방에 모여서 함께 부르는 노랜데요.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명장면이었어요. 뮤지컬 영화라 누나와 형아는 아는 노래가 나올 때마다 따라 불렀습니다. 특히 '도레미송'을 얼마나 잘 부르던지요. 치리오는 영화보다 누나와 형아 노랫소리에 흠뻑 빠져들었답니다.
가족 모두 영화에 깊이 빠져있을 때 '에델바이스'라는 노래가 나왔어요. 엄마와 아빠는 예전 데이트할 때 이 영화를 봤다고 했어요. 아빠는 노래하는 걸 좋아했어요. 목소리가 정말 멋지거든요. 분명 노래도 잘 부를 거예요. 에델바이스 부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런데 상영시간이 세 시간이 넘다니 너무 긴 거 아닌가요. 영화 관람 중에 형아가 지루해하는 치리오랑 중간중간 놀아줬어요. 내 상태를 잘 파악하는 형아가 고마웠어요. 세 시간 동안 누나는 치리오란 존재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았어요. 영화 화면 속으로 들어갈 것 같더라니까요. 뭐든 시작하면 집중력이 뛰어난 누나는 그래서 공부도 잘하는 것 같아요.
영화 관람을 마치고 엄마가 진짜 에델바이스를 보러 가자고 했어요. 북한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를 식물원이 있는데 이맘때 에델바이스를 구경할 수 있다면서요.
-- 치리오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곳이야.
영화 관람도 즐거웠는데 현장학습까지 간다고요? 그것도 치리오와 함께요, 뛸 듯이 기뻤어요. 가족과 함께라면 어느 곳이든 신나죠. 누나와 형아는 오며 가며 에델바이스 노래를 흥얼거렸어요. 청력이 좋은 치리오는 가족들이 부르는 에델바이스란 노래가 정말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치리오도 가족을 따라 조금씩 불렀지만 누구도 내가 부른 노래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그나마 엄마가 살짝 눈치챈 거 같더라고요. 제 볼에 뺨을 비비는 엄마의 표정은 꼭 내 노랫소리를 들은 것 같았어요. 눈빛과 허밍으로 불렀는데도 엄마는 눈치챈 거예요. 내 목덜미를 어루만지는 엄마의 손끝에서 치리오를 사랑하는 느낌이 담뿍 전해졌어요.
드디어 휴일 아침, 기분 좋게 아름 식물원에 도착했어요. 누나랑 형아가 에델바이스 사진을 크게 확대해서 보여줬어요. 사진으로 직접 보니까 에델바이스 꽃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꼭 찾아서 가족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어요. 가족 모두가 흩어져서 에델바이스를 찾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돌아다녔을까요? 거의 반시간이 지난 상태에서 누군가,
-- 에델바이스다!
라고 외쳤어요. 누구였냐고요? 내 예상대로 발 빠른 형아였어요. 형아가 외치는 쪽으로 가족들 모두 달려갔어요.
그런데 거의 지고 몇 송이뿐이었죠. 그것도 잘 관찰해야 발견할 수 있더라고요. 우리 말로는 '솜다리 꽃'이라고 한다나요? 한창 제철일 때는 그 흰빛이 더 밝게 빛났겠죠.
치리오는 알고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트랩 대령이 불렀던 '에델바이스'가 이제 곧 들려올 거라는 걸요.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제일 먼저 누나가 노래를 시작했어요.
--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형아가 따라 불렀어요.
-- 에브리 모닝 유 그릿트 미
엄마와 아빠까지 부르자 멋진 합창곡이 되었어요.
영화 속에서는 아빠였던 트랩 대령이 가장 먼저 노래를 불렀는데 우리 집은 가장 뒤에 아빠가 불렀죠. 작고 하얀, 깨끗하고 밝은 에델바이스를 볼 수 있어서 치리오도 정말 행복했어요. 에델바이스도 예쁘지만 솜다리 꽃이 더 마음에 들었어요.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어요.
우리 가족은 내가 뭐가 궁금한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난 눈으로 말하고 눈으로 대답하지만 내 눈빛으로 하는 말을 어떻게 아는지 신기할 정도랍니다. 치리오도 가족들이 뭘 말하고 싶어 하는지 눈빛을 보고 대부분 느낄 수 있어요. 이번에도 역시 내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형아가 나를 안고 에델바이스 가까이 데려갔어요. 정말 노랫말처럼 작고 하얬죠. 깨끗하고 밝은 색이었고요. 에델바이스 꽃 앞에 바짝 다가가서 형아가 가리킨 꽃을 바라봤어요. 형아는 검지로 내 코를 두 번 살짝 건드리며 말했어요.
-- 치리오 바로 이게 에델바이스야.
에델바이스를 직접 보고, 가족들 합창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더 즐거웠던 것은 푸른 잔디밭에서 마음껏 뛰어놀았던 거예요. 얼마나 신났는지 몰라요. 온 세상이 다 녹색이더라고요. 나리꽃과 수국도 활짝 피어있었어요. 가족이 있는 집도 좋지만 이런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일 아침, 푸르고 예쁜 산책로를 마음껏 돌아다니고 싶거든요. 엄마와 아빠는 흐뭇한 표정으로 힘차게 달리는 치리오를 향해 말했어요.
-- 치리오, 토끼 같아. 아니 치리오, 고라니 같아. 뛰는 모습이 너무 멋지네.
날씨는 무더웠지만 가족과 함께라면 어떤 날씨라도 상관없어요. 혀를 내밀고 열을 식혀야 할 때 마침 소나기가 쏟아져서 잠시 쉴 수 있었죠. 그러다가 언제 비가 내렸나 싶게 사정없이 해가 쏟아졌고 잔디밭은 달리기 적당하게 촉촉해졌어요.
오늘처럼 우리 가족만 있는 식물원 잔디에서는 사이줄을 풀어주죠. 자유롭게 뛰어놀라고요. 완전 내 세상을 만난 기분이었어요. 누나와 형과 달리는 시간은 언제나 최고로 행복한 순간으로 꼽을 수 있죠. 아를 식물원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오래도록 기억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