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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날씨 Jul 29. 2019

운전면허 취득기 0

셔틀버스

학원은 셔틀버스 노선을 잘 갖춰놓고 있었다. 이런 서비스 비용까지 수강료에 포함된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근방에 사는 모든 사람을 데리고 오겠다는 듯 촘촘히 짜인 셔틀 노선을 보고 감탄해버렸다. 우리 집 근처를 지나는 건 두 개의 노선이 있었는데 학원에 갈 때는 5호 차, 집으로 올 때는 11호 차가 좋았다. 그러나 한 시간에 한두 번 운행되는 셔틀 시간과 학원 교육 시간대가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아서 사실상 갈 때와 올 때 모두 셔틀을 타기는 어려웠다. 오전에 셔틀을 타고 가서 교육을 받고 나면 한 시간을 기다려 셔틀을 타야 했기 때문에 차라리 시내버스를 타고 조금 더 번거롭게 돌아오는 편이 나았고, 오후에 교육을 받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쉽기는 하지만 셔틀버스 기사의 출퇴근 시간, 점심시간을 맞추기 위한 시간표니 감수해야 한다고 여겼다. 학원에서 차 대수와 기사 수를 늘리지 않는 한 이렇게 해야겠지. 여기는 노동환경이 잘, 아니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대로 갖추어져 있구나 안심이 됐다. 


나는 주로 오전 시간 교육을 신청했다. 10시 차를 타면 10시 40분 교육에 여유 있게 도착했다. 갈 때 혹은 올 때 한 번만 셔틀을 탈 수 있다면 갈 때를 선택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시간 맞춰 도착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으니 시내버스를 기다려도 초조하지 않고, 버스가 정류장에 오래 서 있어도 답답하지 않으니까. 교육 날짜가 정해지면 미리 웹사이트에서 예약을 했다. 집에서 9시 50분에 나가 셔틀 타는 곳으로 걸어갈 때면 완연한 여름이어도 아침이라 간혹 쌀랑한 바람이 불어왔다. 에어컨이 켜진 실내에서 걸치기 위해 갖고 다니는 겉옷을 가방에서 꺼내 입고 걸어가는 날이 많았다. 항상 남들보다 추위를 심하게 느끼기 때문에 내가 춥다고 에어컨을 끄자고 말할 수 없다. 내가 느끼는 걸 다른 사람들도 느낀다고 확신할 수 없는 것. 나는 대중이나 대세와 거리가 먼 사람이고 그렇기에 개인적인 불편함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는 편이다. 나를 위해 환경을 변화시키길 요구하지 못한다. 몸의 감각뿐만 아니라 의견이나 가치에서도 그렇다. 그게 겸손을 가장한 오만과 얼마나 거리가 먼 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호차라고 해서 운행하는 기사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었다. 첫날에는 운전의 정석이라 할 수 있는 솜씨를 가진 기사를 만나서 역시 운전을 가르치는 학원의 셔틀 기사는 다르구나 싶었지만 그게 잘못된 일반화라는 건 곧 밝혀졌다. 물론 다른 기사들의 난폭운전이 있던 건 아니다. 급정거, 급출발, 급회전, 엑셀과 브레이크에 발을 쉼 없이 댔다 뗐다 하기 등, 시내버스와 택시의 여러 난폭운전 스타일을 오래 겪어온 서울시민으로서 느끼기에 대부분 양호한 수준의 운전이었다. 처음 만난 기사가 워낙 부드럽고 우아한 운전 실력을 가졌을 뿐.


셔틀에는 주로 두세 명, 많으면 네다섯 명까지 탔다. 나는 거의 마지막 정류장에서 타는 편이었고 거기부터 학원까지는 15분 남짓 걸렸다. 사람들은 휴대폰을 보기도 하고 학원에서 나눠준 종이를 보며 공부하기도 했다. 무슨 종이인지는 잠시 궁금했고 알려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얼마 안 가 나의 과제가 될 테니까. 대체로 현재보다는 과거의 후회나 불투명한 미래에 사로잡혀있는 편이나 미래가 정해져 있을 때만큼은 놀랍도록 현재에 충실해지는 게 나의 장점. 수업에 늦어서 미칠 듯이 조급한 마음으로 숨차게 뛰다가도 역에 도착하기만 하면 더이상 지하철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급격하게 평안함을 되찾는 것처럼. 얼마간의 체념을 디딘 평안이지만 어쨌든 평안은 평안이니까. 학원에 늦을 거라는 불안 없이 셔틀 안에서 나는 평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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