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송구한데, 7년 전 나는 박근혜를 뽑았다. 그녀는 내가 투표권을 행사한 첫 대통령이었다. 부끄럽게도 2002년, 2007년에는 투표권이 있었음에도 투표를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때부터 공무원 집안이다 보니 대체로 현 정권에 우호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정치인들이 다투는 모습이 TV에 비칠 때면, 어머니는 ‘“정치인들은 맨날 싸우기나 하고 말 바꾸는 거짓말쟁이”라고 말씀하셨다. 정치인을 싸잡아 못마땅해하셨어도 선거철이 되면 어머니는 “나는 무조건 여당"이라고 하시며 1번을 찍으셨다.
코앞이 투표소인데도 투표하러 가지 않았던 내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시애틀에 살던 2012년 재외국민으로 등록을 하고, 먼 거리를 운전해 투표장으로 향했다. 투표 후 인증샷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유행이 막 태동할 때쯤이었는데, 어쩌면 나는 정치적인 관심보다는 소셜미디어에 인증샷을 올리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정치 철학이라던가 소신과 상관없이 안철수를 지지했는데 이유는 그가 ‘기업인’이라서였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당시 문재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안철수가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사퇴하자 나는 다른 익숙한 다른 이름인 박근혜에게 한 표를 행사했던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인가 싶지만, 나 같은 사람이 어디 나 하나였겠는가. 18대 대선쯤 언론은 존 나이스비트가 “메가트렌드”라는 책에서 말한 “3F” 상상력(fiction), 감성(feeling), 여성성(female)을 언급하며 21세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성 리더십"이라고 대중을 선동했고, 스타트업 꼬꼬마 대표였던 나는 “여성 리더" 프레임에 완전히 낚였다.
이후 한국에서 스타트업 대표로 활동한 3년여 동안, 나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원, 여권 대표, 현직 장관 등 정치인과 행정기관장들을 만날 기회가 잦았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통해 서른 중반이 돼서야 비로소 정치에 눈을 뜨게 되었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을 서너 번 만났다. 첫 번째 만남은 1시간 정도로 꽤 긴 시간이었는데 코엑스에서 열린 2014년 창조경제 박람회에서 스타트업 여자 대표 자격으로 대통령을 에스코트했다. 두 번째 만남은 구글 캠퍼스 서울 오프닝에서였다. 당시 대통령 및 장·차관, 구글 한국 대표 등 앞에서 나는 내가 만든 회사를 소개했다.
TV에서 보던 관리된 이미지가 아닌 실제 “인간"의 모습으로 정치인을 접하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나는 “정치”가 먼 나라의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이러한 나의 정치적 관심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최근 조국 사태를 경험하면서 정치에 대한 관심과 함께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도 곱씹어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정치인을 접하는 루트는 언론을 통해서이니 당연히 언론이 타락하면, 혹은 편향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언론을 자주 접하다 보면 우리는 당연히 그 정치 색깔에 물들게 된다.
나 자신의 사례에서도 보았듯, 지식인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 어쭙잖은 언론 편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 있다. 그러니 사회 각계층에서 보이스 리더의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언론을 선택함에 있어도 편식하지 말아야 한다.
정의를 위해 최전선에 나서서 싸우지는 못할지언정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자신을 버린 사람들의 노력을 상쇄시키는 일은 최소한 피해야 한다. 2016년 눈발 날리는 광화문 광장에 나가 수백만 명의 시민과 함께 “박근혜는 하야"를 외친 것은 정치에 무지했기에, 부끄러운 한 표를 행사한 죄책감과 부채 의식을 떨쳐내고 싶은 욕망이었다.
난생처음 광화문 집회에 나가기로 한 그날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정오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집을 나설 때쯤 되니 눈발은 점점 굵어져 눈보라처럼 몰아쳤다. 눈 때문에 평소보다 적은 인파가 몰릴까 봐 그랬는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 시민들로 인해 광화문은 이미 북새통이었다. 나는 이미 몇 번 집회에 참석해본 적이 있는 친한 스타트업 대표 언니를 만났다.
여러 가지로 집회가 어색한 나는 언니의 리드를 따랐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언니가 내 핸드폰을 빼앗아 우리 모습을 셀카로 담았다. “에이프릴이 페이스북 친구가 많으니(당시 약 3,000명 정도) 네가 올릴래?”, “사진 보고 망설이던 사람들이 더 많이 거리로 나왔으면 좋겠네.”라고 언니는 덧붙였다. 폰에 찍힌 사진을 보니 언니 얼굴은 “박근혜는 하야" 팻말로 반쯤 가려져 있던 반면, 내 얼굴은 고스란히 다 드러나 있었다.
고백컨데, 페이스북에 올리기 버튼을 누르기 직전 나는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혹시라도 보수정당에 찍혀 안 그래도 어려운 사업이 불이익을 받으면 어쩌지? 신청해 놓은 국가 지원 사업이 몇 개인데…!’ 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버튼을 누를 때까지 느꼈던 그 마음의 부담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사업하는 선배들은 정치색을 드러내지 말라고 조언한다. 정권은 오 년마다 바뀌는데 사업은 영속적이니 정권에 찍히면 사업하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당시 직원 다섯 명 정도의 코딱지만한 회사 대표도 그런 걱정을 하니, 나보다 훨씬 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그때 광화문 광장에서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나는 쉽게, 사회 리더들이 응당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밝혀야 한다고 너무 쉽게 떠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옳은 일을 옳다고 생각하기는 쉽지만, 나의 이익과 대치되는 상황에서까지 행동에 옮기는 데에는 다른 차원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박근혜 정권 시절 존재했다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려진 이름들. 옳은 일을 행하고자 암울한 시간을 버텨낸 지식인들, 사업가들, 학자들 등등에게 큰 존경을 표한다.
언젠가 또다시 사업을 하다 보면, 손익 대차대조표를 떠올리며 신념대로 행하기를 망설이게되는 순간이 또 올 것이다. 하지만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2016년 겨울, 수백 명의 사람들과 광화문에 섰던 그 날을 떠올리고자 한다.
어느덧 서른 후반이다. 성인이 자신의 소리를 내고, 그 소리에 책임을 져야만 비로소 어른이다. 어른이라면 정치에 관심을 가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