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남편의 자존심이란?

"설거지할게"와 "해줄게"의 간극

by 방송과 글 사이

남편이 설거지할 때마다 턱 걸리는 말이 있었다.

“내가 설거지해 줄게.”

왜 ‘할게’가 아니라 ‘해줄게’일까? 이상했다. 집안일도, 육아도 배우자가 함께하는 것이지. 도와주는 것이 아닌데 말이지. 리얼리티 방송에 나오는 애처가 남편들이 죄다 한 말이다.

그래도 내가 하기 싫어하는 설거지를 해주니까 잠자코 있었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내내 마음에 걸렸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묻지 못했다. 남편도 좋은 마음으로 설거지를 하는 거란 걸 아는데 거기에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았다.

최근에 자주 집에 놀러 오는 동네 친구가 오고 남편이 흔쾌히 설거지한다기에 때마침 물었다. 이거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최대한 나근나근한 목소리로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자기는 설거지를 날 위해서 해준다고 생각해?”

남편이 말했다.

“남자들은 자존심이 있어서 누가 시켜서 하는 건 싫어해.”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할게’와 ‘해줄게’의 간극이 좁혀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이제껏 남편이 집안일은 아내 일인데 자기가 애써 도와준 거라 여기는 것 같아서 못내 서운했다. 그걸 남편에게 드러내기엔 쪼잔해 보일까 봐 내색도 못 했고.

어쨌든 이제껏 조금씩 쌓였던 서운함이 한 방에 날아갔다. 내 남편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하니까 말 한마디로 남편 자존심 하나 못 세워줄까 싶었다.

그날 이후에도 여전히 남편은 “설거지, 내가 해줄게.”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 남편의 자존심 멘트지. 오히려 나는 그 말을 되새기며 웃는다.

“설거지, 자기가 해주는 거 맞아.”